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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18. 2023

내 생애 가장 달콤하고 뭉클한 아이스크림


화창한 수요일 오후였다. 원래는 환자들 왕진을 도는 날이지만

마침 응급 왕진도 없고 스케줄이 비었다.

이런 날이 자주 오는 게 아니니 이때는 기회다 싶어 남편과 수영 가방 챙겨서

얼른 시립 수영장으로 향했다.


겨울에는 시립 수영장은 에너지 절약 때문에 물이 차가워서 뜨끈한 온천 수영장을 다녔는데

이제 날씨도 따뜻해 조금 차가운 물 이어도 몸을 움직이다 보면 수영을 할만하기 때문이다.

시립 수영장은 비용도 착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할게 수영 밖에 없기 때문에

가면 열심히 수영을 하고 오게 된다.


수영을 하고 나니 여기저기 근육이 뭉쳐 찌뿌둥하던 몸도 풀리고 이제 이번주는 내리 쉰다 생각하니 콧노래가 저절로 났다.

목요일은 공휴일이고 금요일은 징검다리 휴일이라 아이들 학교와 우리같이 자영업자들 중에 쉬기로 결정한 곳들은 롱롱 위크앤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에 가기 전에 수영장 근처 마트에 가서 몇 가지 장을 보기로 했다.

금요일 토요일에 시장문을 여니 오늘내일 사이 당장 필요한 몇 가지만 장을 보면 될 터였다.

그런데 막상 장을 생각 보다 이것저것 많이 사게 되었다.

목요일에 딸내미 금요일에 큰아들이 집에 온다. 아이들이 평소 좋아하는 것들을 요것조것 만들어  생각에 평소 보다  많은 메뉴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담다 보니 어느새 카트가  찼다.


마트 주차장에서 카트 가득 담긴 것들을 남편이 정리해서 트렁크에 담는 동안

나는 마트  젤라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기로 했다.

수영을 하고 나오니 목욕하고 온 것처럼 짜~해서 시원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 한입 먹고 싶기도 했고

피아노 갔다 집에 와 있을 막내가 점심때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던 것이 떠올라서였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은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날이 좋으니 동네 주민들이 가게 노천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종류가 여러 가지 여서 그중에 뭐가 좋을까 들여다보다 복숭아 맛과 페스타치오 맛 두 가지를 담아 포장해 달라고 주문하고 있을 때였다.



직원 뒤에 서 있던 조금 까무잡잡하고 머리숱이 적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아저씨가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큰소리로 내게 물었다.

"? 닥터 부인 으시죠?”

오잉? 이활달한 목소리 이탈리아 엑센트..가만 보니 우리 병원 환자다.


우리 병원 환자들 중에는  80퍼센트가량이 독일 사람들이고 20퍼센트가 외국인이다  20퍼센트 중에 10퍼센트가량이 튀르키예 분들이고 나머지 10퍼센트가 러시아, 폴란드, 이탈리아, 베트남, 인도, 아프리카 등등 물티쿨티다

지역 적으로 튀르키예 분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에 병원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도시가 크지 않다 보니 종종 있는 일이다.

시내뿐만 아니라 시장이나 수영장 안에서도 때로 인사를 해오는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탈리아 아저씨는 병원에 어쩌다 오시는 분이라 얼굴을 보고는 얼른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와 억양이 특이해서 생각이 났다.

이탈리아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 이셨구나...


아저씨는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내 발이 이제 다 나아서 움직일 수 있게 됐어요!" 했다.

나는 "어머 괜찮아지셔서 다행이에요!" 했더니 아저씨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90퍼센트는  나았어요 그때는 아파서 걷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닥터에게 내가 너무 고마워하더라고  전해 주세요!” 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내가 주문한 것 외에 연신  "뭐가 더 좋을 까요? 어떤 걸 더 담아 드릴까요?" 하셨다.

나는 아는 사이니까 더 팔아 드릴 겸 그럼 요 크르트 맛 하나 더 담아 주세요 했다.

아저씨가 들고 있던 큰 컵이 꽉 찼다.


그런데 아저씨는 "더 드시고 싶은 건 없어요?" 하셨다.

나는 웃으며 "충분해요 아들 가져다주려고 하는 거예요"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그럼 닥터는 안 드세요?" 하는 거다


순간 '닥터는 살쪄서 아이스크림 많이 먹으면 안 돼요!' 소리가 목안에서 맴돌았지만

 뒤에서 땅이 비좁다 하고  있는 튼실한 사람들이 직원에게 아이스크림을 잔뜩 주문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 말하지 않았다.

그러느라 잠시 머뭇거린 찰나 아저씨는 다른 컵 하나를 꺼내서 이것저것 담아 대기 시작 했다.

아저씨는 마치 노래를 하듯 "아들도 닥터도 온 가족이 맛나게 드셔야죠!" 했다


그리고는 "오늘 내가 내는 거예요!"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아유 그러시면 안 되죠 낼 건 내야죠" 하며 손에 들고 있던 돈을 내밀었다.

아저씨는 한사코 받지 않으시고 데시벨 높은 목소리로

"아니에요 내가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닥터가 아픈 나를 구해 줬잖아요!" 했다.

아저씨는 제자리걸음을 하듯 다리를 들어 보이며

"봐요 내가 이렇게 걸어 다닐 수가 있잖아요 지금!" 하셨다.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시는 아저씨 뒤로 아저씨의 부인으로 보이는 분이 인자하게 웃고 계셨다.

'아따 저 양반 또 시작이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로 말이다.


돈을 내겠네~ 받지 않겠네~옥신 각신 하는 소리에 아까 직원인 줄 알았던 아저씨와 똑 닮은 젊은 처자가 우리 쪽을 쳐다보며 입고리 한쪽을 씩 올리며 웃었다.

그 표정이 마치 '장사 잘한다~~ 막 퍼주셔~! 다 퍼주셔~!'라고 쓰여있는 것 같았다.


콘에 얹은 아이스크림 하나도 아니고 6가지 맛으로 두 컵 가득 담긴 것을 공짜로 받자니 환자 삥 뜯는 것 같고

돈을 두고 나오자니 아저씨 마음을 거절하는 것 같아 그럴 수도 없고 난감했다.


잠시 고민하다 아저씨가 정성스레 포장해 준 아이스크림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저러시나 싶어 뭉클하기도 하고...

이게 그분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거라면 기꺼이 받을 수도 있어야 된다

싶어서였다.


지금 까지 환자들이 고맙다고 병원으로 손수 뜬 양말, 꽃 화분, 초콜릿, 케이크.. 등의 간식, 꽃다발, 와인, 직접 짠 올리브유, 꿀 등등 을 선물로 들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 밖에서 다른 사람들 잔뜩 있는 곳에서 이렇게 공짜 아이스크림을 선물로 받아 보기는 처음이다.

내 생애 가장 달콤하고 뭉클한 아이스크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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