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Oct 09. 2023

그레텐 아주머니의 로겐 브로트

그들을 닮은 호밀빵


남편의 심부름으로 안과를 다녀온 날

아침 근무 시간에 조금 늦게 병원에 합류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 가니 익숙한 전화 벨소리와 접수처 혈액검사실

그리고 환자 대기실과 진료실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직원들 모습이 보였다.

요즘 병원에서는 혈액검사와 독감 예방접종 환자들까지 합쳐져 오전 진료가

평소 보다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가운으로 갈아입기 위해 직원휴게실 문을 열었는데 너무나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보통 소독약 냄새가 주로 나는 곳에서 고소한 냄새라니?

이게 무슨 냄새지? 하는데 테이블 위에 커다란 봉투가 얹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하얗고 커다란 봉투 위에 붙은 노란색의 작은 종이에는 손글씨로 Roggen-Weizen Brot, Sauerteig이라고 적혀 있었다.


직역해 보자면 유산균으로 발효해 만든 밀가루 섞인 호밀빵이라는 소리다.

이렇게 빵의 재료뿐만 아니라 만든 방법까지 적혀 있는 경우는 틀림없이

누군가 빵을 직접 만들어 왔다는 거다.


봉투를 여니 고소한 냄새를 품고 있는 배구공 만한 호밀빵 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렇게 자연 유산균으로 발효 숙성 시켜 구운 아로마가 싸롸있네! 하는

것은 평소 주식으로 빵을 즐겨 먹는 독일 사람들에게도 귀하다.

시간도 많이 들고 정성이 담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연 유산균 발효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효모 이스트 보다 발효되고 숙성되는 데

기다림의 시간이 더 길게 걸린다.

게다가 너무 오래 발효되면 신맛이 많이 나고 또 숙성되는 시간이 부족하면 빵의 식감이 떨어진다.

고로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 또한 세심하게 체크해야 해서 맛나게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  


직원 중에 최고령? 인 올해 60 생일이 지난 우리 병원의 알터하제 CB도

(꼰대와 멘토 사이 독일의 알터하제)

이 빵은 자기도 꼭 집에 가져가고 싶다며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우리로 하자면 떡집에서 방금 나온 떡을 선물했다 해도 감사할 따름인데 그 떡이 심지어 집에서 직접 만들어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이라면? 그런 느낌 이라고나 할까?


시내에 길을 걷다 보면 독일은 카페보다 많은 것이 빵가게다.

빵을 주식처럼 먹는 독일 사람들이지만 빵을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경우는 특별한 날이나 주로 은퇴해서 시간이 많으신 할머니들 중에 옛날에 집에서 만들어 보신 분들이 대부분일 게다.



그처럼 제대로 맛난 독일빵은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 맛을 살려 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젊은 사람들 중에도 요리에 또는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이(*이 또한 유기농 베이커리에서 사다 먹는다) 특별하게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번거로운 일이라 매번 있는 일은 아니다.


마트에 가서 보면 케이크나 쿠키 팬케이크 피자 등의 밀키트 들은 많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잘라서 먹는 커다란 빵류인 브로트로 밀키트는 거의 없다.


냉동식품 중에 오븐에 넣고 구워 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브뢰첸 (작은 빵), 프레첼 등은 있지만 들어가는 곡식의 종류도 다양하고 딱딱함의 정도식감 또한 다채로운 이 커다란 빵 브로트 밀키트는 찾기 어렵다.


매일 독일 밥상에 올라오는 빵 브로트 우리로 하면 밥 같은 것이지만 그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한 밀키트를 만들어 내기 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워낙 도처에 빵집들이 있고 마트에서도 착한 가격의 빵을 구워 내니 가격대비 밀키트 사다 집에서 빵을 구워 먹을 사람이 많지 않기도 할 테고 말이다.

(*빵에 대한 많고 많은 이야기는 다음번에 더 하는 것으로 합니다)


직원들에게 도대체 이 귀한 빵을 누가 선물해 주셨는가 물었다.

다름 아닌 그레텐 아주머니가 그동안 고마웠다며 직접 만들어서 남편과 함께 들고 오셨다고 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온 가족이 출동을 한셈이다.


그레텐 아주머니네는 이 동네 토박이 중에 토박이다.

선한 웃음 뒤에 항상 경계하듯 거리를 두던 분이었는데 빵까지 만들어 오다니 감개가 무량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지역색이 강한 곳 중에 한 곳이다(* 요 이야기도 내용이 너무 많아 다음번으로 넘깁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병원이 위치한 동네 오버쯔베렌은 자손 대대로 살고 있는 집들이 많은 곳이어서 타지 사람에 대한 텃새 또한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니 우리는 타지 사람도 아닌 외국인이 자기네 주치의가 되겠다고 병원을 개업했으니 오죽했으랴

그전에 원장선생님은  동네 토박이셨다 

33년간 진료 하며 환자들과 사적으로도  알고 지내는 분이었다.

그런 벤젤 선생님과 남편이 함께 환자들과 얼굴을 익히며 인수인계하던 시기 에도

병원에 오지 않고 멀리서 계속 지켜보던 환자들도 많았다.


또 어느 환자는 병원에 와서 이 동네 중국집 잘하는 데 혹시 아느냐? 묻는 이도 있었고

(독일 사람들 중에는 아시아 사람은 대부분 중국 사람이며 일가친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환자대기실에서 너네 나라 말로 인사를 하겠다며 내게 니하우를 우렁차게 날려 주던 환자도 있었다.


그 환자의 표정에서 아이들처럼 놀리고 싶어 하는 짓궂고 괘씸한 것을 감지하지는 않았지만 인사는 똑바로 알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내가 미소를 지으며 "니하우는 중국말이고 우리는 한국사람이에요 한국말로는 안녕하세요" 에요

"누가 당신에게 구텐 모르겐 (굿모닝과 같은 독일 아침 인사)이라 인사하지 않고

봉쥬르 하면 안 되겠죠 그건 예의가 아니니까요!"라고 했다


그리고 그 환자를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로 인사를 했고 괜한 친절?을 베풀다 발목 잡힌 환자는 어쩔 수 없이 그 어려운 발음 안녕하세요 를 울며 겨자 먹기로 무한반복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 걸리면 안녕하세요 지옥? 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났던 겐지...

그 이후로 그 환자처럼 병원에서 니하우로 인사를 해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 여름휴가는 한국을 다녀오느라 4주 동안 병원 문을 닫았다.

그동안 우리도 직원들도 충전을 했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러나 환자들에게 주어진 4주간의 시간은 다른 병원(우리 동료들의 땜빵진료독일 개인병원의 특이한 시스템) 진료를 다녀올 기회를 선사했고 어쩌면 그들이 그동안 닥터김 병원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요즘따라 이렇듯 고맙다며 선물을 들고 오는 환자들과 병원 리뷰에 좋은 말들과 적극적으로 별을 뿌려 주시는 분들이 대폭 늘었다.

나는 문득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실상 마음을 내면 진국인 이 동네 사람들이

발효되고 숙성되는데 긴 기다림이 필요한 호밀 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껍질은 딱딱하고 거칠게 무장되어 있지만 한 잎 베어 물면 그 속의 고소함과 쫀득함이 밀려드는 요 호밀빵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자는 난감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