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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n 08. 2024

4.안치다/앉히다

-거울 앞에 앉히고 어린 딸의 머리를 빗겨주시던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네번째 우리말 단어는

'안치다/앉히다'입니다.


두 단어의 바탕 의미는 '자리잡게 한다'입니다. 

그러나 사용 환경에 차이가 있습니다. '안치다'는 '식재료를 넣은 식기류를 불에 올린다'는 의미로만 쓰이는 반면, '앉히다'는 식재료 이외 대상 중에서도 주로 '인간 혹은 동물이나 인형 따위....인간을 내외적으로 닮은 대상을 자리잡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 사용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무릎에 어린 딸을 앉혔다.', '은미가 자기 옆자리에 곰인형앉혔다.', ' 할머니는  팽돌이를 일으켜  밥을 먹였습니다.' 처럼 인간 혹은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 사용해도 자연스러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끔, 안치다를 써야 할 때 앉히다를 주저없이 사용하는 경우를 볼 때면 안타깝습니다. 

헛갈려서 그런 것이라면, 그럴 때는 사전을 들추어 보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얼마든지 헛갈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이제부터라도 우리말의 바른 사용에 관심을 더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안치다 앉히다의 의미를 기억하고 바르게 사용하도록 노력합시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연희 씨는 10월 연휴를 맞아 시골집에 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지난 추석 때는 일이 바빠서 찾아뵙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엄마, 귀한 딸 왔어요! 엄마--!”

“오메, 우리 연희 왔냐? 바쁜데 어찌 왔냐? 멀리 오느라 힘들었지, 밥은 먹었냐?”


부엌에서 대충 점심을 때우던 어머니는 딸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 나오며 반가이 맞이합니다. 

현관 옆 베란다에는 갓 수확한 늙은 호박들이 쌓여있습니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호박 농사를 지으십니다.


늙은 호박은 국내에서 전국적으로 생산되지만, 특히 호남지역 생산량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늙은 호박은 북미, 북유럽, 시베리아 고위도 지대와 인도 등에서 생산되는데, 개화 후 35~50일이 지나 황갈색이나 황색이 된 것을 수확합니다. 수확은 보통 10월부터 가능한데, 녹색 껍질이 노랗게 변하고 표면에 하얀 분가루를 바른 듯 흰색이 나면 잘 익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얼룩진 색 없이 진한 황갈색이면서 상처가 없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잘 키워 수확하신, 곱고 뽀얀 자태를 뽐내는 늙은 호박 더미를 발견한 연희가 여쭈었습니다.


“어, 벌써 따셨어요? 호박 수확하는 거 도와드리려고 왔는데, 힘들게 왜 혼자 다해, 엄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네가 무슨 호박을 딴다고 하냐? 네가 늙은 호박 넣은 팥 시루떡 잘 먹잖아, 너 먹고싶어할 때 해주게, 얼른 다듬어서 말려두려고 부지런히 땄다, 호호...”


수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홀로 호박 농사를 이어가는 어머니의 연세는 팔순에 가깝습니다. 깡마른 어머니가 굽은 허리를 펴보이며 딸을 위한 마음을 이야기하시자 연희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휴....엄마...나 올 줄 어떻게 알고 미리 호박을 땄어요.... 이번에 며칠 쉬면서 좀 도와드릴 건데....”

“꼬챙이처럼 마른 계집애가 엄마 생각하는 말이라도 고맙다. 그런 걱정은 말고 떡이나 실컷 먹고 놀다 가거라...! 엊그제 먼저 딴 늙은 호박에 팥 넣고 시루떡 해주마! 떡 안칠 동안 너도 얼른 씻고 쉬어라.”


어머니는 잘 씻어 말려두었던 시루를 꺼내어 물을 넣은 찜통 위에 올렸습니다. 

찜통과 시루 사이는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뜨거운 김이 새지 않도록 빙 둘러 붙여줍니다. 

다음으로 시루 바닥에 얇은 거즈를 깔고, 미리 삶아 살짝 으깬 팥을 바닥에 두툼하게 깔았습니다. 그 위에는 찹쌀가루에 섞은 늙은 호박을 한 켜 올립니다. 손질해 둔 늙은 호박에도 설탕과 소금을 조금 넣어 맛이 배도록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한 팥과 호박을 반복하여 쌓아 올린 뒤, 불 위에 올습니다.


어머니가 시루떡을 정성들여 안치는 사이, 간단히 씻고 나온 딸은 따스한 가을 햇살 가득한 툇마루에 나와 앉았습니다. 곧이어 어머니도 딸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연희는 햇볕을 이불 삼아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우며 여쭈었습니다. 


“아직 햇볕이 따스해서 좋다, 엄마...그동안 잘 지내셨어?”


평생 밭일로 다져진 손은 주름지고 거칠었지만, 더없이 부드럽게 딸의 머릿결을 쓰다듬는 어머니가 고즈넉하게 대답하십니다.


“그럼, 그럼....추석 때는 오빠들이 왔다 갔고 다 잘 지내지...너만 잘 살면 된다...엄마 걱정은 말고...”


고요한 어머니의 손길에서 연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아...졸리다...어릴 때, 엄마가 거울 앞에 앉혀놓고 참나무 빗으로 긴 머리 빗겨줄 때도 그렇게 졸렸었는데...아침부터 졸고 있다고 엄마가 막 혼냈었는데...헤헤...”

“호호...그랬냐? 나도 어린 너 앉혀놓고 머리 빗겨줄 때가 참 행복했구나...지금도 마찬가지고....”


모녀가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느덧 부엌에서는 호박-팥 시루떡 익어가는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안치다 찌개 따위를 만들기 위하여 그 재료를 솥이나 냄비 따위에 넣고 불 위에 올리다.

앉히다 사람이나 동물이 윗몸을 바로 한 상태에서 엉덩이에 몸무게를 실어 다른 물건이나 바닥에 몸을 올려놓게 하다. (=앉게 하다자리 잡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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