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괜찮은데 나만 괜찮지 않을 때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개월마다 하는 성과 평가 면담을 위해 작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평가 등급은 이미 공유받았고, 면담은 상사와 만나서 대면으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5분 일찍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 모니터 오른쪽 상단에 떠 있는 시계가 4분, 3분, 1분… 줄어드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정각이 되자 상사가 들어왔고 짧은 인사와 함께 면담이 시작되었다.
“은지 님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회사에 필요한 역할을 도맡아주고 있어요. 칭찬해드리고 싶어요.”
상사의 말에 안도감이 먼저 올라왔다. 내가 해온 노력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 같았다. 잘해왔다는 말은 언제나 나를 안심시켰다. 그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를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앞으로 5년간 미친 듯이 성장해야 해요. 리더로서 이제 진짜 시작이고 전성기거든요.”
상사의 확신 어린 목소리와 달리 내 가슴은 꽉 조여왔다.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고개는 끄덕이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5년, 진짜 시작, 전성기… 이런 말들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이 불안 속에서 앞으로 5년 넘게 내 몸을 갈아 넣어야 한다니. 탁, 하고 안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칭찬을 들었는데 전혀 설레지 않았다. 오히려 5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사회초년생 때 꿈꿔왔던 이 자리에서 나는 왜 이렇게 도망치고 싶을까. 면담을 마치고 회의실을 나오는데, 등 뒤로 닫히는 문소리가 유독 무겁게 들렸다.
자리로 돌아와서 아무 일 없다는 듯 구글 캘린더를 켰다. 다음 미팅이 바로 연달아 있었다. 슬랙 알림이 몇 개 쌓여 있었고, 누군가는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회의실을 뛰어다녔다. 질문에 답하고, 방향을 정하고, 누군가를 안심시키는 말을 건넸다. 방금 전 대화는 생각보다 빨리 묻혔다. 하루는 언제나처럼 그렇게 흘러갔다.
퇴근할 무렵이 되자 몸이 무척 피곤했다. 하루 종일 말을 많이 해서 그런가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별일 없다는 듯 밥을 먹고 씻고 누웠다. 그런데 눈을 감으니 ‘5년’이라는 숫자가 자꾸 떠올랐다. 불을 끄고 누워 있는데도 어깨에 힘이 빠지지 않았다. 숨이 깊게 쉬어지지 않았다. 회사도, 일도, 사람도, 환경도 괜찮았는데, 나는 괜찮지가 않았다. 심장이 자꾸만 뛰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데도, 몸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다음 날 밤, 나는 일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2024.01.31 23:18
회사 생각을 하면 불안함에 심장이 뛴다. 별일이 없는데도 그렇다. 이 일기를 쓰는 지금도 그렇다. 대체 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사실 그날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괜찮지 않은 상태로 잘 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