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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19. 2023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권법

우리 병원의 MZ신입 여우곰


살다 보면 우리 조상님네 들은 어떻게 그렇게 현명했을까? 감탄할 때가 있다.

인터넷도 검색창도 없던 그 옛날에 도대체 그런 건 어찌 알았을까? 말이다.

시대도 세대도 다르건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본성은 같은 걸까? 싶게 사람에 관한 속담이나 격언 들 중에 지금 시대 에도 뼈를 때리는 주옥같은 속담 또는 격언들이 많다

가령,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라던가, 물에 빠진 사람 구해 놨더니 보따리 내놔라, 내 코가 석자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일 못하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 등등 끝도 없다.


그렇게 무릎을 치는 속담 들 중에 내게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속담이 하나 있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속이 좁은 인간이다 보니 이 나이? 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우면 그냥 상대 안 하면 되지 미운데 어떻게 떡을 더 주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직업을 거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았지만 내겐 현실성 제로였던 속담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고 좋은 뜻이지만 막상 실천이 너무 어렵다고나 할까?

나는 사실 이 속담의 원뜻은 떡 많이 먹고 목에 탁 하고 걸려 눈물 콧물 다 빼라는 거 아녀?라는 내식의 풀이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게 그동안은...

프리랜서로 혼자 일하거나 팀으로 일을 해도 워낙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여서 그중 상대하기 싫은 사람은 패스해도 되는 일들을 해왔기 때문일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줄까? 를 시전 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내게도 그런 날이 찾아왔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만나야 하고 어떻게 저렇게 얄밉지 라는 밉상을 신입 직원으로 뽑았기 때문이다.

울 독자님들은 언젠가 브런치 글로 만나 보셨을 여우곰 그녀라 쓰고 그년이라 읽을 GL이다.


그녀가 허구한 날 지각을 밥먹듯이 하니 평소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남편도 "혹시 일하기가 힘들면 언제든 이야기해도 괜찮아요"라고 돌려 까기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무슨 일만 시키면 그냥 있어도 큰 눈 동그랗게 뜨고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이유가 그리도 많은지 어느 날은 내 기분을 지키기 위해 서라도 차라리 모른 척하던가 하고 싶은 말을 반만 하고 삼킨 날 도 있었다.

마치 SNL의 MZ 오피스에서 주현영 배우가 에어팟 끼고 일하던 신입에게 "일할 때는 에어팟 빼고 해요~!"

했다가 눈 동그랗게 뜨고 "저는 노래를 들으며 일해야 능률이 오르는 편이에요!" 라던 신입에게 마지못해

"그럼 하나만 빼요!"라고 말하며 속으로 빡치는 장면과 아주 닮아 있다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지각을 하며 헐레 헐레 뛰어 들어온 여우곰은 미친년 꽃다발 같은 머리를 해서는 숨을 헐떡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있는 주차장에서 뛰어 왔다 이거다.

나는 오늘은 또 무슨 핑계를 대려나 싶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심코 보다 보니 크지 않은 직원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리며 바로 앞쪽에서 가운으로 갈아입던 그녀의 머리가 다른 날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파마했나 봐? 머리 이쁘다!"라고 했다 얼떨결에 진심이 나온 순간이었다.


자연스레 구불 거리는 금발인 그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솜씨 좋은 원장님이 물펌으로 말아 준 듯 멋져 보였다.

게다가 머리를 감고 말릴 시간이 없어 그냥 출근했던지 아님 머리에 없는 시간에 물칠 만 이라도 하고 온 건지 하여간 촉촉한 머리는 그녀의 머리를 더 자연스러운 웨이브로 보이게 했다.


그녀는 두 눈을 깜박였다 그녀도 나도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때 내 입에서 머리 이쁘다 소리가 튀어나올 줄이야.!

평소의 루틴 대로 라면 나는 '또 뭔 일인데!'를 얹은 "무슨 일 있었어? "라고 했을 터였고 여우곰은 왜 지각을 해야 만 했는지에 대한 "편두통 때문에 늦잠을 잤다!"거나 "요 아랫길 신호등이 고장 나서 신호대기에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다거나" 믿거나 말거나 인 변명거리를 들고 나올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뭐 대단한 비밀 이야기를 전해 주기라도 하듯 속삭 이듯 말했다

"이게 원래 내 머리야 오늘은 펴고 올 시간이 없었어"

순간 내 맘 속에는 '아하 그래서 네가 맨날 늦는구나, 졸라 머리 펴느라!' '와 레알? 겁나 개이득!'이 동시에 들어왔다.

그러나 늘 진심은 강하므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릿발 찬양이 쏟아졌다.

"우아 너 미용실 돈 굳었다 이렇게 이쁘게 머리 파마 하려면 얼마나 비싸니, 게다가 나는 파마도 잘 안 나와서 맨날 꽃다발로 다녔어"라고 말이다.


진심 그녀의 자연산 머리가 부러웠다. 오래전 독일에서 딱 한번 미용실에서 파마했다가 자고 일어나면 솜사탕처럼 변하는 머리에 무한반복 낙담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붕붕 뜨는 머리카락에 아무리 세다는 헤어 젤을 쳐발 쳐발 해도 가라앉지를 않아서 헤어스프레이 뿌렸다가 하루 종일 머리가 굳어서 김자반 같았던 흑역사는 저런 축복받은 할렐루야 머릿발에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때 GL이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니 생머리가 너무 부러워 그래서 맨날 팔 아프게 쭉쭉 펴고 다녀!"

그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서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사람이 다 가질 수 없는 거야 다른 사람이 가진 게 더 나아 보이니 말이지 이럴 때 한국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해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그날 이후였던 것 같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던 시점이 말이다.

종종 GL이 자연산 머릿발을 휘날리며 헐레벌떡 출근을 하는 날이면 나는 진심을 담아 예쁘다를 연발했고 그녀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넘기며 웃고는 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갑자기 180도 바뀌기야 하겠는가? 그녀는 예전보다는 지각하는 횟수가 적어졌을 뿐이고 나 또한 머리 욜라 펴느라 또 늦어 구만 하고 만다.

또 눈 동그랗게 뜨고 "지금 말고 나중에 할게"라고 시킨 일에 단서를 달 때면 "어 그러던가!" 라며 어금니를 악물던 이전에 비해 맘 편하게 "그래 대신에 잊어버리지 마!"하고 웃어넘기려 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변화들이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지만 말이다.

문득,다른 이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해 주려고 하고 실수나 잘못이 있어도 쪼금 더 너그러워지는 거 이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 스스로 스트레스받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눈치 보는 듯 보이던 GL이 어느 날은 내게 어떤 커피를 좋아하느냐 묻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먹어 보니 되게 맛나 더라며 우리 병원에 있는 것과 다른 종류의 커피 캡슐을 들고 와 커피를 내려 주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헤이즐넛 이 포함된 커피 캡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새 곰의 탈을 쓴 여우가 더 이상 밉지만은 않아 지기 시작했다.

물론 GL은 여전히 중간중간에 나를 빡치게 하고 나는 늘 그러하듯 금세 이마빡을 찌푸리며 줄을 긋는다.

그럴 때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권법을 마구 시전 중이다

머리뿐만 아니라 잘한 것에 대해서는 무한 칭찬을 해주고 실수 한일에 대해서는 요가에서 단전호흡 하듯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욜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면 빡치는 횟수도 적어지고 이마에 주름질 일도 줄어 들고 있다.

역시 우리 조상님들은 현명하셨다. 오늘도 나는 지혜로운 속담 미운 놈 떡하나 준다를 되뇌어 본다.

커피 한잔에 헤벌레 해 지는 나를 보면 미운놈 떡 하나 더 준다 권법은 그녀도 시전 중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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