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2 (80대 초반 남성)
“자네는 뭔 글을 이렇게 쓰나?”
“보셨어요? 그거 책 아니고 그냥 교재예요. 글쓰기 강좌 때 종이 나누어 주고 하는 것이 귀찮아서 모은 겁니다. 필요할 때 한 번에 나누어 주려고요”
“도대체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 거기서 썩히기는 아까워”
“아닙니다. 아직 보완할 게 많습니다. 초보자들이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어려워해서요. 그냥, 일기 쓰듯이,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게 편합니다. 그래서 자서전 부분을 좀 보완하려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일단 초판 내고, 개정판은 나중에 해야죠”
“근데 왜 자서전인가? 나도 쓰고 싶긴 한데, 읽기는 해도 글쓰기는 어려워서”
“아이고 왜 그러십니까? 그런 분이 어떻게 그 어려운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국립대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까?”
80대와 50대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분에 대해서 조금 안다. 그분은 자서전을 써야 한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인생을 사셨다. 1950년대에 강원도 인제로 이사를 하셨다. 거기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셨다. 중학교 때는 경기중학교를 다니시다가 눈칫밥 먹는 것 때문에 배가 고파서 다시 인제로 오셨다.
그리고 학교 다니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을 주려 막노동도 하셨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셨다. 월급 모두는 어머니를 드려 어린 동생들 학비와 생활비로 다 쓰셨다. 동생들 모두는 지금은 잘 산다. 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목사님 사모님으로, 3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를 나오게도 하셨다. 얼마나 짠돌이로 사셨을까? 그래도 자식들은 큰 부자는 아니지만 천당 밑에 하나, 대전 최고 부자 동네에 하나가 살고 있다.
그런데 외롭다. 딸들은 아버지와 대화가 없다. 식사 때는 조용하고 끝나면 서재로 들어가신다. 딸들은 엄마와 대화만 한다. 오랜 공직 생활에 유머도 없다. 농담이란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면 정치 이야기, 오래전 군대 이야기뿐이다. 그러니 손주들이야 오죽할까?
이런 분이 자서전을 써야 한다. 스스로와 친구가 되어 어릴 때 배고프던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들, 딸을 갖고 사위를 맞아들이며 아버지, 장인으로서 가졌던 생각, 부잣집 어린 여성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이야기, 고생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등 모든 것이 소재이고 글감이 된다. 분명히, 10대, 20대의 손주, 50대의 딸, 사위들은 궁금할 것이다. 재미없고 무뚝뚝하고 80대의 노인도 청춘이 있었고 흔들림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가족, 아내, 아들, 딸들을 위한 그의 이야기, history, 그의 가족들에게는 언젠가는 그들의 뿌리이자 조상에 대한 역사가 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쓰셔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눈은 침침해진다. 글도 체력이 있어야 쓸 수 있다. 이제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을 연세이시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