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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건물 공사의 문제적 문제.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by 김중희

우리 병원이 월세 내며 세들어 살고 있는 건물이 거의 반년째 공사 중이다.

1960년 증축된 이 건물은 그동안 건물주도 여러 번 바뀌었고 수많은 세입자들이 거쳐?

갔지만 안이나 밖이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세월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우리가 병원을 시작한 지도 8년째고 그전에 병원들도 한결 같이 그대로였으니

건물만 놓고 보면 박물관 급이기는 하다.


지금의 건물주는 건축가이고 젊은 사람이니 언젠가 뭔가를 하겠지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공사 계획이 잡힐 줄은 몰랐다.

시작은 이러했다 어느 날 우리의 건물주 께서 시에서 보조금을 받아 건물 전체 벽면에

단열재 시공을 한다고 했다

요즘 시에서 에너지 절감 장려 차원에서 보조금을 넉넉히 주니 이때 해야겠다고 말이다.

거기다 최대한 병원 진료 시간을 피해서 공사를 하겠노라 하니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언제나 계획은 계획일 뿐일 때가 많지 않은가?


단열재 시공을 한다고 벽을 까다 보니 오래된 창문들의 틈새가 보이고 창문들을

새것으로 갈다 보니 낡은 지붕 사이로 열이 빠져나갈 것이 보였던 게다.

이래저래 하루가 다르게 공사의 규모가 커지더니 전방위 적인 대공사가 되었다.

그러니 처음 약속한 대로 진료 시간 피해서 아침 일찍, 오후 늦게 또는 주말이나

우리가 휴가 간 사이에 공사만 가지고는 택도 없는 일이었다.


급기야 하루 종일 진료 시간 에도 공사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창문을 통해 인부들이 오가는 소리뿐만 아니라 망치와 드릴의 합주를 원 없이 듣게 되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명확하게 들려오는지 마치 내가 뚫리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정원이라 불리는 내 사무실은 건물 서쪽 끝의 벽 쪽이 붙어 있다.

앞 뒤 옆 세 방향이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고 벽면이 넓다 보니 공사되는 면적

또한 컸다 창문 앞쪽에 계단식 공사 난간들이 설치 되었고 낯선 장정의 남정네들이

그 길을 오가며 내 책상 모니터 바로 앞쪽에서 드릴과 망치를 치고 있었다.

그 격렬한 소리들이 귀와 뇌를 헤집고 있었다.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아도 도저히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진료실도 마찬가지 목소리가 낮거나 작은 환자의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아

원장쌤도 진료를 보기가 힘들었다.


빠르게 건물 밖으로 뛰어 나가 공사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독일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요즘 독일 건설 현장에서는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사람들이 아예 한팀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인구 감소도 한몫하겠으나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힘든 일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더 그렇다


그런데, 이럴 경우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독일 사람이거나 독일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일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씨부려 쌌는데.. 도무지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가 없는 거다.

어느 나라 인지 알아야 구글 번역기라도 돌리지 않겠는가?


이야기가 통할리 만무한 상황임이 인식 되자

나는 결국 만국 공통어 바디랭귀지를 꺼내 들었다.

먼저 양팔을 길게 펴고 손을 쥐어 벽에다 망치와 드릴 하는 시늉을 하며 드르륵 하는

음향 효과까지 내며 보여 주었고 거기다가 아이고 머리야 할 때 같은 표정으로 머리에

손을 살짝 얹었다


그러자 그들이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줌마가 공사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머리가 아파 뒤지겠소 하나 보다 하는 표정이었다.

나의 메소드급 연기가 먹혔는지 의사소통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에 업되어 조금 더 디테일 하게 전달해 보기로 했다.

한 손으로 건물 벽에 숭숭 뚫린 구멍을 가리키며 두 손으로 귀를 감싸고는 머리 가까이 대고

손가락 하나를 뱅글뱅글 돌렸다.


예전 어릴 때 친구들과 장난치며 너 미쳤어?라는 뜻으로 하던 그 재스츄어 말이다.

설마 욕으로 알아듣는 것은 아니겠지? 하며...

한마디로 저 벽 뚫는 소리에 돌아 버리겠소 라는 뜻으로 전달되라고 열심히 머리와 손가락을 돌려 댔다

마치 사물놀이에서 상모 돌리기를 휘모리장단으로 하듯 말이다.

마구 돌려대던 나의 처절한 헤드뱅잉 과 손가락 빙빙의 뜻이 드디어 잘 전달되었는지 그들은 어디로 전화를 해서 뭐라 뭐라 해 쌌더니 공사를 멈추고 짐을 정리했다.

그런데 그 해프닝이 공사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에 정말 작은 시발점에 불과 하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주차장에 건축 자재들을 잔뜩 쌓아 놔서 환자들이 주차할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응급차 들어올 틈도 없이 막아 버리는가 하면..

어느 날은 병원 현관문을 바꾸며 열쇠통을 바꾸는 통에 직원들이 모두 병원에

못 들어갈 뻔한 적도 있었고 또 언젠가는 벽에 새로 벽 칠을 하기 전에 비닐로 문짝까지

몽땅 발라 버려서 비닐을 뜯어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성난 사자가 가열차게 비닐을 뜯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들은 그들의 말로 나는 한국어를 곁들여서..

어차피 독일어가 통하지 않으니 내 나라말과 바디랭귀지면 어찌 되었던 전달이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오히려 편한 면도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우리 직원 중에 한 명이 일하느라 조금 늦게 밖으로 나가다가

문 앞에 잘 놓인 하얀색 페인트 가득 담긴 통에 새로 장만한 빨간 원피스와 함께

그대로 발이 빠진 적도 있다.

그녀는 없던 흰색 무늬가 생겼다며 웃었지만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아닌가

또 어느 월요일 한창 바쁜 오전 진료시간에는 인터넷이 몽땅 나가 버려서

혼비백산 한 날도 있었다

건물 벽 공사 하다가 아예 인터넷 연결된 전화선을 끊어 버린 거다.

그뿐인가 화장실 벽에 걸린 거울도 떨어져서 새로 달아야 했고 새창문에 걸릴 새로운

블라인드 건다고 사무실 책상을 조립 아니 접어 버리고 컴퓨터와 인쇄기등의 기자재들을

옮겨 놓아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몇 주째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이 매주 새롭게 탄생하고 있고 때마다 기록을 경신하며

새로운 하이라이트를 찍고 있다.

그리고 건물 공사의 가장 큰 문제적 문제는

문제가 담긴 적나라한 사진들과 상세한 내용이 담긴

우리의 메일과 전화에 건물주는

미안하다 내가 해결하겠다는 말만 계속하고 있다는 거다

이제는 그의 별명이 지가 해결 하겠슈 가 될판이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겨 날지..,

도대체 이놈의 공사는 언제나 돼야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내일을 기다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수많은 문제들이 어찌 되었건 해결되었거나 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거다.

건물 공사 때문에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는 받는 일이 매일 마일리지 쌓이듯 차곡차곡 쌓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해결 되지 않는 일과 마주 하는 것 보다야 기다리면 해결될 일이 그중 났지 않은가 라며 최대한의

긍정 마인드를 끌어 올리려 오늘도 애쓴다.

아직 공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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