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에서 알게 된 것
노션을 켜고 ‘마무리’라는 문서를 하나 만들었다. 퇴사는 사직서에 서명을 하고 퇴사 일자를 확정 짓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지난 시간의 타래를 풀어내듯 정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쓰였던 건 팀원들에게 나의 퇴사 사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경영진에게 덤덤하게 의사를 밝힐 때와는 전혀 다른 긴장이 차올랐다. 팀원들에게까지 말하면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걸렸던 건, 나를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에게 떠난다는 말을 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내가 인생의 한 챕터를 내 손으로 닫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목요일 오후 2시 30분, ‘디자인팀 티타임’이라는 이름으로 일정을 잡았다. 시간이 되자 팀원들이 삼삼오오 회의실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 같이 모이니까 회의실이 꽉 차네요.”
긴장을 감추려고 억지로 웃으며 아무 말이나 던져 본다. 모든 팀원들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 오늘은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하려고 여러분들을 한 자리에 모았어요.”
그러자 갑자기 ‘설마?’ 하며 팀원들의 눈이 커졌다. 혹여나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할 말을 미리 정리해 두었지만, 막상 팀원들을 마주하니 노트북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텍스트 대신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보며 내 결심을 이야기했다.
옆에서 오랜 기간 함께 일한 팀원이 훌쩍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마주치질 않았다. 얘기를 하고 나면 마냥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 울음소리에 내 마음도 내려앉았다. 이래서 회의실마다 휴지가 있는 걸까. 결국 나도 휴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티타임을 가장한 30분가량의 퇴사 공유 미팅이 끝나고, 한 팀원이 나를 찾아왔다. 팀원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사실 다른 회사를 알아봤었거든요. 그래도 여기 더 다니려고 했던 이유가… 은지 님이었어요.”
그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여기에 남아 있으려는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내가 만든 어떤 포트폴리오보다도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내 퇴사 사실이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남은 기간 동안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누구에게 먼저 연락해야 할지부터 고민이었다. 캘린더를 열어 놓고 한동안 이름들을 훑어봤다.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사람들, 고민을 함께 나누던 사람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오고 가며 눈을 많이 마주치던 사람들. 생각보다 떠오르는 얼굴이 많았다.
마지막 티타임들에선 처음엔 늘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왜 퇴사하는지, 언제가 마지막 출근인지.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대화가 조금 더 솔직한 쪽으로 흘러갔다. 왜 항상 마지막이 되어서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걸까. 떠날 때가 되니까 모든 게 아쉽게 느껴진다.
퇴사 후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말에 동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은지 님이라면 어디서든 잘하실 거예요."
예전 같았으면 '또 잘해야 하나'라며 어깨가 무거웠을 그 말이, 그날은 이상하게 '너는 이미 충분한 사람이다'라는 위로로 들렸다. 빼곡했던 티타임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어딘가 가득 차올랐다.
회사를 떠나는 줄 알았는데, 실은 사람들과 작별하고 있었다. 나라는 유저에 대한 첫 번째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