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에게 등불이 될 수 있을까
대학생 시절, 정부부처 기자단 활동을 하며 선배를 처음 만났다. 당시 선배는 활동을 총괄하는 담당자였다. 6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해단식 날 인사를 나누며 인스타그램 맞팔로우를 했던 게 인연의 전부였다. 그 뒤로는 간간이 올라오는 소식을 눈팅하는 정도였다.
언제부터인가 선배의 피드에 토마토와 요가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공무원 그만두고 토마토 농사를 하시나 보네, 신기하다’ 정도?
몇 년 전, 서울에서 열리는 마르쉐 농부시장에 갔다가 토마토 매대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선배였다. 반가웠지만, 나를 못 알아볼까 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OO쌤. 저 은지에요. 기억하세요?” 그러자 선배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랗게 커졌다. “어? 이게 누구야? 너무 반가워!”
반갑긴 참 반가운데, 시장 한복판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색해서 토마토만 샀다. 선배는 내 장바구니에 덤을 한가득 더 넣어줬다.
지리산 근방을 여행하던 중, 내가 있는 곳에서 선배가 사는 지역까지 한 시간 거리라는 걸 알게 됐다. DM을 보내 약속을 잡았다. 원래 이렇게 급약속을 잡는 편은 아닌데, 예상치 못한 발견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었는지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보겠어'하는 생각에 용기가 생겼다.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카페. 저 멀리서 주황색 옷을 입은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왠지 저 사람 같은데. 긴가민가하고 있던 찰나, 여자가 카페로 들어왔다. 선배가 맞았다.
대학교 3학년 이후로 이렇게 마주 앉은 건 처음이니, 거의 15년 만인가. 건강하게 탄 피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비즈니스 정장에 하이힐을 신던 커리어우먼은 뽀글 머리 파마에 슬리퍼를 신고 나타났다. 그때 나는 학생이었고, 선배는 사회인이었으니 엄청 어른처럼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나이 차도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다.
내가 얼마 전 계획없이 퇴사를 했다고 하자,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해줬겠지. 난 다른 말은 안 할게. 다 어떻게든 될거야. 걱정하지 마.”
선배는 사람마다 인생에서 한 번쯤 전환점을 맞는 시기가 온다고 했다. 30대에 안 오면 40대에, 40대에 안 오면 50대에. 나에게는 그 시기가 지금인 것 같다고. 그 말을 하는 선배의 눈에는 묘한 힘이 느껴졌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 한 번 지나온 사람의 눈 같았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어떻게 저 눈을 갖게 됐을까.
“어쩌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내려와서 농사를 짓게 되셨어요?”
내 질문에 선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이유를 몇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퇴사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가지만,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더라고.”
선배를 만난 그날은, 당장 내일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기예보를 보니 주말 내내 비가 온다고 했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데, 비 오는 날 순천이나 남해 괜찮을까요?”
“비 오는 날 순천? 좋지. 남해도 너무 좋지.”
선배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너무 좋지’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나와서 순간 웃음이 났다. 무계획 여행을 한다면서도, 비가 오는 건 싫어서 몇 번이나 일기예보를 새로고침 했던 손가락이 민망해졌다. 나에게 비 오는 날은 여행을 망칠지도 모르는 ‘좋지 않은 날’이었는데, 선배에게는 그런 구분이 없는 것 같았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선배의 태도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선배의 인스타그램에서 본 요가 사진이 떠올랐다.
“저도 요가를 하고 있어요. 2년 넘게 했지만, 잘은 못해요.”
습관처럼 덧붙인 '잘 못한다'는 말에 선배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요가에 잘하고 못하고 가 어디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전 대화가 겹쳐졌다. 날씨도, 요가도, 나는 자꾸만 기준을 나누고 있었다. 좋은 날과 아닌 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내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뒤로 밀어둔 채, 머릿속에서 먼저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선배는 그런 기준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선배는 나중에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의 농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그 숲 한가운데에 요가원을 차릴 거라고. 그 풍경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선배는 어떻게 저토록 선명하게 자신의 길을 비추고 있을까. 구두를 신고 도심을 누비던 15년 전보다, 슬리퍼를 신고 흙을 밟는 지금의 선배가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선배는 날씨가 어떤지, 잘하고 있는지 같은 바깥의 기준들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더 따라가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그 삶은 여행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선배에게는 지역마다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는 ‘등불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등불은 태양처럼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지는 못한다. 대신 어두울 때, 지금 서 있는 자리와 다음 한 걸음만큼의 길을 드러낸다. 길을 대신 정해주지는 않지만, 발을 뗄 수 있게 만든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았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내는, 어두울수록 더 선명해지는 사람들. 나도 누군가에게 등불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나는 나 자신에게 등불이 되어줄 수 있을까?
회사에 다닐 때는 여행을 다녀오면 항상 후유증에 시달렸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여행만 바라보며 버티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일상도 여행처럼 살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은 꽤 오래 붙잡고 있던 의문이었다. 그럴듯한 시도도 해봤다. 파리 사람들처럼 공원에 나가 피크닉을 가고, 전시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행지에서 느끼던 감각은 쉽게 따라오지 않았다.
그 차이가 뭘까. 가만히 떠올려보니, 여행지에서는 다르게 살고 있었다. 길을 걸어도 그냥 걷지 않았고, 밥을 먹어도 대충 때우지 않았다. 별거 아닌 순간에도 멈춰 섰다. 일상에서 지나치던 것들이, 여행에선 자꾸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필요한 건 새로운 장소가 아니라, 그때의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관광지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나에게 진짜 필요한 건 내면으로의 여행이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그동안 지나치던 감각을 다시 깨우는 것.
퇴사할 때 나에게 선물하기로 했던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