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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19. 2021

아무도 줄 수 없는 퇴직금

하지만 계산해보았습니다.

마을카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가장 안쓰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직장인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하고 싶은 일보다 주어지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반복적인 업무,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스트레스, 업무과중과 성과에 대한 피로감. 자유로운 개인의 창조성을 사랑하는 나에게 직장인은 회사라는 커다란 족쇄에 갇힌 가여운 사람들이었다.


몇 개월 짜리 알바에도 영혼이 피폐해지던 나는 단기 알바와 프리랜서 일을 오가며 직장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대신 마을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주민들과 소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고 악기를 연주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진정한 삶의 행복과 가치는 관계에 있음을 배웠다. 물론 직장에 대한 동경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4대 보험, 업무 외 수당, 명절 상여금, 보너스, 연금. 이런 단어들을 들을 때면 주는 만큼 다 노동으로 쥐어짜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지만 교통비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내 처지와 비교해보며 부러워한 적도 많았다.


가뭄에 콩 나듯 부럽던 마음이 홍수처럼 범람한 건 마을카페가 문을 닫기로 결정한 다음부터였다.


4대 보험만 들었어도 경력 9년 차인데, 남들처럼 실업급여 신청도 못 해보고.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지금껏 인건비 없이 해오던 일인데. 이제 와 이런 세속적인 계산에 마음이 어지러운 건 생계와 노후준비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재난지원금이 언제 들어오나 손꼽아 기다리며 돈 문제로 남편에게 서운한 말을 건네기도 했다. 마음의 여유가 쪼그라들고, 받기로 한 회의비 8만 원도 빨리 안 들어와 조바심이 났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엥겔 지수는 폭발 지경이고, 카드 할부가 자꾸만 늘어간다. 나와 가족이 처한 경제적 현실을 곱씹을수록 이 공간에서 꾸려온 경험과 관계망의 가치는 희미해지고 지난 시간에 대한 노력을 어떤 물질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런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내가 월급을 받았다면 금액이 얼마나 될까? 퇴직금은?


쓸데없는 망상이었다. 적자 운영의 위기를 넘겨가며 가까스로 8년이 넘는 시간을 버텨 온 마을카페에게 월급이며 퇴직금을 바라다니.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나였다. 아무도 챙겨줄 수 없는 월급과 퇴직금에 대한 갈망은 어차피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라는 걸.


그렇지만 자꾸만 궁금해졌다. 지난 시간 동안 이 공간에서 펼쳐 온 내 활동과 노동의 가치가 얼마인지. 어차피 진짜 달라는 것도 아닌데. 계산은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인터넷 검색창에 난생처음 '퇴직금'이라는 단어를 입력해보았다. 화면에 나타난 퇴직금 계산기는 퇴사 전 3개월 평균 급여를 입력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마을카페를 설립한 2013년부터 올해까지의 전체 급여를 우선 계산해보았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공간 기획자이자 매니저로써 최소한의 보수를 지급했다면 8년 6개월간의 총액이 얼마나 될지 알아보고 싶었다.


늘 적자에 허덕이던 마을카페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여 보수는 매해 책정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삼았다. 근무시간을 월 80시간(주말 제외 평일 근무 일일 4시간)으로 최소화하여 계산해보니 총급여액은 5천만 원이 넘었다. 받지도 못했고, 받을 수도 없는 돈이지만 어쩐지 뿌듯했다. 내가 무임금으로 일한 덕분에 마을카페는 그만큼의 적자를 덜었고, 인건비를 아낀 셈이니까.


그리고 퇴직금!

마을카페가 문을 닫게 될 11월 말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최근 3개월의 급여 평균액은 697,000원. 이 금액을 기준으로 계산기에 입력해보니 퇴직금은 2백만 원에 조금 못 미쳤다.


내친김에 실업급여도 계산해보았다. 5년 이상 10년 미만에 체크하고 계산하기를 눌렀다. 최하 1일 실업급여액이 60,120원이고, 소정 급여일수가 210일(7개월)로 계산되었다. 총 예상수급액은 12,625,200원!! 생각보다 큰 금액이었다. 우리나라 복지 제도가 이렇게 훌륭하다니. 실제로 받지는 못하지만 가상으로 계산해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급여와 퇴직금은 마을카페가,  실업급여는 고용노동부겠지만 어쨌거나 한 사람의 인건비와 그가 누릴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모두 더하면 7천만 원이나 된다(70,811,822원). 마을카페가 막연히 돈 대신 관계를 버는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정확히 금액을 알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공동체 공간을 운영해 온 활동의 의미가 단순히 돈으로 설명될 수는 없지만, 우리 마을과 지역사회를 살기 좋게 만드는 데 내가 얼마 큼의 기여를 했는지가 명확하게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경력 대신 경험을, 돈 대신 사람을 얻는 일.


무임금 카페지기였던 나의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 숫자가 아닌 한 줄의 문장으로 설명하라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이력서에 이렇게 한 줄로 쓰긴 어렵겠지만). 지난 9년은 큰 성장통과 변화 속에서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시간이자 인생에 가장 큰 의미와 가치를 불어넣어 준 시간이었노라고.


설립 당시 돈이 없어서 직접 톱으로 자르고, 색칠하고, 못을 박아 만든 간판을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못 버리고 입구에 세워두고 있다.


안타까운 건, 인건비를 받지 못하더라도 이런 공간을 만들고 운영해보라고 사람들에게 쉽게 권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즐거움과 기쁨이 함께 하지만, 운영의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명감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신뢰의  관계망을 만들며 지역공동체를 회복시키고 삶의 질을 높여간다는 사회적 가치 뒤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의 노력(=노동&돈)과 실천이 필요하니까.




이제 재개발로 사라지는 마을카페를 정리하고 공간에 대한 책임을 내려놓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던 출퇴근의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노라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아쉬움과 후련함, 설렘과 두려움이 날마다 교차한다. 다음 달에 공간을 떠나보내는 3일간의 장례까지 치르고 나면 마을카페와는 영영 작별이다.


공간을 채웠던 수많은 책, 직접 만들었던 테이블과 하나씩 사모은 중고 의자, 사람들과 밥을 나누어먹던 그릇과 수저, 사람들의 추억과 온기까지 모두 비워지고 나면 이곳에는 35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동네가 철거되고 아파트가 올라갈수록 마을카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질 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빠르게 소멸되기 마련이니. 사람들은 또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아 그곳에서 새롭게 관계망을 만들고 삶을 나눌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과연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나조차 이 공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1차 영업보상 평가가 이루어진 2년 전부터 시작된 걱정은 재개발 이주를 앞둔 올 해부터 부쩍 잦아졌다. 브런치에 글을 자주 쓰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 몇 달간 나는 마을카페의 활동을 최대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올여름 내내 나무 카페에서 모임을 했던 주민들을 초대하여 인터뷰했다. 구술기록집은 연말에 나올 예정인데 이런 아카이브가 가능했던 것은 지역문화재단의 공간 지원사업 덕분이다.


마을카페를 이용해오던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기록집으로 남기고, 사연이 담긴 마을카페의 집기와 비품들을 일일이 촬영하여 사전으로 만드는 중이다. 가장 많은 시간이 드는 건 아무래도 논문이다. 마을카페 설립 때부터 최근까지의 모든 자료들을 정리하여 '도시 커뮤니티 공간에서 소규모 공동체 활동에 관한 사례 연구'라는 주제로 쓰고 있다. 어쩌면 카페지기로서의 마지막 활동은 우리 공간의 역사를 기록으로 잘 남기는 것 까지가 아닐까싶다.


논문과 공간 아카이브를 위해 자료를 찾다가 자주 밴드와 카페를 들락거린다. 그곳에 올려 둔 사진들을 보며 괜스레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읽으며 울컥해한다.  많이 썼다며 혼자 자신을 토닥이다가 그동안 낸 월세와 공과금을 계산해보며 우리가 해낸 일들을 대견해하기도 한다.



마을카페 기록을 위해 물건들을 하나씩 촬영하여 작은 사전 형태의 책자로 만드는 중이다.
사람들의 후원을 기록해놓은 메모들/ 손으로 직접 쓰고 그려서 만든 메뉴판. 모두 공간의 역사 중 일부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이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주었으면 했다. 숨은 나의 수고와 노동을 인정해주지 않아 서운하기도 했다. 곳곳에 흩어진 기록의 파편들을 짜 맞추어가며 써나가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그건 사람들이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라 공간을 꾸려온 우리가 알아야 하고, 내가 알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당당히 말해도 된다는 걸. 우리 마을이, 이 도시가 조금이나마 풍요로워졌다면 그건 마을카페 덕분이기도 하다고!


"우리가 4년이나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이 공간이 없었으면 할 수 없던 거죠. 왜냐하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공간이 있으니까. 여기가 저한테는 조금 자랑스러운 공간이에요. 낙후된 동네라는 이미지가 심했고, 되게 죽은 동네였는데."   

"처음에 지역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이렇게 활발하게 모임을 하고 계시다는 것도 몰랐어요. 다른 카페들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잖아요. 예전에는 이 지역을 그냥 잠깐 스쳐가는 도시라고 생각했다면. 여기에서 모임을 하고 또 마을 분들을 만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온라인으로도 그냥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그렇게 할 수 있잖아요. 근데 공간이 있다는 건. 일단은 숨을 쉬고 눈을 마주치면서 한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공간을 사용하면서 신뢰를 더 쌓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언택트 시대에도 당연히 이런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무 카페는 마을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게 어떤 규격에 메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사람들과 도모해 볼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공간이에요. 여기에서 사람들과 연을 맺고, 그 사람들에게서 좋은 자극을 서로 주고받고. 이거는 경제의 논리로 환산할 수 있으면 정말 수억수십억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인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어서. 이 지역의 사람들한테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들을 고려해 보면 굉장히 큰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무 카페만큼 이상적인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계속해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예술적인 부분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해 주고요. 적절한 거리에서 새로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지켜봐 주면서 조언이 필요할 때 조언해 주고. 이런 것들이 저한테는 너무 편안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안심할 수 있었고 의지해도 되는구나 싶었어요."      

"공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그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예요. 나무 카페처럼 지역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지역의 자산으로 봐야 해요. 그 공간에서 참여하는 사람도 당연하게 얻어가는 것들이 있지만,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공간의 존재 자체만으로 기대를 준다는 면에서도 그렇고요."

[마을북카페 나무] 주민 인터뷰 기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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