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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24. 2024

독일 한여름에 만드는 물냉면

한 그릇의 물냉면을 먹기 위해


아침 일찍 장 봐 온 것들을 풀고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밖은 뜨거운 뙤약볕이

넘실 거렸고 집안은 후끈 달아 올라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너무 더워서 조금 움직이다 선풍기 앞에 얼굴을 들이밀기를 수차례..

이 더운 날 냄비에 물 끓여 대며 고기 육수 내고 면 삶아 낼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저녁에 먹자 할까? 아님 내일 먹자 할까?

그런데.. 요 촐싹이 남편이 벌써 말해 버렸으니 어쩌나

마트에서 집에 오자마자 남편은 막내에게 "엄마가 점심에 냉면 해 준데!"

라며 신나게 떠들어 댔다

지가 할 것도 아니면서..


그 소리에 막내는 한껏 기대에 부푼 얼굴로 "오 옛쓰!"를 외쳐 댔다.

냉면이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듯 누르기만 하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물냉면 한 그릇 먹자고 이 더운 날 왕복 6시간 걸리는 프랑크푸르트 까지

다녀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에 전화해서는..

"여보세요 거기 냉면집이죠? 여기 독일인데요 냉면 세 그릇 배달 부탁 드려요!"

 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엄마 닮아 먹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좋아라 하는 막내의 최애 음식 중에 하나가

 물냉면이다

 막내아들의 아이 같은 환호성에 뜸질하게 더운 날 얼음 동동 띄운 물냉면을

 만들어 주기로 한다.  



그나마도 면을 직접 밀어야 하는 게 아니니 그게 어딘가?

지난번 아시아 식품점에서 미리 사다둔 냉면 면을 미리 꺼내 두고 큰 냄비를 불에 올리고

먼저 육수 낼 준비를 한다.

마트에서 건져온 양지머리는 생각보다 훨씬 육질이 좋아 보였다


독일요리는 우리처럼 국물 요리가 다양하지 않아서 부위 별로 용도 다르게 사용하는 우리 와는 다르다.

때문에 정육점 또는 마트 고기 코너에 가면 국물 또는 육수 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기의 종류가 그리 다채롭지 않다.

덩어리 고기 여도 주로 굽거나 찌는 용이 많기 때문이다

국물용 고기는 주로  Suppenfleisch 수프용 고기 한 가지로 뭉뚱그려 여러 부위가 나온다.


때에 따라 양지머리가 수프용 고기로 나와 있을 때도 있고 또 어느 때는 엉덩이살 다른 때는 다릿살 그리고 부위를 정확히는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수프용 고기는 스테이크로 또는 통 구이나 말이 등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모양 상관없이

자투리 들도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아침부터 싸가지 직원을 만나 기분이 좀 거시기하기는 했지만 육수 용으로 선택한 양지머리 고기만큼은 훌륭했다.

고기코너 싸가지와 돌아온 파이터




냉면 샐프로 빠르게 만드는 방법 :


우선 커다란 냄비에 물을 가득 담고 미리 손질해 둔 고기와

대파, 마늘, 양파, 통후추, 사과를 넣고

끓인다.

국물이 뽀글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불을 낮추고 거품을 걷어 내며 뭉근히 끓인다.

고기가 푹 익고 육수가 다 된 듯 보이면 맑은 육수가 되도록 체에 밭쳐 국물만 걸러 내고

익은 고기는 납작납작 썰어 둔다.

그렇게 썰어 놓은 수육은 그냥 먹어도 맛나 지만 양념해서 냉면 고명으로

사용하면 더없이 맛나다.


미리 냉장고에 넣어 둔 육수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때는

예전 냉장고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수박 냉수에 담가 뒀다 먹었던 것처럼

금방 끓인 김 펄펄 나는 육수를 큰 그릇에 담아 얼음물 가득 채워둔 그릇에

담가 식힌다.


육수를 식히는 동안 냉면에 얹을 고명을 만든다

무, 양파, 오이를 얇고 길게 납작납작 썰어서 식초, 소금, 설탕을

1:1/2:1 비율로 넣고 절여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미리 썰어둔 수육도 국간장, 후추, 파, 마늘로 밑간을 하고 조물조물 묻혀

놔둔다

이렇게 냉면 고명 두 가지가 준비된다.

그리고 뜨겁던 육수가 식혀지면 국간장, 소금, 식초, 설탕을 넣고 간을 한다

그다음 육수 통째 냉동고에 넣어 둔다.


육수가 냉동고에서 시원해지는 동안

큰 냄비에 물을 끓여 면을 삶을 준비를 하고 한 옆에서는 계란을 삶는다.

더운 날 두 군데서 물을 펄펄 끓여 대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운이

쏙 빠지기는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거 속전속결이 답이다.


끓는 물에 냉면 면이 삶아지면 면을 건져 찬물에 잘 씻고 체에 밭쳐 물기를

뺀 후에 얼음과 함께 담아 둔다.

삶아진 계란 껍데기 까서 썰고 냉동고에서 육수를 꺼낸다.

식힌다고 식혀도 그날 낸 육수를 바로 사용하려면 한국에서 처럼 살얼음 낀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지만 얼음을 충분히 사용하고 거기에 맞춰 간을 하면

그럴싸한 육수 맛을 낸다.


그래도 여름이라 얼음이 충분해서 또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넓고 오목한 큰 그릇에 면을 넣고 그 위에 고기 고명 무 오이 고명 그리고

삶은 계란을 얹고 얼음 동동 띄운 육수를 붓는다.

그러면 짜자잔 ~

독일에서 겁나 더운 날 선풍기 틀어 놓고도 진땀 흘리며

만든 엄마의 물냉면이 요렇게 때깔도 예쁘게 나온다.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

식구들이 연신 맛있다 맛있다 한국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다

해 주니 어깨도 으쓱 해지고 이 맛에 요리하지 싶었다.

삐질 삐질 땀 흘리며 만든 보람이 있었다.

더운 날 속까지 짜르르하게 시원해지는 물냉면 한 그릇에 어느새

남의 시까지 패러디해 가며 고명 올리듯 행복을 얹었다.


한 그릇의 물냉면을 먹기 위해

아침부터 엄마는

그렇게 빡쳤나 보다.


한 그릇의 물냉면을 먹기 위해

육수는 냄비 속에서

또 그렇게 끓었나 보다


덥고 땀나는 무더위 속에

전쟁터 같던 주방에서

인제는 차가운 얼음 동동 띄워

식탁 위에서 거듭난  

물냉면 한 그릇 이여


요 노란 육수 우려내려고

더운 날 아침부터 엄마는 땀이 저리 내리도록

욜라 뺑이 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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