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매물을 살펴보다 지칠 때쯤 만난 이 집은, 앙증맞은 초록색 대문을 열고 반층만 올라가면 되는 다세대 주택의 2층이었다. 집에서 버스 3 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리인 데다 큰 아이가 다녔던 대안학교 근처라 익숙한 동네이기도 했다. 60대로 보이는 부동산 아주머니는 뒤따라 가던 나를 돌아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월세 45는 받아도 되는데 주인이 착해서 예전 가격 그대로 40에 내놨어."
고급정보를 몰래 알려주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계단을 먼저 올라 간 중개인이 도어록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열었다. 신발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처음 보이는 건, 창 밖으로 보이는 환한 햇빛이었다. 그동안 본 곳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좀 더 아늑하고 포근해 보였다.
도배와 장판은 집주인이 새로 해준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도시에서 기와지붕 뷰를 볼 수 있는 집이 몇 군데나 있을까. 해가 서쪽으로 넘어간 시간이라 실내로는 볕이 들지 않았지만 앞집 기와에 사선으로 그어진 햇빛이 따스해 보였다. 아파트만큼의 전망과 채광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실에 난 큰 유리창 너머에는 작게나마 베란다도 있었다. 나갔다 들어오기는 불편한 구조였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빨래를 널어두기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주방 싱크대 옆으로 식탁과 작은 소파를 놓을만한 거실공간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거실벽은 오돌토돌한 질감이 있는 페인팅 마감이었는데, 작업실 겸 공유공간으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에 너무 가정집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좋았다.
공인중개사가 내 표정을 쓱 훑더니 한 마디 툭 던졌다.
"이런 집은 금방 나가."
내일이면 이 집이 나가고 없을 것만 같은 기분.... ⓒEBS
빈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 바로 계약을 할 것 같았다. 화장실 바닥과 변기, 세면대도 모두 깨끗했고, 4년 전 리모델링을 하면서 보일러와 새시까지 모두 교체한 흔치 않은 집이었다. 나는 그래도 혹시 모를 문제는 없을까 싶어 방과 욕실을 더 둘러봤다. 욕실문과 방문은 얼룩 하나 없이 새것처럼 깨끗했고, 형광등도 모두 LED등이었다. 욕실 변기, 세면대, 싱크대 수압도 다 정상이었다. 더 이상 미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계약할게요!"
중개인이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 오늘 본 아가씨가 계약한대요."
혼자 월세집을 보러 오니 그냥 싱글로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집주인도 여성이 혼자 들어와 산다고 하니 깨끗하게 쓸 거 같다며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추석 앞이라 집주인이 도배, 장판 하는데 일주일 달라는데. 들어오는 날을 언제로 잡는 게 좋겠어요?"
"그럼 추석 연휴 끝나고 바로 들어올게요."
집을 보고 나오는 길에 중개인이 집주인의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왔다. 나는 길거리에 선 채 모바일뱅킹으로 곧장 계약금 50만 원을 보냈다. 집을 본 지 30분도 안된 시간이었다.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던 입주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서둘러 짐을 꾸려야 했다. 추석명절 준비도 함께 해야 했기에 마음이 바빠졌다.
우리 집은 추석, 설 명절뿐 아니라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 시아버지 제사까지 1년에 다섯 번 제사를 지낸다. 몇 년 전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싱글인 막내이모님 댁으로 분가하신 시어머니가 우리 집으로 제사를 모두 이관하셨기 때문이다. 두 형제 중 장남인 남편 덕분에 시댁에 갈 때마다 맏며느리 노릇을 하긴 했지만 집에서 제사와 명절을 지내는 건 전과는 다른 규모의 노동량을 의미했다. 일부 음식재료와 음식 만들기를 시어머님과 나누긴 하지만, 제사상에 올라갈 전체적인장보기와 재료 밑준비, 식구들이 먹을반찬,중간중간 먹을과일과 디저트까지 챙겨야 하는 데다 현관부터 싱크대 내부, 냉장고 청소까지 며칠에 걸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번엔 이삿짐도 싸야 하니 몸을 더 바삐 움직여야 했다.
계약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베란다 책장에 꽂혀 있던 책과 자료들부터 캐리어에 나눠 담았다. 그 외 문구류와 자질구레한 소지품들은 상자에 담고, 옷장에 안 들어가서 1년 내내 베란다 빨래건조대에 걸어두었던 겨울옷들도 큰 다용도 박스에 꾹꾹 눌러 담았다. 가구는 가져갈 게 많지 않았다. 베란다에 있던 책상 하나와 마을카페를 접을 때 차마 버리지 못한 망가진 의자 4개, 작은 책장 2개, 둘째가 안 쓴다고 내놓은 전신거울과 행거 하나가 전부였다.
이틀에 걸쳐 짐을 꾸리고 베란다 한쪽에 쭉 늘어놓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물건을 넣은 상자들 안에 내 영혼도 함께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 받은 상장들과 직접 그린 그림들, 손으로 만들었던 책이며 잡다한 메모들. 처음 산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던 아이들의 어린 시절 사진과 두 딸이 꼬물거리는 손글씨로 써준 카드와 편지, 마음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위로해 주던 시집과 소설, 어느덧 스무 권까지 늘어난 글쓰기 책과 밑줄이 가득한 논문 더미까지.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사는 게 버겁고 어려웠던 순간마다 나를 지켜준 소중한 것들이 그 안에 모두 들어 있었다. 베란다 구석에 자리했던 나의 작고 소중한 세계가 이제 새로운 곳으로 떠날 채비를 마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