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월요일 회색빛의 비가 내렸다.

지인이 환자로 왔을 때...

by 김중희

부슬부슬 부슬비가 내리던 어느 월요일 아침 진료 시간이었다.

늘 그렇듯 사무실과 진료실 사이를 날듯이 오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오전 진료 시간은 바쁠 때가 많다. 특히나 월요일 오전은 북새통이다.

주말 지나면서 감기를 비롯해 갑자기 아프게 된

환자들이 진료 예약 없이 들이닥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플 것을 미리 예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계획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진료 예약 안되어 있다고 아픈 환자를 돌려보낼 수도 없지 않은가

사실 독일 병원에서는 진료 예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진료를 해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자들의 주치의 격인 가정의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동료 병원 들 중에서는 응급이 아닌 감기 환자들은 돌려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 병원은 정 많고 융통성 있는 한국 의사 선생님이 원장선생님이 아니던가

그걸 용납할 턱이 없다.


그러니 병원에 온 환자들은 어떻게든 진료를 봐야 한다.

때문에 월요일 오전 진료 시간 이면 환자 대기실은 터져 나간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병원 입구 주차장으로 나가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꽉 찬 만원 버스 같은 모습의 환자 대기실이 연출되고는 한다.

그 속에서 이미 진료 예약이 되어 있는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환자들을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급한 순으로 잘 정리해서 진료실로 들여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된다.


정신없이 오가던 중에 방금 진료실 2로 환자를 안내하고 나오는 직원 GL을 마주쳤다.

급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 서로의 일을 나누고는 돌아 서는데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두 사람.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반가운 마음에 빠르게 눈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러다 왠지 마음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지는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왜 말보다 표정이 더 정확한 말을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여자의 멍한 얼굴과 남자의 긴장된 표정 속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집 막내와 초등학교 때 함께 농구부에서 농구를 했던 친구의 부모 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취미로 운동을 한두 가지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같은 학교가 아니어도 팀에서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과 친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 데려다주고 데려 오고 하면서 부모들끼리도 친분이 쌓이고 말이다.

운동 종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으나(축구가 조금 더 자주 모인다)

보통 트레이닝 하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 되고 주말에 시합이 잡힐 때가 많으니

못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게 되는 셈이다.


막내네 농구 동우회는 취미반이지만 아이들의 열정은 국가대표 못지않았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극성스러운 부모들도 많았다.

게 중에는 경기 중에 앞서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이래라저래라 해대는 통에

누가 감독과 코치인지 헷갈리게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설쳐? 대는 사람들 틈에 조용히 응원하던 편인 그 친구의 부모와

우리는 꽤나 코드가 잘 맞는 편이었다.

농구 경기는 주로 가을부터 겨울이 시즌이라 주말이면 경기장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차와 커피를 나눠 마시며 아이들 응원도 함께 하고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고는 했다.

몇 년간을 지속적으로 만나다 아이들이 운동 종목을 바꾸게 되고부터는

한참을 못 만났다


그러다가 우리가 병원을 개원 한 곳이 그 친구들이 새로 이사한 동네였고

온 가족이 우리 병원 환자로 오게 되어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일 년에 몇 번 되지는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반가웠다.

이제는 키가 190이 다 되어 가는 아이도 여드름 같은 것으로 병원을 내원했고 그 부모도 어쩌다 감기 때문에 직장에 낼 병가가 필요하거나 예방접종 하려고 오고는 했다.


그들은 아직 젊었으며 건강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아이들 커가는 이야기 또는 휴가 이야기 등의 일상 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만날 때를 기약하고는 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의 진료는 어딘가 다른 무게를 담은 듯 보였다.

진료가 끝나고 진료실을 나서던 그 아빠의 담담한 표정에서도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친구 엄마의 모습에서도 말이다.


그 며칠 전 친구 아빠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손이 떨려오고

감각이 없는 듯하더니 나중에는 얼굴 한쪽에 편마비 증상까지 있었다 한다.

직감 적으로 위급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응급차를 불러서 바로 대학병원으로 갔다고 한다.

그날 이후 뜻밖의 진단을 받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위해 다시 가정의 병원에 진료를 신청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간 것은 잘한 것이다.

그 덕분에 독일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단계적 시스템 다 건너뛰고 빠른 검사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검사결과는 무겁다.

하필이면 예후가 어려운 폐암에 뇌까지 전이된 상황이다.


당분간 그 가족이 견뎌 내야 할 혹독한 시간이 짐작되어 마음 한쪽이 천근만근이 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손을 잡아 주고 다 잘 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해 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병원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아픈 환자들이지만 지인을 어려운 케이스의

환자로 만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월요일 아침 내내 일없이 창가를 서성였다.

회색의 비가 창문 가득 마음 가득 흘러내리는 듯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