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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28. 2023

더 이상의 무소유는 사양합니다.

우선 소유한 다음, 소유의 허망함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법정 스님은 살아생전 이렇게 설파하셨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스님은 자신이 애지중지 기르던 난을 밖에 내놓고 외출한 날, 뜨거운 햇볕에 난이 시들까 걱정되어 서둘러 돌아오는 자신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그것이 집착이고 괴로움임을.


하지만 초등학생도 자기 스마트폰을 가진 시대에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소비함으로써 존재하고 소유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비가 아니라 관계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소비를 향한 우리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쇼핑을 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에 중독된 사람은 결제할 때 느끼는 쾌감 때문에 쓰지도 않을 물건들을 자꾸만 산다.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해질 거라는 광고의 범람 때문일 수도, 개인의 고유성과 특별함을 중요시하는 시대적 변화와 SNS의 발달이 소비를 더욱 부추기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한시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스마트폰 세계는 모두 기업의 광고 수익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가치와 행복이 우선인 시대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세상, 시간도 없고 할 일도 많은데 어떻게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취향과 경제적 능력과 관심사를 일일이 설명할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보다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편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어깨에 멘 가방, 손에 든 휴대폰, 타고 온 자동차를 보고 그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한 눈에 파악한다. 단순히 타인을 평가할 때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올지 모르는 위협을 재빨리 감지하고 대응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시각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왔다. 디자인과 브랜드가 상징하는 표상을 입고 걸치면서 소비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는 이런 피치 못할 사정도 있는 것이다(이제는 자신의 뇌로 판단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단도직입적으로 성격 유형을 묻는 시대가 되었지만...).


다행히 법정 스님은 무소유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이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는 스님의 잠언은 미니멀 라이프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과 꽤 흡사하다. 처음 미니멀 라이프가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열한 벌의 옷으로 한 해를 나고 방 하나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는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인터뷰를 보고 참 멋진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삶의 양식을 동경하는 것과 실제로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일상을 지배하는 티브이와 스마트폰은 결코 청빈한 삶을 권장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많이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언제 어디서나 주입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저씨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티브이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의 삶은 자연이 주는 소박한 환경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방송은 그들이 사회와 관계로부터 고립되어 외롭다는 인상을 주고 도시의 인프라와 떨어져 사는 산중의 척박한 현실을 비춘다. 주인공들은 대개 사업에 실패하였거나 아픈 몸을 이끌고 산을 찾은 이들이다(성공한 사람들은 숲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산에서 채취한 나물로 반찬을 만들고 가마솥에 불을 지펴 밥을 지어먹는 삶이 생존의 각축전을 벌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쟁으로 내몰리는 팍팍한 삶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느린 일상의 여유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남편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저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나이 들면 산으로 갈까?"

"응 좋지. 혼자 가."


그 뒤로 남편은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이나 병원과 멀어지는 삶을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렇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은 티브이를 볼 때나 하는 말이다. 시청자들은 자본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들의 소박한 삶을 동경할지언정 자신이 추구하기엔 어려운 생활방식이라고 결론짓게 된다. 월든 호숫가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친환경 무소유의 삶을 실험한 소로우도 2년 후에는 문명의 세계로 돌아왔다지 않은가.


이러한 의식의 흐름을 따르다 보면 무소유를 향한 소비의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적게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이 오히려 자유와 행복에 가까운 삶이라는 의식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무소유를 향한 개인의 동경과 실천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강이 흐른다. 물질의 여백지향하면서도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심리적 저항에 부딪힌다. 나의 딜레마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공간에 여백을 두는 삶이 미래에 살고 싶은 모습이라면, 물질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지금 내가 바로 원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즈음 불어 초판을 번역한 영문판 '어린 왕자'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주민들과 운영하던 마을카페에서 낭독 모임을 하느라 몇 해 동안 반복해서 읽었는데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문장이 자꾸 눈에 걸리기 시작했다.

He carefully raked out his active volcanoes. The little prince possesed two active volcanoes, which were very convenient for warming his breakfast.
(그는 자신의 활화산을 정성껏 청소했다. 어린 왕자는 두 개의 활화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아침식사를 데우는 데 매우 유용했다.)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을 위해 별을 떠날 때, 어린 왕자는 별에 있는 활화산 두 개를 청소한다. 자신이 없는 동안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영문판에서는 어린 왕자가 청소한 두 개의 화산이 그가 '소유'한 것임을 명확히 밝힌다. 사랑하는 장미와 함께 머무는 소혹성 B612도 '어린 왕자의 별'이지, '어린 왕자와 장미의(우리의) 별'은 아니다.


나는 궁금했다. '어린' 그에게도 있는 공간이 왜 '어른'인 내게는 없을까 하고.




우리 가족은 지난 20년 동안 여섯 번의 이사를 다녔다. 낡은 20평대 아파트를 매수했다가 1년 만에 팔았던 기간을 제외하면 우리 집은 언제나 남편의 명의로 된 전셋집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집주인의 집'이지, '우리 집'은 아니었다. 전세금에 대한 권리는 언제나 남편에게 있었고, 나와 아이들은 세입자를 대표하는 남편과 가족으로서 함께 한 집에 거주할 뿐이었다. 한 집에 사니까 당연히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내가 집의 소유와 권리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데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고집이 남달랐던 둘째가 하루는 남편에게 심하게 떼를 쓰며 대들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은 고작 예닐곱 살 먹은 딸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며 이렇게 윽박질렀다.


"그렇게 아빠 말 안 들을 거면 집에서 나가! 여긴 아빠집이야!"


아이의 훈육에 익숙지 않은 남편이 자기 딴에는 혼을 낸다고 한 말이 그렇게 나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가 띵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 '남편의 집'이라는 사실을 처음 자각한 것이다. 남편과 나 사이에 건물주와 세입자만큼이나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거면 집에서 나가라는 으름장이 순간적인 분노에서 튀어나온 실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를 모른다면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매번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이삿짐센터를 부르고 짐을 정리하는 건  몫이었다. 나는 이사를 다닐 때마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남편의 도장을 대신 찍는 대리인 역할도 자주 맡았다. 한 번은  이사할 때 도움을 주시기 위해 부동산에 들렀던 시어머님이 '우리 며느리가 깔끔해서 집을 잘 관리하며 살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집주인을 안심시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사를 다니며 점점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집의 소유자인 집주인과 세입자인 남편, 그리고 대리인이자 관리자에 불과한 나의 처지를. 그때마다 내 마음에는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삿짐이 가득한 집 안으로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짐을 정리하고 밥을 챙기며 분주한 엄마이자 아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본주의와 가족 제도의 속살을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그 복잡하고 이상한 기분을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4인 가족의 구성원이자 살림의 책임자였던 내 삶은 다분히 소유와 거리가 멀었다. 나를 위해 사는 물건보다 가족을 위해 사야 할 게 많은 삶이었다. 먹다 보면 사라질 쌀과 식재료, 휴지나 샴푸 따위의 생필품들을 사는 것부터 청소기나 프라이팬처럼  누구의 소유도 아닌 물건을 사고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우리 집 냉장고, 우리 집 세탁기, 우리 집 소파는 있지만 나의 냉장고나 나의 세탁기, 나의 소파 같은 건 없었다. 어린 왕자가 아침식사를 데울 때 유용하게 사용한 활화산처럼 우리 집에도 가스레인지가 있었지만, 그 특별할 것 없는 물건조차 내 것은 아니었다.


어린 왕자가 소유한 행성과 두 개의 활화산 이야기는 내 삶에 작은 파문을 던졌다. 결혼 생활 내내 나는 그 불씨가 던진 질문을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살았다.


나에게도 '나의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을까? 나의 행성은 어디에 있는 걸까?




결혼 20년 만에 비자발적 무소유를 청산하고 장만한 이 공간은, 그 질문에 대한 일종의 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공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벽면에 이런 책장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도록 6인용 테이블을 둔 큰방
큰 방 한쪽에는 집에서 가져온 개인 책상을 두었다.


월세로 계약한 14평짜리 다세대 주택. 이곳을 온전한 나의 공간이라고 부르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겨우 2년간 머물 세입자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이만큼 오기까지도 20년이 걸렸으니 나의 노력을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시작은 미약하여도 끝은 창대할지도 모를 일. 취향을 듬뿍 담느라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가 되었지만 가족보다 먼저 이곳을 다녀간 지인들은 '혼자 쓰기 아까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말했다.


"망원동에 있는 에어비엔비 같아요!"


몇 년간 일로 만나 온 한 지인은 이런 말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 공간을 보고 나니까 '안녕'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요. 이 공간이 '안녕' 그 자체로 느껴져요."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불씨가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공간이 나로 느껴진다는 말. 언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내 존재의 어떤 부분을 알아준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단순히 공간을 갖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를 알아봐 주길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 이후로 나에게 지워져 있던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라는 역할을 걷어내고 나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낼 순수한 존재로서의 내 본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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