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쉬는 날이라 오전에 여기저기 움직이다 비를 흠뻑 맞아 바지가 종아리까지 젖었다. 나온 김에 요즘 인기 있고 재미있다는 영화를 보려 했는데 꿉꿉한 기분이 싫어 예매취소를 했다.
예전이라면 바지가 젖었던 비가 쏟아지던 그대로 갔을 텐데... 대신 집에 와서 지난 주말에 못 봤던 드라마를 봤다. 살다 보니 꼭 하고 싶은 걸 못 할 때는 차선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를 굳이 꿉꿉하게 옷이 젖은 채로 볼 이유는 없으니까 날씨 좋은 날을 기약하게 된다.
주말 평일에 관계없이 지방 서울을 오가게 되니 휴일이 되게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그런데 휴일이 되면 일할 때 필요한 것들을 백업하는 하루가 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 이메일을 체크하다가 글쓰기공모전 소식을 우연히 봤다. 분량이 적어서 해볼까? 하다가도 과연 할 수 있을까? 한다. 책을 읽는 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던 내가 최소한의 분량의 책을 읽지 않고 전자책조차 읽지 않은 게 오래다. 글과 관련된 뉴스레터 구독을 몇 개 하고 있지만 그게 독서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공모전에 관련해서 아이디어 메모를 해볼까? 하다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 할 때 쌓인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풀어야 하니까. 왜 이전에 좋아하던 것들이 시들해지고 자꾸 후순위로 미뤄지게 될까? 책, 글쓰기, 꿈, 취미, 좋아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돈을 버는 행위 앞에서 자꾸 작아지고 소멸되게 된다. 그러면 난 슬프고 공허해진다. 가능하다면 자주 오래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싶은데 마음이 잘 먹어지지 않는다.
아직 일이 익숙지 않아서는 핑계고 일과 글쓰기의 양립을 내가 잘 조절하지 못한 탓인 거 같다.
흠... 예전과 같은 열정을 다시 되살려 지금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돈벌이에 신경을 쏟아부어도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글쓰기에 시간 에너지를 나눠도 좋을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오래전 내가 글을 잘 다루고 책을 내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나는 평범하고 이름 없는'사람이지만 내가 만든 나의 창작물은 영원히 살 거라 믿어서였다. 지금도 내 책들은 전국에 있고 때론 도서관에 때론 누군가의 서가에 있다는 게 내 인생의 큰 자랑이자 위안이다.
다시 이전에 좋아하는 것들에 열정의 불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영원한 것이 없어 영원을 꿈꾸는 그런 시절이 찾아올까? 비는 청량하게 내리는데 비가 내 마음을 진하게 흔든다. 파동처럼 잔잔하게 일상 속에 잠들어 있던 오래전 열정들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