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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23. 2023

가성비를 포기하고 취향을 선택하면 벌어지는 일

신용카드 한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예쁘고 튼튼하면서 적당한 가격의 후기 좋은 물건

공간은 얻었지만 가구라고는 집에서 가져온 책상 하나와 책장, 거울, 행거, 의자 몇 개뿐. 작업이든 뭐든 하려면 우선은 사람이 쓸만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가끔 검색 포털에 예쁜 집을 소개해주던 앱을 깔고 물건을 하나 둘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스크랩한 상품이 10개, 50개, 100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집을 얻을 때처럼 기준을 빨리 정하지 않으면 물건을 고르는데만 몇 주를 허비할 판이었다. 어차피 사야 할 품목은 대략 정해져 있으니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빨리 정해야 했다.


수납할 가구가 부족해서 다 뜯지 못한 박스들


예전엔 '싼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디자인이나 제품의 질을 따질 만큼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더 좋은 건 '돈이 아예 안 드는 거'였다.


새것을 사기보다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려진 물건이나 가구를 가져와 쓴 적이 많았다. 사람들이 이사 갈 때 버리고 간 책상과 수납장, 서랍장은 물론이고, 의자와 소파도 집으로 가져와 깨끗이 닦거나 리폼해서 썼다. 대단지 아파트에 전세로 살 때였는데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갈 때면 재활용 쓰레기장 몇 곳을 돌면서 쓸만한 물건이 없는지 점검하는 게 일과였다. 지난번에 가져온 서랍장보다 더 나은 서랍장이 있으면 교체해 가며 쓰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좋은 물건을 발견하면 득템 했다며 쾌재를 불렀다. 어릴 적 아이들 방에 두었던 지구본도, 지금 집에서 쓰는 중고 캐리어 3개도 다 그렇게 모은 것들이다. 워낙 멀쩡한 상태로 버려지는 물건들이 많으니 주워다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


당시 우리 집에 제 값을 주고 산 물건이라고는 옷장과 식탁, 화장대, 브라운관 티브이와 냉장고뿐이었다. 결혼한 지 10년 즈음되었을 때 티브이는 고장이 나서 버렸고, 결혼축하 선물로 지인들에게 받았던 전기밥솥도 망가졌는데 새로 사는 대신 저렴한 압력 밥솥을 구해 밥을 해 먹었다. 신혼 초 작은어머님께 얻은 금성 전자레인지도 몇 년 후 수명을 다하였지만 그냥 냄비에 밥을 데워먹으며 버텼다. 에어컨은 둘째 출산 후 기념선물로 시할머니께서 사주셨는데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고, 집에서 자주 쓰는 냄비들 역시 오래전 아는 선배에게서 얻어온 것들이다.  


어쩌다 필요한 물건은 주로 중고나라에서 구입했다. 청소기, 전기오븐, 드라이기, 다리미, 전기포트 같은 작은 생활가전부터 아이들의 장난감과 전집까지.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중고로 파는 데가 있는지 먼저 확인을 해보곤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주변에서 옷을 얻어 입히고, 장난감도 아름다운 가게와 다이소에서 해결하며 먹는 것 외에는 최대한 돈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쓸 돈이 너무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2년 전 나의 당근마켓 중독은 갑자기 나타난 증상이라기보다 중고물건의 가성비를 뼛속깊이 체험한 탓에 나타난 당연한 증세였던 것 같다. 당근 마켓, 이거 어떻게 끊죠? (brunch.co.kr))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신발은 구멍 날 때까지 신고, 5천 원짜리 티셔츠도 고르고 골라가며 사 입고, 스킨로션 없이 맨 얼굴로 살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훌쩍, 쓰다 보니 정말 짠내 난다. 넉넉지 않은 살림을 꾸려본 전업주부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짠순이가 아니면 버틸 수 없는 그 고충을.


공짜와 중고를 너무나 사랑하고, 극도로 가성비를 추구하며 사는 날 보고 남편은 소박하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건 속을 모르고 한 소리다. 소박하고 싶어서 소박한 게 아니라, 소박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서 택한 생존전략이었다. 물론 명품백이나 화장, 패션, 액세서리, 헤어스타일 따위에 관심이 없으니 그리 보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소비에 대한 욕망이 없다면 거짓말. 사고 싶은 책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먹어보고 싶은 것도 많은 내가 어찌 마음껏 돈을 쓰고 싶은 욕망이 없겠는가. 그저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리 한 것일 뿐.




몇 년 전, 내가 쓸 원목 책상을 사면서 고민이 많았다. 이렇게 비싼 책상을 사도 되나 하고. 20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는데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도 구매 버튼이 쉬이 눌러지지 않았다. 비슷하게 생긴 더 싼 책상이 없나 하고 한참을 온라인에서 헤맸다. 더 싼 책상은 서랍이 없거나 원목이 아닌 필름지였으며 다리가 흔들린다는 후기가 많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까지 쓴다고 생각하면 사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내가 죽고 나서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을 정도의 책상이면 값을 치를만하지 않을까. 그나마 프리랜서로 돈을 버는 중이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고심 끝에 구입을 결정하고 2주 뒤쯤 도착한 책상을 보았을 때,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포기한 것이 단순히 돈 뿐만은 아니었음을. 누구보다 취향이 분명한 내가 꽤 오랫동안 취향을 포기하고 살았던 것이다.  


베란다에 책상을 놓고 쓰던 시절. 책상과 노트북, 조립식 수납장 외엔 모두 중고 의자, 중고 가방, 중고 스탠드, 중고 화병, 중고 수납함, 손으로 만든 책들....


그 후로는 조금 더 돈이 들더라도 취향에 맞는 물건을 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가격과 취향 사이에 적당한 타협은 필수. 아무리 마음에 든다 한들 400만 원짜리 소파나 100만 원짜리 식탁을 덜컥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에도 독립한 공간에서만큼은 내 취향을 온전히 담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일수록 오랫동안 아끼며 쓰게 된다는 걸 책상을 사용하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야 할 물건의 우선순위를 '내 마음에 드는 것'에 두기로 하고 기준을 정했다.


- 10년이 지나도 예쁘게 느껴질 디자인.

- 너무 비싸지도 너무 싸지도 않은 합리적인 가격.

- 사람들의 후기가 좋은 물건.

- 가구라면 소재가 좋고 튼튼한 원목 소재로 만들어진 것.


한 마디로 '예쁘고 튼튼하면서 적당한 가격의 후기 좋은 물건을 사자!'가 목표였다.


그러나 무수한 검색의 결과, '예쁘고 튼튼하면서 (내 마음에도 드는)적당한 가격의 후기 좋은 물건'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얼굴도 멋지고 몸매도 좋으면서 성격도 괜찮은 (나를 좋아해주는)돈 잘 버는 애인'을 찾는 것과 비슷했다. 문제는 역시 '가격'이었다. 적당한 가격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고수하는 한, 마음에 드는 물건은 포기해야 했다. 멋진 디자인에 오래 쓸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상품평까지 훌륭한 제품들은 예상한 금액보다 비싼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다짐하지 않았는가. 오랜 시간을 기다려 얻은 자유이니만큼, 취향을 온전히 담은 공간을 만들어보겠노라고.


나는 결심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살 예산이 부족한 거라면, 카드 한도를 늘리자고.


안다. 세계적 경기 불황으로 끔찍한 역대급 가난이 올 거라고 경고하는 유튜브 경제 학자들이 들으면 놀라 까무러칠 소리라는 걸. 노후 준비에 허리띠를 졸라매도 모자랄 40대 중반에 카드 플렉스를 하겠다니, 이 얼마나 자본주의의 노예다운 참담한 발상인가. 아껴 쓰고 저축하는 습관을 지니지 못하면 가난의 지름길로 빠지게 되나니 소확행과 욜로에 빠져 소비만 하는 인생들에게 행복한 미래는 없으리라!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런 계산과 의문이 떠올랐다. 큰 아이가 지난 3년간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사교육비로 쓴 돈만 해도 매년 천만 원인데, 아이한테는 쓰면서 나를 위해 쓰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부모의 자식에 대한 희생과 헌신은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는 걸까. 아이에게 쓰는 건 투자이고, 나의 소비는 그저 낭비에 불과한 걸까. 자녀의 미래가 소중하듯 한 인간으로서 나의 미래와 행복도 소중한 것 아닌가?


태어나서 지금껏 해외여행을 안 가본 내가 만약 5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갔다면 얼마 큼의 돈을 썼을까.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거나 결혼 10주년마다 명품백을 하나씩 샀다면? 내가 흡연자이거나, 커피나 캔맥주를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면? 남편처럼 새 차를 샀다면? 나는 그동안 내가 포기하거나 소비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소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꾸준히  책을 샀고(중고로 팔기도 했지만), 미술 공부와 대학원 진학에 적지 않은 돈을 썼다. 디자인 일을 하기 위해 비싼 노트북을 구입하고 그래픽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투입된 비용을 회수했고 그 이상의 돈을 벌었으니 단순히 소유를 위한 소비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는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하고, 아이들을 기르고, 부모님께 자식 된 도리를 하고, 친구와 동료를 챙기고, 여러 가지 사회적 의무와 역할을 챙기느라 많은(대부분의) 돈을 쓴다. 소득의 한계로 인해 생계를 위한 소비 외에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만을 위해 쓸 돈이 충분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고만고만한 소득을 쪼개고 쪼개 가족이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지출을 하고 나면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 이래 봤자 어쩌다 먹는 치맥이나 커피 몇 잔, OTT플랫폼 시청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한정된 자원은 우리를 포기와 선택의 갈림길에 세운다. 가족을 위해 쓰는 건 아깝지 않지만 나를 위해 쓰는 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여행을 가는 대신 혼자만의 여행을 포기하고, 개인책상보다는 식탁을 바꾸는데 돈을 쓴다. 우리가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카메론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위를 '미덕의 덫'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 명예와 존경, 선한 사람이라는 외부의 평가에 연연한 나머지 자기 욕망을 억제하는 덫에 걸린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 욕망이 타자의 욕망을 비춘 것일 뿐이라는 라깡의 말에 따르면, 내가 놓지 못하는 취향이라는 것도 자본주의의 환상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집착을 내려놓아야 해탈에 이른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비추어보아도 취향을 고집하는 것은 번뇌로 가는 지름길일 터. 하지만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던 고타마 싯다르타는 당대에 누릴 수 있는 온갖 물질적 향락 누린 후에야 그것의 허무함을 깨닫고 수행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물질의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무소유의 길을 가는 것과 물질의 풍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소유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하는 이상한 논리적 접근과 합리화의 결과, 나는 앱에 담긴 상품 리스트를 보며 각오를 다졌다. 12개월 할부로 원하는 물건을 사고, 1년간 매월 갚아나가기로. 대신 계약 기간인 2년 동안은 티셔츠 한 장도 사 입지 않겠다고. 그리고 유일한 신용카드의 한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시작된 택배 행렬.


(저는 평소 현금과 체크카드를 사용합니다. 신용카드는 채무나 다름없으므로 변제 능력 없이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매우, 매우 위험합니다. 저희도 결혼 초기 생활비가 부족해서 신용카드를 쓰다가 곤란한 상황을 겪었기에 정말 조심하며 씁니다. 제 글이 혹시나 무분별한 신용카드 사용을 부추기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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