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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n 07. 2024

3.바치다/받치다/받히다/밭치다

-이 글을 당신께 바칩니다.

세번째는

'바치다/받치다/받히다/밭치다'입니다.



형태는 비슷하지만 의미는 서로 다른 우리말 단어로, '바치다/받치다/받히다/밭치다'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조금만 무심해도 잘못 쓰기 쉬운 어휘들입니다.

받침이 있느냐 없느냐, 어떤 받침을 쓰느냐의 차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구별해서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도,

받치다는 '어떤 물건을 밑이나 옆에 갖다 대다', 또는 '조화를 이루도록(색을/사물을) 맞춰보다'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좀 쉬울까요.

'바닥에 엎드려 잠든 아가의 머리에 작은 베개를 받쳐주었다.' '어머니는 쟁반에 찻잔을 받쳐들고 오셨다.' '하얀치마에 핑크색 블라우스를 받쳐입으니 화사하구나!' 처 사용합니다.

받치다와 생김새는 비슷하나 뜻은 아주 다른 받히다는 '받다'피동형입니다.

피동형이란, 어떤 행동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남의 힘에 의하여 움직임을) 당한다는 의미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 가능합니다. '(오빠가) 쇠뿔에 받혔다.' '자동차에 받혀 중상을 입었다.'

받치다와 밭치다는 또 어떤가요. 받침 하나 차이이고,의미도 비슷하지만 쓰이는 경우가 또 다릅니다.

받치다가 물건을 갖다 댄다는 의미라면, 밭치다 '밭다'를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그러자면 밭다의 뜻을 먼저 알아야 순서겠네요.

'밭다'는 '시간이나 공간이 다붙어 몹시 가깝다/길이가 매우 짧다/건더기와 액체가 섞인 것을 체나 거르기 장치에 따라서 액체만을 따로 받아 내다'.등의 의미가 있는 우리말입니다. 밭다라는 단어는 제 기억으로는 어머니나 할머니에게서 들은 것같습니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잊혀져가는 듯하네요.

'약속을 너무 밭게 잡았다'라는 문장에서 밭게(밭다)'기간이 짧다'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밭다의 다른 의미인 '건더기와 액체를 분리해 따로 받아내다'의 뜻으로 쓸 때 '삶은 팥을 체에 밭쳤다'와 같이 씁니다.


다음의 예화를 통하여 이들의 정확한 쓰임을 확인하고 기억하여 제대로 사용하도록 합시다.



어느해 겨울, 동짓날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동지 팥죽’의 유래와 전통에 관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었습니다.

'팥죽은 팥 껍질을 벗기기 위해 채반에 삶은 팥을 넣고 잘 으깬 다음 물을 부어 껍질과 분리된 속이 걸러지도록 잠시 밭쳐 둡니다. 잘 걸러진 팥에 적당량의 물을 붓고 끓이다가 새알을 만들어 넣어 잘 익도록 끓이며 완성입니다.'


김영수 씨의 아내는 임신하여 힘든 몸이지만 남편을 위해 정성껏 팥죽을 만들었습니다.

1년여 전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남편 김영수 씨는 매일 자전거로 집에서부터 왕복 1시간 거리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성실한 젊은이였습니다.


“영수 씨, 자기가 좋아하는 동지 팥죽 만들었으니 얼른 와서 드세요! 야근하느라 많이 피곤하지?”

“오, 팥죽? 벌써 군침 도네, 지금 퇴근이니까 금방 갈게, 아차...아침에 딸기 먹고 싶다고 했었지? 남편 생각해서 팥죽 만드느라 고생한 사모님께 얼른 사다가 바치겠습니다, 예쁜 사모님!”


김영수 씨는 항상 밤 9시까지 야근을 합니다.

그날도 늦게까지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와 통화를 마치고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평소 30분이면 집에 도착하지만, 아내가 먹고 싶다는 딸기를 사러 과일가게 몇 군데를 들르느라 그날은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되었습니다.

지방 소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월세방으로 향하는 길은, 큰길에서 벗어나 가로등도 거의 없는 좁은 뚝방으로 이어집니다. 좁은 길에 들어선 영수 씨는 자전거의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뒤쪽에서 갑작스러운 빛과 함께 난폭하게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깊은 밤, 작은 쿠션에 등을 받치고 앉아 졸고있던 아내는 경찰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까무룩해졌습니다.


얼마 후, 아내는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부부의 가족과 친척들, 남편의 직장동료들은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모두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영수 씨가 항상 걱정스러웠는데....하필, 음주단속 피해 달아나던 차가 그랬다며? 어휴....!”

“그러게요.... 좁은 뚝방 길에서 음주 운전자의 승용차에 받히다니, 교통비 아낀다고 한겨울에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사람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빚 갚느라 매일 야근까지 도맡아 가면서 억척스럽게 사는 젊은이를....어이구...”


직장 선배인 정 씨가 무언가 알고 있는 듯 한탄을 토했습니다.


“영수 씨한테, 빚이 있었어요? 도박 같은 걸 할 리도 없고....무슨 사정이 따로 있었나요?”


동료인 이 씨가 이렇게 반문하자, 정 씨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습니다.


“나도 최근에야 들은 건데, 수년 전 돌아가신 영수 아버지가 사업하다 남긴 빚이 있었대요....그걸 갚느라고...밤낮으로 열심히 벌었어도 수입의 절반은 빚쟁이한테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 있었더라고...”

“허 참, 억지로 물려받은 빚 갚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참 반듯한 청년이었는데...틀림없이 잘 살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음주 운전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용서하면 안 된다고요!”


장례 마지막 날,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고 화장터로 출발하기 위해 김영수 씨의 영정사진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선 조카의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그 모습에 모두들 숨죽여 흐느꼈습니다.


그 후, 김영수 씨의 아내는 홀로 건강한 아기를 낳았습니다.

씩씩한 첫 울음을 터뜨린 아기를 품에 안고 아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을 꼭 닮은 우리 아들이에요! 당신 몫까지 최선을 다해 잘 키울게요...”



바치다 1.신이나 웃어른에게 정중하게 드리다. 2.반드시 내거나 물어야 할 돈을 가져다주다.

받치다 1.물건의 밑이나 옆에 다른 물체를 대다. 2.옷의 색깔이나 모양이 조화를 이루도록 함께 하다.

받히다 머리나 뿔 따위에 세차게 부딪히다.

밭치다 구멍이 뚫린 물건 위에 국수나 야채 따위를 올려 물기를 빼다.


이 단어들은 모양도 의미도 모두 다릅니다. 형태와 의미를 기억하여 적절히 사용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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