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생산직 노동자로 살기로 결심하다.
2018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오전, 나는 소리 없이 문밖으로 나섰다.
이미 몇 달 전부터 홀로 생각하고 머리 굴리고 수없이 구인구직사이트를 뒤지고 몇 번의 이력서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시도한 끝에.
그날은 아마도 금요일이나 목요일쯤이었을 것이다.
이미 여러 날 전부터 이어진 탐색과정 끝에 바로 그날 이른 아침도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뒤지다가 마침내, 아마도 ‘벼룩시장’ 사이트에서 OO식품회사 구인광고를 발견한 순간, 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음 순간, 나는 집에서부터의 거리를 확인하고도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생산직 모집 공고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직... 뽑으시나요? 지금 가보면 안 될까요?
-네, 그러세요. 자차로 오시나요?
집에서의 거리는 자동차로 20여분 남짓,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깝다.
나는 일단 총알같이 달려갔다.
처음 가보는 거리와 산을 깎아 만든 꼬불꼬불한 고갯길과 좁은 시골길을 돌아 도착한 곳은 감자탕이나 갈비탕, 우거지탕, 순대국 등등의 가정식 대체식품을 제조하는 공장이었다. 커다란 컨테이너 공장과 사무동이 있는 울타리 안에 주차하고 담당자를 만났다. 사장도 임원도 아니고 그냥 총무직원인 듯한 그녀는 사무적인 미소를 띠며 내게서 받아 든 이력서를 훑으며 입을 열었다.
-생산직 경력이 없으시네요? 힘드실 텐데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나는 이력서를 쓸 때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생산직에 지원하는데 아무래도 최종학력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학력은 솔직하게 쓰지 않기로 했으며, 이전의 어떤 경력도 쓰지 않았다.
나의 이력 또한 생산직을 수행하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용자 입장에서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요! 할 수 있어요!
나이가 이만큼이나 되었음에도 나로서는 처음 해보게 되는 일이라 사용자 입장에서는 우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무 경력도 안쓰셨네요...그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나는 그저 결혼 전에 사무직에서 일했었고 결혼과 함께 그만두었으며, 나이가 이만큼 되고 보니 일을 하고 싶어서 나오게 됐다고 간단히 거짓말을 섞어서 설명했다.
-사실은 경력직을 뽑아야 되는데요...., 그럼 일단 한번 해보시겠어요? 시급 7530원이고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9시간 중에서 점심시간 1시간 빼면 근로시간은 8시간이에요. 급여는 월급제입니다. 내일부터 아침 8시 10분까지 출근하시면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세상에! 취업 성공이다!
그 순간, 매우 간절하고 열렬하게 바랐으니 다행스러웠고 기뻤다.
30여 분전, 그곳을 향해 달려갈 때는 과연 내게도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다. 오십 세가 넘어 다시 취업을 해보겠다는 도전이, 그것도 생전 처음 생산직 노동자가 되겠다는 결심이 무모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고 두렵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걱정만큼 큰 난관 없이, 혹은 뜻밖에도 좀 너무 쉬운 듯 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돈은 일한 만큼 주겠지, 하는 생각에 우선 일을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한 번의 시도로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후 해야 할 일은, 그녀가 알려준 대로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보통 ‘보건증’이라고 하는 <건강진단결과서>를 만들고 급여이체를 위한 통장사본과 몇 가지 서류를 다음날 출근 시 제출하는 것이었다.
‘보건증’이란, 식품회사, 식품위생 관련 업종 종사자(생산직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에게 필수적인 서류이다.
이에 관해, 식품위생법 제40조(건강진단) 제1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영업자 및 종업원은 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며, 동법 시행규칙 제49조(건강진단 대상자) 제1항에 따르면 식품 등의 채취, 제조, 가공 조리, 저장, 운반 또는 판매하는 일에 직접 종사하는 영업자 및 종업원은 영업에 종사하기 전 건강진단(보건증)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건강진단 항목에 따라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하며, 검사 결과 이상이 없어야 종사자격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완전 포장된 식품이나 식품첨가물을 운반하거나 판매하는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식품 관련 업종 종사자에게 이처럼 중요한 보건증을 발급받지 않았을 때는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는데, 감독부서인 관할 구청 위생과에서 단속을 나와 보건증 제시를 요구할 경우,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보건증 없이 영업을 하다가 관계기관에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즉, 종사자 5인 이상(50% 이상 미검사시) 업체의 경우, 종사자는 10만 원, 업주는 5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고, 종사자 5인 미만(50% 이상 미검사시) 업체의 경우에는 종사자 10만 원, 업주 30만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보건증 관련 법규는 감염병 예방법 제8조 제2항, 식품위생법 제26조 제1항, 공중위생법 제13조 제4항 등이다.
면접을 끝내고 나는 곧바로 동네 보건소를 찾았다. 접수계 직원의 안내에 따라 하는, 5~15분 정도가 소요되는 몇 가지 간단한 검사였으나 ‘변 검사’는 스스로 하는 것임에도 어쩐지 겸연쩍었다.
<보건증 발급 검사와 절차>
▶검사 종류 : 변 검사(항문 면봉 검사), 흉부 x-ray
▶진단항목 -요식업 : 장티푸스, 결핵, 전염성 피부질환
-유흥업소 : 결핵, 전염성 피부질환, 장티푸스 검사, 성병(3개월에 1번씩), 에이즈
▶결과서 발급 : 검사일 포함 평일 기준 5일째 교부(단, 보건소마다 조금 상이할 수 있음)
▶주소지와 상관없이 전국 가까운 보건소에서 가능
▶구비서류 :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학생증, 청소년증 등 중 하나)
▶발급비용 : 3,000원
▶보건증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단, 학교급식 종사자는 6개월) 기한이 만료되기 전에 다시 건강진단을 받고 새로 발급을 받아야 한다.
결과지는 검사일로부터 5-7일 이후에 나오니, 그때 인터넷 공공보건 포털 사이트에서 출력하거나 보건소에 직접 찾으러 가도 된다.
보건소에서 생전 처음
보건증 발급을 위한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나의 가슴은 새로운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드디어, 내가 다시 월급 받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2018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이었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에 토요일 주휴수당을 계산하면 한 달 월급을 짐작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도'란, 국가가 노사 간의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함으로써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말한다.
최저임금은 매년 3월 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 측 9명, 사용자 측 9명,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한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구성돼 있다.
매년 5~6월부터 열리는 전원회의에서 노사위원들은 다음 연도 최저임금안을 제시하고 협상을 진행한다.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 참석에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되며, 매년 6월 29일까지 다음해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면, 노사의 이의신청을 받은 뒤 고용노동부 장관이 8월에 이를 고시한다.
'주휴수당'이란, 근로기준법상 1주일 동안 소정의 근로일수를 개근하면 지급되는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을 말한다.
하루 3시간, 1주일에 15시간 이상을 일하면 주·휴일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1일분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 주 5일 근무제의 경우는 일주일 중 1일은 무급휴일, 다른 1일은 주휴일이 된다.
주휴수당은 일당으로 계산하는데, 보통 1일 '소정근로시간×시간급' 으로 계산한다.
주5일 근무제에서 하루 8시간씩 주40시간을 근무하면 8시간×시급의 주휴수당을 받게 된다.
그러나 퇴직할 때 마지막 주는 만근과 상관없이 주휴수당은 인정되지 않는다. _출처:한국경제용어사전
면접을 본 당시가 2018년 12월 말이었으니, 곧 2019년이 되고 최저시급도 8,350원으로 오르게 될 것이었다.
벌써부터 나는 한 달 월급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의욕에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