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침 출근길이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자동차가 아닌 트램을 타야 해서 다른 날 보다 서둘러 나왔고
둘이 아닌 혼자 출근하는 길이라는 것뿐이다.
걷고 있던 길 맞은편에 타야 할 3번 트램이 정차해 있는 게 보였다.
사람들이 전차에서 이제 막 내리고 있었고 곧이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타고나면
차는 언제라도 출발할 것 같아 보였다.
이런...
순간 걸음이 빨라졌다 아마 삼초쯤 고민했던 것 같다
뛸까? 말까?
백 미터 25초 뛰는 내가 발이 보이지 않도록 뛴다 한들..
가려는 차를 탈 재간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내 손에는 따근한 카푸치노 한잔이 들려 있었다.
건널목 신호등도 내 마음을 알았던지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다
그렇게 떠나가는 차를 눈으로 좇으며 카푸치노 한 모금을 넘긴다.
뭉게구름을 닮은 하얀 우유거품의 몽글 거림 사이로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가 스며든다.
트램 정류장 전광판 위로 8분 뒤에 들어오는 1번..
그다음 도착하는 3번은 15분 후라고 알리는 오렌지빛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15분... 카푸치노 한잔 마시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평소 같으면 학생들 등교 시간과 맞물려 꽤나 복잡했을 정류장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어서 인지 한산 하다.
트램 정류장에는 유리로 된 처마가 있고 촘촘한 목재로 되어 있는 긴 의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식지 않은 커피를 들고 의자에 앉으려니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엊그제 그렇게 더워서 얼음 동동 띄운 물냉면 만드느라 난리도 아니었는데..
손에 감기는 따사로움이 포근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여름과 가을을 며칠 사이에 문하나 열고 왔다 갔다 하는 기분 이라고나 할까?
마치 예전 빅히트였던 드라마 도깨비에서 문 하나 열고 들어가니 단풍국 캐나다였던
것처럼 말이다.
독일의 여름은 짧지만 이다지도 변화무쌍하다.
지난 주말 32도를 웃돌다 이번주 되니 20 도로 뚝 떨어지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거기다가 일교차는 또 어찌나 다채 로운지..
아침에 17도로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고 낮에는 금방 기온이 올라가 30도 가
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또 어느 여름날은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것 같은 파란 하늘에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떠다니다가도
어디선가 잿빛 구름들이 몰려와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며
비 또는 우박이 내리기도 하고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한다.
마치 날씨가 "있는 종류는 한 번에 싹 다 보였주겠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날씨가 오락가락해도 누구 하나 당황 하는이 없이
날씨에 맞춰 옷을 입고 다닌다.
더하고 덜할 뿐이지 일 년 내내 날씨가 왔다갔다 하는 날이 많다 보니..
사람들은 이미 널뛰기하는 날씨에 익숙할 대로 익숙하다.
그리고..
나이 든 분들은 아직도 아침마다 종이로 된 지역신문 한두 개 이상을 읽고 계신다.
예전에 울아버지가 신문 귀퉁이에 나와 있던 오늘의 운세를 꼭 찾아보셨듯
일기예보를 챙겨 보고 다니 신다.
젊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기 예보 엡이 핸드폰에 깔려 있다.
내 핸드폰 에도 실시간으로 날씨의 변동 사항이 친절하게 알림으로 뜬다.
길에는 엊그제 까지 얇은 끈나시 원피스 차림이 많았다 특히나 올해 유행이기도 하고
세일을 해서 9유로에 판매 됐던 H사의 파란색 스파게티 끈 원피스는 너나 할 것 없이
입고 있어 국민 원피스 같았다.
유행에 덜 민감하고 자기만의 스톼일을 고집하는 독일 사람들에게도 요즘은
이렇게나 유행스럽게 퍼지는 것들이 간간이 있다.
분명 엊그제 까지 끈나시 원피스, 민소매에 짧은 바지들을 입고 다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이였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긴팔 긴바지를 입고 나와 서 있는 모습이 재미나 날씨
이야기에 빠졌다.
이런저런 독일 날씨 타령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타야 할 3번이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지갑을 열어 잔돈을 챙긴다. 표를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도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교통카드들이 있다
버스, 기차 등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도이칠란트 티켓도 있고
일 년짜리 한 달짜리 다양하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 타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낱장을 전차 안 기계에서 직접
뽑던가 미리 5장짜리를 끊어 둘 수가 있다
지난번에 사 두었던 5장짜리를 다 써서 트램 안 기계에서 표를
사야 하니..
흔들리는 트램 안에서 동전을 찾는 것보다 미리 준비를 하고 타면 빠르다
가끔 기계에 잔돈이 없거나 카드 결제가 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오는 트램 칸 중에 티켓 자판기가 들어 있는 칸을 눈으로 훑었다.
맞춰 선 곳에 문이 열리고 내릴 사람 내린 후에 얼른 트램 안으로 들어가 표를 끊었다.
4 정거장 이상 가야 하고 환승이 필요 없는 편도 표는 한 장에 3유로 우리로 하자면 약 4천 오백 원 가량 한다. 비싼 편이다.
그래도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한참 가야 하는 종점이라 조금 덜 아깝다.
표를 들고 안전을 위해 빠르게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요런 때는 몸이 잽싼 편이다.
트램 은 예전에 우리도 있었다는 전차다. 지하가 아니라 지상을 달리다 보니 동네 구경 하는 관람차 같기도 하고 기차 같기도 하다.
차체가 크다 보니 버스보다는 속도가 있어도 안정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갑자기 급정거하는 일도 생기고 가끔 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전차가 좌회전 우회전 하며 돌 때는 휘어지고 덜컹 거리는 느낌이 온몸에 전해 지기도 하고 한 곳으로 쏠리기도 한다.
원래도 운동 신경이 없는데 순발력까지 떨어져 낙법이 불가능한 나 같은 사람들은 앉아 가는 게 상책이다.
트램이 기차역에 섰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려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앞쪽이 텅 비었다.
방학이라 집에 가는 대학생도 있을 것이고 또 어디론가 여행을 가는 이도 또는 출장을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와 휴가를 떠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기차역은 지날 때마다 늘 알 수 없는 설렘이밀려온다. 아마도 우리 아이들이 집에 올 때
마중 나가는 역 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요기서부터 25분가량 가면 내가 내려야 할 곳이 나온다.
종점이니 잊지 말고 내려야 그 차 타고 다시 거꾸로 시내로 나가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가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정거장마다 트램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내리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트램을 탄다.
각기 다른 시간 때의 다양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며 그 모습이 문득 우리네 인생살이의 단면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매일 매 순간 만나지는 일과 사람들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른다 내일 이 시간 어디에서 어떤 모습의 나로 서 있을지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매 순간이 모여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