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퇴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누군가 "요즘 뭐 하며 지내요?"라고 물으면 "그냥 쉬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적 명함이 될 만한 일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보낸 시간은 ‘그냥’이 아니었다.
나는 지난 13년 동안 IT 업계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해왔다. 유저를 관찰하고 문제를 구조화해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리더로서는 팀원들과 수없이 원온원을 하며 그들의 고민과 불안을 들었다. 문제를 정의하고 타인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일은 익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유 없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성과는 쌓였고 나름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공허했고 몸은 자꾸 다른 신호를 보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정작 ‘나’라는 유저의 경험은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멈추기로 했다.
퇴사 후 처음 한 일은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관찰하는 일이었다. 내가 왜 무너지는지, 무엇이 나를 회복시키는지, 어떤 조건에서 내가 괜찮아지는지.
그렇게 나는 나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유저로 보기 시작했다.
이 글은 퇴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록도, 번아웃 극복기도 아니다. 사용자 경험을 설계해 온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해 보려 시작한 실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