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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n 12. 2024

5.가름하다/갈음하다

-명함 한 장으로 당신을 온전히 갈음할 수 있을까요?

다섯번째는

'가름하다/갈음하다' 입니다.



'가름하다'와 '갈음하다' 또한, 형태는 비슷하나 전혀 다른 의미의 우리말 어휘입니다. 

'갈음하겠습니다'를 '가름하겠습니다' 잘못 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모양은 비슷하나 뜻은 전혀 다르므로 분명히 이해하고  구분하여 사용하도록 합시다.


가름하다'쪼갠다,구분짓는다' 등의 의미로 쓰입니다. 

적절한 사용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의 시합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의 승패를 가름하 될테니, 모두들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어느 한 사람 말만 듣고는 잘잘못을 가름할 수 없으니 양쪽 모두 의견을 진술해주세요.'

'예전에는 의복에서도 신분에 따른 가름 있었다.' 


갈음하다 '대신하다, 바꾸다,대체하다'는 의미로, 사용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해외체류중인 회장님의 경축사는 이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간략하게나마 이것으로 제소개를 갈음할까 합니다.' 

'과거에는 소금이나 후추로 화폐를 갈음하여 사용하였.' 


흔한 실수가 갈음하다의 의미로 가름하다로 쓰는 것입니다. 의미를 기억한다면 이제부터는 조심스레 잘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두 단어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바랍니다.



수년 전 어느 날 시작된 COVID-19(코로나) 전염병이 전세계를 휩쓸게 되면서, 사람들의 일상은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접촉으로 빠르게 전염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원래부터 함께 살던 가족(혹은 그와 유사한) 관계 이외는 서로 만나는 것을 꺼리는 것은 물론, 대화를 나누어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대다수가 그러한 변화를 거부하거나 귀찮아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심각해지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람들 사이를 가름하게 되었고, 마스크는 사람들의 표정을 갈음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 때문에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을 이겨내기 위해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며 백신을 맞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사람들에게는 코로나 면역력이 생겨났습니다. 수년 동안의 투병 시기를 거치며 마침내 코로나는 ‘풍토병’이 되었습니다. 

'풍토병'이란, 대부분 한정된 지역에서 주민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전염성 질병을 의미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풍토병이 되면, 겨울 무렵 전염하는 독감처럼 해마다 백신접종을 함으로써 감염을 예방하거나 가볍게 앓고 넘어가는 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침내,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차 해제되고 코로나 전염병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 어느날입니다.

김득수 씨 가족은 무거운 마음으로 [햇빛가득 요양병원]을 찾았습니다. 

김득수 씨의 아버지 김학성 씨는 집에서 돌볼 수 없을 만큼 중증 치매를 앓는 87세 환자입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그곳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확산되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시설에서는 가족들조차 환자를 직접 만나는 일이 철저히 제한되었습니다. 

한때는 김학성 씨가 계시는 요양병원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하여, 해당 요양병원 전체가 외부와 격리되기도 했습니다. 

아들 득수 씨도 2년 만에야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병원 전체를 아예 세상과 가름해 버리니 아버님 생사도 알 수 없어서 그때 정말 걱정스러웠잖아요...”


득수 씨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그때 생각하면, 정말 막막했지. 대면 접촉 면회가 다시 가능해져서 다행이야!”


대기실에서 오랜만의 만남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이 열렸습니다. 

아버지 김학성 씨를 태운 휠체어가 들어왔습니다. 

가족들은 실로 몇 년 만에야 반갑고도 조심스러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 저희들 왔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저, 용식이에요!”

“네, 아버님 용식이 어멈이에요....그동안 많이 야위셨네요... 저희들 알아보시겠어요?”


가족들과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치매가 더욱 진행된 김학성 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멀뚱멀뚱 허공만 바라보며 반사행동인 듯 고개만 연신 끄덕거렸습니다. 곁에 있던 간호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치매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 가족들도 못 알아보실 수 있어요....그래도 한 번씩 기억이 돌아오면 아드님을 찾곤 했어요...오늘도 어쩌면 기억해 내실 수 있으니, 편하게 이야기 나누어 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간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아버지 손을 쓰다듬던 아들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으흑흑....확실히 더 안 좋아지셨네요, 이제는 눈도 맞추지 못 하시니...평생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만 하셨는데, 말년에는 치매까지 걸려서 자식들도 못 알아 보시니....”


곁에서 마찬가지로 눈물을 훔치던 며느리도 속상한 듯 말했습니다.


“그러게요...지난번까지 직접 뵙지 못하고 영상통화로 갈음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할아버지...전 이번에 대학교 들어갔어요! 제일 귀여워하시던 손자 용식이요...알아보시겠어요?”


손자가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무표정하던 할아버지가 시선을 돌리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으응--??!”


뜻밖에도 손자를 바라보는 늙은 아버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본 김득수 씨는 기쁨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하하...그럼 그렇지, 아무리 지독한 전염병일지라도 할아버지와 손주사이 핏줄을 아주 가름하지는 못하지!!”



가름하다 1.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 2.승부나 등수 따위를 정하다.

갈음하다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하다.(=바꾸다대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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