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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15. 2024

31일

부쩍 미지근해진 공기의 살결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새벽이면 온 몸을 씻어주는듯했던 차갑디 차가운 공기들이 온데간데 없이 모습을 감췄습니다.
저 아래는 어쩌면, 벌써 푸릇한 싹이 돋아났을지도 모르죠.
아무리 힘껏 들이마셔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아,
덩달아 마시는 물에 얼음을 잔뜩 넣어 이가 시리고 목구멍이 아려도
벌컥이며 찬 물을 들이마십니다.


무엇이 그렇게 내 속을 덥게 만든 걸까요.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일까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일까요.

춥디추운 겨울날 유독 내가 수두룩하게 생각난다던 따끈한 당신의 말에 나는 한번 더 하얗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없는 나의 계절들 중 칼날처럼 추웠던 겨울이 가장 견디기 쉬웠다고 한다면 당신은 믿을까요?
지긋하게 더운 여름과, 꽃가루가 날리는 봄,
비가 오면 눅눅해져 길을 미끄러이 만드는 가을보다도
온 살결을 벨 듯한 바람이 부는 아주 추운 겨울이
당신없이 견디기 가장 쉬운 계절이었습니다.


몇 일 후면 다가올 나의 생일은 어느덧 당신 없이 보내는 다섯번째 생일이에요.
해를 거듭할수록 나의 생일날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당신의 미안함이 쌓여 이제는 내 키를 훌쩍 넘어설 것 같아요.

당신이 보내는 미안함이 나에겐 사랑으로 다가오니,
그 또한 멋진 생일선물이네요.

그럼에도 곧 다가올 나의 생일날엔, 비가 와도 좋으니
잔뜩 추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잔뜩이요.


그러면 난 또 가슴이 터질듯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당신이 생각나지 않을 때 까지 기꺼이 숨을 참고 있을게요.
꼭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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