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이 혹은 성인들도 좋아하는 하리보(HARIBO)라는 외국젤리가 있다. 지금은 봄이가 입에 넣어주면 한 번씩 먹는 간식. 이 젤리에 얽힌 웃픈 추억 때문에 한동안은 이 젤리만 봐도 가슴이 철렁했다.
남편이 가고 나서 내가 일어서는데 도움이 크게 됐던 것 중 하나는 신앙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떠날 당시엔 딱히 따르는 종교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흔히 하는 49제를 지내주었다.
11월 말에 장례식을 마치고 다음 해가 되자마자 49제를 치르고, 곧바로 설명절이 바로 다가왔던 시기는 참으로 야속함을 더해주는 힘든 때였다. 왜냐하면, 이제 예전과 너무 다른 명절의 모습을 맞이해야 했다.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고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그런 명절대신 홀로 남편의 제사를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남편의 제사를 모실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거니와, 결혼 후에도 난 제사 준비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종갓집 종손이었던 남편은 자신의 부모님이 아닌 큰집으로 호적이 올라가 있었다. 큰아버지댁에 아들이 없어서 남편이 아들로 호적에 올라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남편이 중학교 들어간 무렵 1,2년 차이로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큰어머니만 홀로 남아계신 집에서 명절을 외롭게 지내서 명절이 싫다고 했다.
그런 탓에 나도 같이 외롭지만 바쁜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홀로 계신 시어머니댁도 가고, 큰어머니댁도 갔다가 친정까지 세 집을 다녀와야 하는 일정이었다. 시어머니댁에서 음식준비를 하지도 않았고, 시어머니와 남편의 누나인 형님네 가족과 식사 한 끼 정도로 명절을 맞이했다. 그리고는 명절 전날 큰어머니댁에 가면 이미 명절 음식을 다 준비해 놓으셨다. 친정도 친정아빠가 장남이지만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명절은 늘 둘째 아들인 작은 아버지댁에서 지내왔다.
그래서 어릴 땐 재미로 동생들과 송편도 빚고 전 부치고 했지만, 성인이 되고서는 제대로 명절제사 음식을 내가 주도하고 준비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남편의 49제를 절에서 모시게 되었고, 불교 절차에 따라 명절에는 집에서 남편제사음식을 차렸다.
남편의 장례식이 끝나고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49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촌언니가 다니는 파주의 한 절에서 남편 49제를 모시기로 했다. 49제 전에 할 일이 있다고 절에 한번 오라고 했다. 봄이랑 겸사겸사 부천에 사는 사촌언니 집에 갔다. 형제자매가 없는 내겐 친언니나 다름없이 대해주고 지금도 언니에겐 이모이모부인 우리 부모님을 제일 잘 챙겨주는 언니이다.
언니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절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봄이가 음료수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잠깐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우고 혼자 편의점에 들어갔다. 봄이가 먹을 음료수를 고르다가 평소 좋아했던 하리보가 눈에 띄어 골랐나 보다. 계산을 하고 다시 차를 타고 언니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갑자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파주 경찰서입니다. 혹시 오늘 낮에 편의점에 가신 적 있으시죠? ”
“네, 무슨 일이시죠? ”
“낮에 계산을 안 하시고 가신 것 같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 네,,,???”
“ 계산하고 나왔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옷걸이에 걸어둔 외투로 달려갔다. 외투 주머니에 있던 영수증을 꺼내보니, 1500원 정도 하던 음료수는 계산을 하고 그보다 반값도 안 되는 600원 정도의 하리보는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전화를 끊고 그제야 주머니에 있던 영수증을 찾아보니 없다. 카드사 문자도 받은 게 없었다. 하필 평소에 쓰던 카드를 쓰지 않고 다른 카드를 꺼냈었나 보다. 평소에 쓰던 카드는 금액에 상관없이 결제문자가 왔던 반면, 그 카드는 잘 쓰지 않는 카드라 5000원 이하 소액 결제는 문자가 오지 않게 되어 있었다.
카드사는 이미 고객센터 영업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전화연결이 어려워서, 분실신고접수로 연결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확인을 받았다.
그 당시에 남편이 떠난 지 한 달이 좀 넘은 시점이라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정말로 음료수만 계산을 하고 하리보 젤리값이 결제가 안된 금액이 맞았다.
’ 왜 그랬을까?‘
밤이 다되어가고 아직 3살 아이를 떼어놓고 갈 수 없어서 파주에서 부천까지 가는 시간도 있어서 가보지는 못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경찰 말에 의하면, 내가 하리보 젤리를 훔쳐갔다는 것이다. cctv 확인을 해보니, 내가 젤리를 슬쩍 집어서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이다.
’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리보를 집었던 기억도 주머니에 넣었던 기억도 사실 없다.
다만, 내 몸이 기억하고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젤리를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나 보다.
그날 다녀왔던 절의 법사님이 급한 대로 우리 대신 다음날 아침 바로 편의점에 가서 cctv를 확인해 주셨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도둑질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진짜 그냥 하리보를 집어서 너무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만 계산을 했으니, 편의점 입장에서는 도둑질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괘씸했다. 내가 젤리를 집는 것도 봤고, 심지어 주머니에 집는 것도 봤고 계산을 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날 붙잡고 물어봤으면 될 일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편의점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땐 화가 났다. 설마 일부러 그랬겠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땐 일부러 몇 배로 돈을 받으려고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난 당시 600원 정도였던 하리보의 150배가 넘는 금액을 사과의 의미로 전달하고 케이크도 사가서 사과를 했고, 그들은 고소를 취하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한번 신청된 고소는 맘대로 취하되지 않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기는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나는 감옥이라도 가는 것은 아닌지 빨간 줄이 남는 것은 아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나 모른다.
남편의 연고지에서 친정과 사촌들이 사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길 생각이었기 때문에 직장도 다시 구해야 했다. 주로 공무원조직과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직장 구할 때 기록이 남아있어 불이익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이 많이 됐다.
편의점의 변명은 이랬다. 그 시기에 주 좀도둑이 들어서 그날도 재방문한 도둑인 줄 알
고 벼르고 있었다고 한다. 난 그 편의점은커녕 그 동네에 처음가 본 사람인데 말이다
만약 의심스러웠다면 왜 주머니에 넣었는지, 전에 왔던 도둑인지 그 자리에서 물어보고 cctv 확인이라도 했으면 밝혀질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집이 지방이라 멀어서 조사를 받으러 가기 어려우니 지방으로 인계를 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았고, 남편 잃고 너무 가여운 젊은 처자의 정신 나간 짓으로 마무리 됐다.
법원에 가서 해명을 하면 기록이 삭제된다고 해서 혹시라도 직장 구하는 데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검사인지 판사인지 앞에서 법원에 제 각각 사연들로 방문한 사람들 앞에서 해명했다.
어이없게도 판사는 남편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를 물어봤다. 사망이유에 따라서 선처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걸 왜 물어봤는지 지금도 이해는 가지 않지만, 궁금했나 보다.
뭐 딱한 사정이니 조금 더 궁금해졌던 것일까, 악의는 없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남편의 일을 입에 올리는 것도 너무 버거웠던 그때는 그 판사가 야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