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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07. 2024

그 많던 우유는 누가 다 마셨을까?

어느 화요일 아침의 외근


요즘 병원에 출근해서 가운으로 갈아입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드르륵 소리가 조금 요란스레 들릴 때도 있지만 공간에 퍼져가는 향긋한 커피 향은 사람의 마음을 한결 느긋하게 해 준다.

우리 병원 직원들은 모두 커피를 좋아한다.

물론 커피의 종류에 따른 기호가 조금씩 다르지만 다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먼저 출근할 때면 모두를 위한 첫 커피는 내가 내려 주고 병원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B가 먼저 출근하는 날이면 그녀가 먼저 커피를 내린다.

몇 잔의 커피를 연거푸 내리다 보면 마치 바리스타 라도 된 기분이 되고는 한다.

커피 머신에 물 넣고 우유통에 우유 담고 커피 캡슐 골라 넣고 누르면 되는 것이라 로스팅할 일도 브랜딩 할 일도 따로 없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직원마다 취향이 각기 다르니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직원 B는 쓴맛이 강하게 나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하고 직원 G는 부드럽고 달콤한 향의 캐러멜 마끼아또를 즐긴다.

하루에 커피를 딱 한잔만 마시는 C는 신맛이 조금 도는 카푸치노를 선호한다.

또 직원 GG는 커피도 하얗고 몽글몽글 한 우유거품 가득 올라간 카페라테만 마시고 커피잔이 하얀색 이거나 유리로 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 병원 원장선생님은 첫 잔은 블랙으로 두 번째는 디카페인 카페라테를 마신다

나는 첫 잔은 헤이즐넛 향이 나는 카페라테를 마시고 두 번째부터는 조금 진한 카푸치노를 마신다


우리 병원은 작은 개인병원이라 직원 수도 아담하니 소수 정예다

모두 해서 5명인데 화요일 목요일은 오전진료 시간에 4명 오후에 2명

월수금은 오전진료 시간에 3명 오후에 2명으로 근무시간이 각각 조금씩 다르다.

어느 화요일 아침의 일이다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오전 진료를 준비하는 동안 커피를 내리기 위해 직원 휴게실로 향했다.

화요일이라 직원이 4 원장선생님까지 5잔의 커피를 내리기 위해 커피잔을 꺼내 두고 커피캡슐을 종류 대로 꺼내 들었다.


그런데..

오잉?우리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비품 중에 하나인 우유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다.

어딨 지? 분명 얼마 전에 한 박스 사두었는데...

그새 다 마셨나? 놀랠 일이다.

우유로 목욕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1리터짜리 12개 한 박스를 사다 놓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없다

그 많던 우유는 누가 다 마셨을까?

누구겠는가 생각해 보면 다섯 명이 커피라테 하루 2잔 싹만 마셔도 우유 한통은 금방일 게다

커피마니아 들이니 때로는 서너되니 사다 놓는 사람은 벌써? 하지만 이상할  없다.

핑계김에 지갑 챙겨 들고 마트로 외근?을 나갔다.

독일 커피는 안 그래도 진한 편인데 직원들에게 우유 없이 보약 대신 커피만 원샷 때리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병원이 있는 골목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큰길이 나온다.   하나 건너서 왼쪽으로 100미터가량 내려가면 마트 하나가 나온다.

가로수 나무에 봄내음 물씬 풍기게 물이 오른 것도.. 꽃망울 터진 개나리도 이제는 봄을 맞이할 준비가 끝난  보인다.

무엇보다 보통 병원에서  시작하고 정신없을 시간에 빠져나와? 유유자적 하게 마트를 가는 기분은 남다르다.


왠지 학교 다닐 때 가끔? 치던 허락된 땡땡이를 치는 기분이랄까?

내가 들른 마트는 동네 마트 치고는   편에 속한다. 안에 빵집도 들어 있고 필요한 대부분의 것은 충족할  있는 규모의 마트다

출근 시간과 등교 시간이 이미 지난 마트 안은 조용하고 한산했다.

평일 이 시간에 마트를 올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살 것은 딱 정해져 있는데 괜스레 기웃거리게 된다

색색의 튤립들과 어여쁜 꽃들은 눈으로 담고 필요했던 문구류는 하나둘 장바구니에 담는다.

병원에 필요한 컴퓨터 용지, 인쇄기 잉크, 서류철 등등 은 인터넷으로 대량 주문 한다.

그런데 간혹 형광펜 이라던가 딱풀  하나둘 떨어진 것들은 마트에서 사기도 하니 때마침   거다.


역시 독일 문구류는 비싸다 요즘 아이들이 다 자라서 더 이상 문구류를 사다 줄 일이

많지 않아 잊고 있었다.

지우개 하나에 1유로 69 한다 이거 깨끗하게 잘 지워 지지도 않는 건데..

올라간 환율에 부가가치세 더하면 지우개 하나에 한화로 약 3천 원 정도 하는 거다.

한국도 물가가 많이 올랐지만 지우개 하나에 삼천 원은 너무 하지 않은가.

언젠가 독일산 색연필을 한국에서 더 싸게 샀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동네에서도 다이소 같은 1유로 라덴 이라던가 테디 같은 곳에 가면 지우개나

문구류 1유로 살 수도 있다 품질이 조금? 다른 것과 동네마다 있지 않다는 것이 함정 ㅎㅎ)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담고 우유도 담았다.

보통은 H-Milch라고 불리는 고온에서 균일화 되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우유를 12개짜리 박스로 산다.

커피에 넣어 마실 우유라 보관기간이 2주에서 3주밖에 되지 않는 신선 우유 보다 긴 3개월 이상 보관이 되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오래 보관용 1리터짜리 12 1박스 우유는 15유로 에서 18유로 선에 마련할  있다.

그리고 신선우유는 1리터짜리 하나에 99센트부터 있다.

한화로 하면  사백 원에 우유 한통 그리고 12  박스 2 2 원가량에 모셔   있다는 이야기다.

독일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문구류는 비싸지만 유제품은 저렴한 편이다.


그런데 마트까지 장바구니 들고 걸어온 것이라 박스체 들고 가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신선 우유 세 개를 담았다.

보기 보다 팔에 힘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 괜히 무리했다가  나는 것보다 지금 필요한  준비해 두고 퇴근해서  보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예전에 비해 몸은 커졌지만 힘은  없다.ㅎㅎ)


그렇게 15유로 한화로  2 2  정도의 문구류(형광펜과 지우개) 1유로 55센트 한화로  7  정도 하는 신선우유    장바구니에 담고 평소 직원들이 좋아라 하는 세일을 잘하지 않는 커피 캡슐을   골고루 담았다.

스위스산 커피캡슐인데 맛이 다양하다

캐러멜맛 캡슐, 헤이즐넛맛캡슐 그리고 에스프레소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룽고 캡슐을 넣었다

비싸서 가끔 준비하는 보너스라고나 할까

1통에 10개의 캡슐이 들어 있는데 다섯 명이 두 잔씩 마시면 오전 중에 끝난다.

그런데 그 한통이 한화로 약 4천 원가량 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사다 마시는 것 보다야 당연히 싸지만 그럼에도 매일 여럿이 마시기에는 부담이다.


게다가 이장바구니는 내 개인 돈으로 하기로 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너무 무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별로 담은 것도 없는 장바구니 한화로 약 5만 5천 원가량 들여 결제하고

어쨌거나 직원들이 기뻐할 것을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마트를 나오려다 다시 들어갔다.

빵가게 조각 케이크들이 스쳐지나가는 내 눈에 뜨였기 때문이다.


평소 라면 누구 생일이라던가 해서 직원들이 케이크를 구워 오기도 하고

또 내가 가끔 시간 되면 구워 오기도 하며 종종 환자들이 고맙다며 들고 오기도 한다.

그런데 기왕 마트로 외근 나온 김에 종류 별로 조각 케이크를 담아 간다면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커피 한잔과 간식을 곁들일 수 있으리라

조각 케이크는 한 조각에 2유로 65센트 한화로 약 3천9백 원가량 하니 우유 한통 사러 나왔다가

어찌 보면 배보다 배꼽이지만 오늘은 언니가 쏜다! 분위기도 괜찮을 것 같다.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우리에게 주워진 하루하루가 모두 다른 스페셜 데이가 아니던가.

마트로 외근 나온 김이 양손 가득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날 그렇게 하기를 너무 잘했다 나 자신을 두고두고 칭찬한다.

그날 오후에 굉장 치도 않은 진상 중에 진상인 환자와 직원들이 승강이를 벌여야  일이 생기고 말았으니….

미리 목에 기름칠이 아닌 달콤함으로 채워서 그나마도 덜 스트레스받는 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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