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건 내 마음뿐
원래 집밥을 해 먹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은 요리와 담을 쌓고 살았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인데도 1층 편의점조차 내려가기 귀찮아서, 언제부터인가 식사시간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 배달앱을 켰다. 무표정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가게 리스트를 훑어본다. 가게에서 정성껏 찍어놓은 음식 사진들을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오후를 버티려면 식사를 해야 하니 점심시간 30분 전에 겨우 주문을 넣었다.
배달이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고 현관문을 열자 차가운 바닥에 비닐봉지가 놓여있다. 또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겠네. 죄책감이 먼저 식탁에 오른다. 이미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아 밥맛이 떨어졌다. 밥을 먹는다기보다 끼니를 해치우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플라스틱 용기에 뜨거운 국물을 먹긴 싫어서, 굳이 그릇을 꺼내 덜어 담곤 했었다.
퇴사 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요리를 다시 시작했다. 편마늘과 시금치를 함께 올리브오일에 볶으면 되는 파스타. 어려운 요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도마 앞에 서자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칼질을 어떻게 했더라?
아주 어릴 때, 처음으로 가스레인지 불을 켰던 날이 떠올랐다. 아마 계란프라이를 해 먹으려고 했던 것 같다. 가스레인지 손잡이를 끝까지 돌리면 ‘딸깍’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튀는데, 그 찰나의 마찰음이 터지기 직전까지 힘을 주는 게 무서웠다. 끝까지 돌리지 못하고 몇 번이나 손잡이 근처를 맴돌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딱 그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칼을 잡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시금치를 썰어야 하는데 간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칼에 힘은 어느 정도 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칼날이 도마에 닿을 때마다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소금도 얼마나 넣어야 할지 몰라 손끝으로 조금씩 집어넣다 보니 간이 맞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이나 가족을 불렀다.
쌀밥을 할 때도 그랬다. 계량컵이 보이지 않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손바닥에 닿는 물의 깊이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손등 위로 물을 맞추던 감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런 내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늘 집밥을 해 먹었는데, 언제 이렇게 멀어졌을까. 피그마의 픽셀 간격은 눈 감고도 맞추면서, 정작 내 입으로 들어갈 밥물 하나 맞추지 못하다니. 의식주에서 ‘식’을 해결하는 건 인간의 기본 생존 역량인데, 스스로 밥도 못 해 먹는 인간이 되어버렸다니!
키보드와 마우스의 클릭감에만 최적화된 내 손등은, 이제 쌀 위에 얹히는 물의 무게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일만 하느라, 편리함에 기대 사느라 정작 내 삶에 중요한 감각들을 다 잃어버리고 살았구나. 내가 또 잃어버린 것은 뭘까.
집 바로 앞에는 공원이 하나 있다. 골목길 하나만 지나면 닿을 정도로 정말 코 앞이라,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늘 지나쳐왔다. 수없이 오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풍경이 지겨워졌다. 공원도, 이 동네도 벗어나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아직 초록이 깊어지지 않은 어느 봄날, 점심을 먹고 집 앞 공원을 걸었다. 저 멀리서부터 ‘솨아아-’ 하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뭇잎들이 일제히 몸을 뒤집으며 흔들렸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내 볼을 매끄럽게 스쳐 지나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상쾌한 공기가 가슴 안쪽에 가득히 들어왔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햇빛을 받아 연두색으로 빛나는 나뭇잎들이 파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잎맥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문득 ‘이 정도로 공원이랑 가까운 집이 전국에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이 마치 우리 집 마당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익숙했던 공원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공원은 항상 이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변한 건 내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좋은 풍경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 나는 늘 먼 곳으로만 떠나려고 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내가 찾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언제나처럼 강아지가 온몸으로 나를 반겼다. 한바탕 환영인사를 나누고, 편한 반팔과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그림자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강아지와 함께 거실 맨바닥에 철푸덕 누웠다.
맨바닥의 기분 좋은 서늘함이 등허리를 타고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내 옆에 강아지가 바짝 붙어 누웠다. 옆구리에 닿은 강아지의 묵직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규칙적인 숨소리에 맞춰 강아지의 작은 몸이 내 몸에 살짝 닿았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어디선가 뽀송한 공기가 밀려와 피부를 스쳤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천천히 흘러갔다.
지금의 내가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회사를 떠올려도 심장이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