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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고解雇의 기쁨

_식품공장 이틀째

by somehow Apr 24. 2020

남편과의 대화에서 열렬한 동의는 아닐지언정 결사적인 반대 같은 심각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모든 것이 이렇게 조금씩 한 걸음씩 나 아가다 보면 마침내 한 달 월급을 받아보는 일도 현실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더욱 차올랐다.

이틀째도 아침 일찍 출근, 구정물 흐르는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어제와 같은 일이 기다리는 공장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그 공장은 며느리와 딸들이 사무실 직원의 대부분이었고 사장의 아내 되는 여인은 아예 공장 내에서 우리 생산직을 관리 감독하고 있었다.

출근 첫날에도 사장의 아내는 내 옆에 붙어 서서 작업요령을 알려주곤 했다. 가끔은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초보자로서는 전전긍긍하며 열심히 배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식품공장에서의 첫 경험은 놀라움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먹어도 될까 싶은 정체불명의 고깃덩어리가 산처럼 쌓인 곳에서 천근만근이나 되는 칼로 기름을 제거하는 일은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감독자의 지시에 따라 모든 여자 생산직이 우거지탕 가정식 포장 작업대로 이동했다.

일이 많은 탓에 기름제거 작업대로 향하던 나도 포함되었다. 포장 구역의 널따란 스테인리스 작업대 위에는 삶은 배추 시래기처럼 보이는 우거지들이 불그레한 정체불명의 양념에 비벼진 채 산처럼 쌓여있었다. 그 앞쪽으로는 내가 끝없이 기름 조각을 제거해내었던 류의 고깃덩어리와 육수가 담긴 솥도 있었다. 갖추어진 식재료들 옆에는 업체의 상호가 인쇄된 포장용 비닐봉지와 저울 등이 놓였다.


작업 시작. 기다란 작업대를 마주하고 작업자들이 마주 선다. 작업 순서대로, 한 사람이 포장용 비닐봉지를 열어서 대기하면 한 사람은 정체불명의 양념에 버무려진 우거지 한두 줌을 넣고 적당량의 고깃덩어리와 국물도 채운다. 묵직해진 포장용기를 다음 사람이 건네받으면 저울에 올려 무게를 확인한다. 그리고 정해진 용량에 비추어 내용물을 조절한다. 적당한 무게가 맞춰지면 바로 옆 실링 기계로 옮겨지고 진지하게 대기하던 작업자가 포장 팩의 입구를 막아 완성한다. 완성된 식품포장은 일정 수량씩 모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이들 바로 옆에서 이것저것 시키는 일을 보조하면서, 나는 바로 엊그제도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었던 그와 같은 포장식품이 완성되는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은 나의 마음속으로부터 당혹스러움과 경악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나아가 왠지 모를 우울감으로 다가왔다.


식품을 다루는 모든 과정에서는 니트릴 장갑이라고 하는 위생장갑을 항시 착용하고 마스크도 반드시 착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곧 소비자에게 나갈 음식물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위생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우거지 탕’이라는 음식의 특성상 작업자들의 손과 앞치마 등에 기름기 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장갑을 낀 상태로 포장용 비닐봉지의 입구를 벌려주는 작업자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입 벌린 비닐용기에 우거지와 고깃덩어리를 넣을 때 기름진 국물이 흐르거나 넘치기도 하고 혹은 무게를 달아보고 맞지 않으면 내용물을 추가하거나 덜어내는 과정에서 니트릴 장갑에 기름기가 묻으며 일정한 속도가 나지 않게 되었다.


_빨리빨리 열어줘야 담을 거 아니야?


보다 못한 감독자(사장의 아내)가 포장 비닐봉지 개봉 담당을 다그쳤다.


_이게.... 기름기 때문에 잘 안됩니다.


작업자가 쩔쩔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그녀가 이렇게 알려준다.


_그럼 장갑을 벗어. 차라리 맨손으로 하면 봉지가 잘 열리지!


그때부터 후다닥 니트릴 장갑을 벗어던진 작업자는 포장용 봉지의 입구를 재빠르게 열고 대기하기 시작했다.

열린 봉지가 미리미리 준비되자, 내용물을 퍼 담는 작업자들의 손길도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정체불명의 붉은 기름 양념에 버무려진 불그죽죽한 우거지 건더기 한 움큼과 국물이 담긴 봉지에  고깃덩어리 두어 개를 넣는 순간, 뜨겁고 미끄러운 고깃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뿔싸!

그러나 전혀 문제없다. 지저분하고 구정물 질척이며 더러워 보이는 바닥에 떨어진 고깃덩이를 즉시 집어 올려 옆에 있던 정체불명의 물그릇에 (헹구는 심정으로)한번 담갔다가 그대로 봉지 안으로 넣는 것이다.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포장 과정을 감독하는 사장의 아내는 물론 작업에 동원된 모든 작업자들에게 그런 상황은 익숙하고 당연한 듯했다. 다만, 나 혼자, 생전 처음 식품포장 현장을 목격하게 된 나만 혼자 적잖은 당혹감에 휩싸여 눈이 동그랗게 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마음속으로부터 죄책감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뿐이다.


생전 처음 목도한, 사람이 먹는 음식물을 다루는 이들의 자세가 몹시 황당했다. 아무리 아까워도 작업자들이 장화 신고 돌아다니는, 질척거리는, 어떤 이물질과 오염이 있을지 모르는 시커먼 바닥에 떨어뜨렸던 고깃덩이를 아무렇지 않게 주워 다시 포장용기에 넣다니! 지켜보는 내내 내용물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 물에 담가 헹구는 시늉을 하기는 했지만....


아, 이런 걸, 이렇게 만들어지는 걸 그동안 좋다고 사다 먹었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고 배신감이 차올랐다.

과연, 이곳에서 계속 일하는 게 맞을까? 이건 아니지 않나?


혼란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오전 휴식시간이 되었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된 작업은 두 시간 정도 이어지다가 10분 정도의 휴식이 주어진다. 그 짬에 나는 동료들에게 나의 충격적인 심경을 토로했다. 그들은 나의 느낌에 공감하며 이렇게 말했다.


_맞아요, 처음엔 저도 너무 놀랐는데요, 이젠 그러려니 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거 안 사 먹어요. 어떻게 만드는지 다 아니까...


_그런데 여기는 약과야... 더 심한 곳도 많아요. ㅁㄷ같은 건 진짜 못 먹어요. 전에 그거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어휴, 그런 거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사 먹어요.


그런 건가? 안 보는 데서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건가? HACCP 인증도 받았다는 식품업체가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그리고 나는 계속 여기서 일해도 되는 건가.


물론 모든 식품공장이 이렇게 운영되지는 않을 것이다. 엄격한 위생규칙을 지켜가며 철저하게 식품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히 이처럼 어디선가는 조금씩 얼렁뚱땅, 슬그머니 대충 눈감고 넘어가는 일도 일어나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충격과 혼란에 휩싸인 채 짧은 휴식이 끝나고 다시 작업이 시작되었다.

초보자인 나는 첫날처럼 삶아진 고깃덩이의 기름제거 작업대로 다시 불려 가 같은 작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포장 작업대 곁에서 이것저것 보조를 할 때는 무거운 칼질을 하지 않아서 몸은 그나마 덜 힘들었는데, 다시 묵직한 칼질을 하려니 열 손가락도 손목도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기름제거 또한 원칙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역겹고 불결해 보이는 누런 기름 조각을 깔끔하게 싹싹 제거하느라 애를 쓰곤 했는데 뜻밖에 오히려 잔소리를 듣곤 했다. 기름기가 적당히 있어야 맛이 좋은 법이라며, 웬만하면 다 떼지 말고 그냥 두라는 것이었다. 보이는 대로 깔끔하게 떼어냈다고 핀잔을 듣고 보니 그것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당히 기름기가 남도록, 감독자의 마음에 들도록, 요령껏 기름제거를 해야 한다.

그토록 간단해 보이던 일이라도 결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진리를 처음 깨달은 듯했다.


기름제거 작업이 몸은 힘들었으나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바닥에 떨어진 식재료를 주워 담는 그런 광경은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한동안 묵묵히 기름을 떼어냈다. 어쩔 수없이 조금 천천히...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사장의 아내가 잠시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슬그머니 잔꾀를 부렸다. 바로 옆 다른 작업대에는 고기산적처럼 넓게 포 뜬 형태의 고깃 조각들이 찜통에서 나와 널브러져 있었는데, 전날에도 누군가 그것을 한쪽으로 차곡차곡 정리해 쌓아 올리는 것을 보았었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인 나는 슬그머니 비어있는 그쪽 작업대로 옮아갔다. 무거운 칼질을 하지 않고 두 손으로 고깃 조각 들을 정리하는 동작은 너무 쉬웠다. 모두들 포장작업에 매달려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때, 문득 감독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잠깐 동안, 나와 원래 내게 지시했던 작업대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렇게 따져 물었다.


_누가 이거 하라고 했어요?


나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꾸했다.


_아.... 손이 좀 아파서요... 이것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어차피 누가 하든 해야 할 일이니 어떤 일을 먼저 하든 뭐가 문제겠냐는 식으로  태연하게 내가 되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심기 불편한 표정을 미간에 새기며 노골적으로  퉁명스레 내뱉었다.


_시키는 일이나 하세요. 고기에 붙은 기름도 너무 많이 떼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많이 떼냐고! 다 먹을 수 있는 거라니까. 그리고 빨리빨리 해야지. 바빠 죽겠구만 어디서 초보를 데려 와 가지고....


그녀는 이내 초보가 어쩌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나가버렸다.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저따위로 다루면서, 냄새도 역겨운 쓰레기 같은 고깃덩이에 붙은 누런 기름 조각을 꼼꼼하게 떼는 것도 잘못이라니... 아무리 잘 떼어내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입장에서, 고기에 붙은 기름 조각도 많이 떼어낼수록 원가를 손해 보는 것 아닌가. 그러니 가능하면, 어지간하면, 그냥 기름도 넉넉히 붙은 채로 두고 싶겠지.  


구시렁거리며 사라지는 감독자의 뒷모습을 흘깃거리며,
우거지 탕 포장을 열심히 해대는 능숙한 작업자들을 멀찍이 바라보며,
두 손으로 뒤척이고 있는 국적불명의 냄새도 고약한 고깃덩이들을 수상쩍게 쳐다보는 나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념들이 휘몰아쳤다.


그저 칼로 기름 조각이나 떼어내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혹은 간편 포장식이 저렇게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질 줄이야 하는 혼란 속에서,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계속 일하는 게 맞는가 하는 갈등과 죄책감이 출렁거렸다.

그만두겠다고 말할까.... 일 시켜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어떻게 이틀 만에 그런 소릴 하나...


아, 호기 있게 떨치고 나선
나의 취업 성공기는 여기서 끝내야 하는 게 맞을까.


머릿속이 뒤숭숭한 가운데 기계적으로 나머지 시간을 때우고 오전 작업이 종료되었다.

12시 30분 무렵, 점심시간이라며 다 함께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원래부터 식당은 아니었던 듯 마치 창고 같기도 하고 안 쓰는 빈 사무실에 다 낡고 빛바랜 테이블 여러 개를 대충 붙여놓고, 어디선가 배달되어온 몇 가지 반찬과 밥을 뷔페식으로 커다랗고 허연 쟁반 같은 접시에 개인적으로 덜어다 먹는 식이다. 공장동의 모든 직원들과 사무식 직원들도 함께였다.


첫날은 맛도 모른 채 공짜로 점심도 제공받는데 대해 그저 나쁘지 않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것도 이틀째라고 익숙해졌는지 음식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참, 거지 같이도 만들었다 싶을 정도라고나 할까.

일인당 점심값으로 책정된 금액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허접해졌으리라 싶었다.

그러나 그냥, 오후 작업도 해야 하니 대충 집어삼켜두고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맨 처음 나를 면접하고 채용해주었던 여직원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음성으로 물었다.


_식사 잘하셨어요? 일이 많이 힘드시죠? 계속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첫째 날에도 그렇게 묻더니, 여자는 내가 그렇게도 못 미더운가 보다.


_그럼요! 할 만해요! 이 정도는 문제없어요!


나는 여자의 불안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뒤숭숭한 머릿속을 지우려는 듯 더욱 또렷한 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여자는 나의 대답과 상관없이 이미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말을 이었다.


_많이 힘드실 거예요. 한번 해보시겠다고 해서 해보시라고는 했는데.... 처음이라 쉽지 않으시죠?


나 참, 할 수 있다는데도 자꾸만 나를 생각하는 체한다. 왜 그러지 싶을 때, 결심한 듯 여자가 내뱉는다.


_실은.... 오늘까지만 하셔야 될 것 같아요... 많이 힘드셨죠? 요즘 바쁠 때라 경력자가 필요한데 초보자 뽑았다고 뭐라고 하시네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아, 오케이!

툴툴거리며 나가던 사장의 아내, 그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진심으로, 짧은 아쉬움 끝에 나는 길게 안도했다.


_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 작업까지는 해야죠?


그야말로 세상 물정 너무나 몰랐던 왕초보였기 때문일까, 작업하는 내내 죄책감으로 괴로웠던 상황들이 눈앞에 새삼 떠오르며 정말로 고맙고 다행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겨우 이틀 만에 내가 먼저 못하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어서,
이렇게 일 못한다며 잘라 내주어서
정말, 땡큐였다.

그래도 하루는 끝까지 마무리해야 하나 싶어 그렇게 되묻는 내게 여자는 칼같이 정리해준다.


_아니요, 그냥, 지금, 그만두고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일당은 어제, 오늘 것 계산해서 보내드릴게요.


하루 반나절 동안 함께 했던 동료는 나의 빠른 해고 소식에 깜짝 놀라며 아쉬워해주었다.


_처음부터 경력자가 어딨다고? 너무했다... 하다 보면 다 늘게 돼 있는데...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생산직 도전은 이틀 만에 끝이 났다.

동료들이 오후 작업을 위해 작업장으로 돌아갈 때 나는 다시 그 낯선 길을 기쁘게 되짚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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