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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9. 2023

드디어 시작된 한 동네 두 집 살림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

이사를 하고 나서 꼬박 두 달간은 작업실 출입을 삼갔다. 새로 둥지를 튼 본가(?) 살림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며칠간에 걸쳐 싱크대 정리를 하고 나서 며칠은 옷장 정리, 앞 베란다 정리, 뒷 베란다 정리, 냉장고 정리, 욕실 정리, 작은 방 정리, 창고 정리, 정리, 정리, 정리의 연속이었다. 저녁 즈음 되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쓰러지기 일쑤였다. 워낙 낡은 집이라 손볼 곳도 많았고 새롭게 구입하는 살림도 많았다.


새롭게 들인 살림 중 가장 덩치가 큰 건 모듈 소파였다. 넓은 거실에 커다란 소파가 있는 인테리어 사진을 숱하게 봤던 터라 나도 모르게 이런 스타일의 소파가 어울리겠군, 하고 사버렸다. 원하던 스타일의 좋은 제품은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었고 그보다 5분의 1쯤 하는 가격대의 비슷한 디자인으로 골랐다. 제 값을 주고 사야 쉽게 꺼지지 않고 오래 쓸 수 있겠지만 소파는 그 덩치만큼이나 가격이 후들거려서 몇 백만 원짜리 소파를 덜컥 살 수는 없었다.


그다음으로 들인 큰 살림은 침대였다. 기존 집은 안방이 작은 데다 남편 짐이 많았다. 요 하나만 깔아도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좁았다. 한데 이 집은 안방이 어찌나 넓은지 20평대 아파트의 거실만했다. 남편의 물건들을 모두 작은 방 한 곳으로 옮긴 덕분이기도 했지만 방 네 개짜리 집의 위용인 듯싶었다. 싱글 침대 두 개도 충분히 놓을 수 있는 넓이였기에 어떤 침대를 살까 고민이 많았다.


처음엔 그냥 싱글 침대 두 개를 사려고 했다. 큰 사이즈의 침대를 사도 어차피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옆에서 못 잘 게 뻔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싱글 사이즈는 나보다 체격이 큰 남편한테는 불편할 듯했다. 그럼 퀸 하나와 싱글 하나? 아무리 안방이 넓다지만 그렇게 두 개를 놓으면 또 너무 좁아질 거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킹 사이즈뿐. 그건 내가 집에서 잘 때마다 남편의 코골이를 참고 버티든가 전처럼 거실에서 자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어차피 새 소파도 들어올 거니까 거실에서 자는 게 그리 불편하진 않을 터. 작업실의 싱글 침대에서 혼자 자는 대가로 집에서 가끔 불편하게 자는 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싱글 두 개를 놓아두면 남편이 안방에서 잘 때마다 빈 침대를 바라보게 될 테고, 그러면 나의 부재가 더 도드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남편에게 싱글 두 개와 킹 사이즈를 놓고 고민했다는 말을 숨겼다. 그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서운해할지도 몰랐다. 굳이 전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는 그냥 혼자 꿀떡 삼키는 게 낫다. 남편에게는 그냥 큰 원목 침대를 샀다고만 일러두었다.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남편을 위해 매트리스만큼은 신경 써서 골랐고, 난생처음 하얀 호텔식 침구류도 주문했다.


한겨울에 이사를 한 데다 처음 살아보는 꼭대기층이어서 신경 쓸 게 많았다. 거실뿐 아니라 모든 방마다 방풍 커튼을 달고, 러그도 여러 장 주문해서 곳곳마다 깔았다. 소파에서 자게 될 경우를 대비에 두툼한 담요도 한 장 구비했다. 방한 대비를 얼추 끝내고 나서는 주방 쪽을 정리했는데 설명절과 시할머니 제사를 함께 준비해야 해서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녹이 슬어버린 식기 건조대를 버리고 깨끗한 흰색 건조대를 새로 샀다. 이제껏 사본 적 없는 주방조리도구 세트도 구입하고 액체 양념류를 담을 양념병도 구매했다. 짝이 안 맞거나 얻어다 쓴 각양각색의 반찬용기는 한 곳으로 집어넣고 깔끔한 유리 반찬용기도 한 세트 사들였다. 요리를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에어프라이어도 사고 대학교 2학년이 된 큰 아이에게 늦었지만 대학 입학 선물로 원목 책상도 하나 마련해 주었다. 20년 전 결혼할 때 산 덜덜거리는 통돌이 세탁기를 처분하고 용량이 큰 드럼 세탁기와 바닥 청소를 도맡을 로봇 청소기도 장만했다.


전셋집의 월넛 몰딩에 맞추어 수납장도 진한 색깔의 원목으로 맞추었다.   


덕분에 언니가 대학원 합격을 축하하며 보내 준 한 학기 등록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프리랜서 업무로 한 번에 받은 석 달 치 인건비와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며 받은 생활비 대출도 새로운 살림을 사는 데 탈탈 털어 썼다. 모두 더하면 작업실 2년 치 월세나 다름없는 거금이었다.


결혼 후 일곱 번째 이사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살림 장만에 공을 들였다. 작업실을 만들 때 취향을 고려해 가며 공간을 꾸민 것처럼 집에도 쏟을 수 있는 정성(과 돈)은 모조리 쏟아부었다. 내가 독립적인 공간을 꾸렸다고 해서 마음까지 가족을 떠난 것은 아니라는 걸 그렇게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와 아내가 함께 머무르고 있지 않아도(이게 중요!) 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음을 느끼길 바랐다. 그리고 작고 비좁은 작업실과 달리 너른 공간과 탁 트인 전망을 가진 집만의  편안함과 매력이 있어야 나도 집을 올 때마다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한 겨울에도 볕이 잘 드는 거실. 소파는 겨우내 식구들이 번갈아가며 자는 통에 벌써부터 가운데가 움푹 파였다.
베란다는 원래 이전 집 거실에 있던 소파베드를 두고 러그만 새로 깔았다.


집 정리를 어느 정도 끝내고 나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특히 고심 끝에 고른 침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툭하면 "이 침대가 얼마짜리라고 했지?"라고 질문하거나 "여보, 침대가 너무 좋아"라는 고백을 내뱉곤 했다. 그 침대를 사준 내가 좋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훨씬 고가의 제품들도 많았지만 침대도 없이 생활하던 우리 입장에서는 매우 큰 마음먹고 산 제품이라 나는 그때마다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이 매트리스가 말이야, 차범근 선수가 독일에서 축구할 때 허리를 다쳤는데, 그때 사용하던 매트리스래. 당신도 허리 디스크가 있잖아. 그래서 내가 허리 아픈 사람한테 좋은 매트리스를 찾아서 비교해 보고 골랐지. 어때? 진짜 편하지?"


아내의 부재를 상쇄시켜 주는 남편의 킹 사이즈 침대.  


두세 번 이런 대화가 오고 가자 남편은 언젠가부터 작업실에 놓인 내 싱글 침대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자면 몸이 상하지 않느냐며 은근히 무시하거나 작업실은 오래된 집 냄새가 나고 몇 시간 있으면 머리도 아픈 것 같다며 공간 자체를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다분히 남편의 심리가 반영된 반응 같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아파트 하고 다세대주택하고는 다르니까."


그리곤 속으로 웃었다. 바라던 바였기 때문이다. 잘 꾸며진 공간에서 혼자 자유를 누리는 아내보다 좋은 집 놔두고 낡고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는 아내인 편이 차라리 나으니까. 남편이 집에서 편안하게 머무를수록 내 생각이 덜 날 것이고, 나는 그만큼 자유를 누릴 수 있을 테니. 가진 현금과 두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가족의 신뢰와 자유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제 남편은 작업실 때문에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남편의 생일 파티를 하고 난 후부터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일에 특별히 토를 달지도 않는다. 작업실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한 번 하더니 가끔 사람들과 조용히 만나서 미팅할 장소가 필요하면 써도 되는지 물어보고 이용하기도 한다. 별거한다고 소문날까 봐 나를 몰아세우더니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결혼 21년 차에 한 동네 두 집 살림을 시작하게 된 나. 걸어가면 5분 거리인 48평 본가와 14평 자취방(작업실에서 어느새 자취방으로)을 동시에 잘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내어준 시어머니처럼 살림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가족 중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을 게 뻔한 그 열쇠를 아직은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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