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모든 짐승이 30년씩 살도록 명하셨다.
하지만 평생 짐만 나르던 당나귀는 자신은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오래 살 것을 청하였고, 신은 당나귀가 18년을 더 살도록 허락했다. 반면에 개는 늙는 것이 두려워 30년 중에 오히려 몇 년을 감해 줄 것을 청했고, 신은 그것도 들어주었다. 그 옆에서 가만히 눈치만 보고 있던 원숭이도 늙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더 빨리 죽게 해달라고 청했다, 신은 친절하게도 10년을 감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사람은 30년은 너무 짧다고 말했다. 그러자 신은 당나귀에게서 18년을 빼앗아 주었지만, 사람이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자 개와 원숭이의 나이도 빼앗아 줬다.
그렇게 인간은 첫 30년은 본래 자기 인생 기간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하지만 이후에는 당나귀에게서 빼앗은 18년을 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그다음의 12년은 개에게서 받은 인생이기에 불 곁에 앉아 웅얼거리고 으르렁거리는 것이다. 마지막 원숭이로부터 받은 나이가 되었을 때는 자기가 좋은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인생의 시간 동안에(The Duration of Life』중에서 -
그렇게 마흔은 당나귀에서 받은 인생이다. 우리는 가정과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 때론 뒤돌아볼 여유도, 쉴 틈도 없이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마저도 쓰임을 다하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니, 마흔이 느끼는 불안과 압박은 실로 무겁다. 이렇듯 마흔은 인생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는 나이다.
“요즘 사는 게 힘드네. 아이는 점점 커서 돈 들어갈 일도 많은데, 위에서는 감원이다, 희망퇴직이다, 사람 줄일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모아놓은 돈은 없고, 나가서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요즘 잠이 안 온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 녀석 하나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꺼내놓는다. 내색 한번 없이 성실하게 회사 생활 잘하고, 예쁜 각시와 딸아이 한 명 키우며 알콩달콩 살고 있는 친구였다. 웃음기가 많은 친구였는데 그날따라 술자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요즘 술자리가 재미없는 이유는 나오는 주제가 하나같이 현재의 처지에 대한 푸념과 앞으로 미래에 대한 걱정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위로할 말도, 조언할 내용도 마땅치 않다. 우리 모두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생도 우리는 두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험한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매일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음날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프스 신화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고착되어 버렸다. 카뮈의 말처럼 삶은 의미 없이 되풀이되는 부조리의 연속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나는 없고 짊어져야 할 짐만 가득한 당나귀 인생에서 볏 뜰 날이 올까? 물론 해답은 없다. 당나귀 특유의 끈기와 인내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고, 무의미한 일상에 작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자고도 말할 수도 있다. 반복되는 매일매일에 작은 변화를 줘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정을 부정함으로써 긍정에 이르려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지금 짊어지는 짐 하나에는 가족의 희망도, 아이들의 꿈도, 인생 2막의 염원도 실려있으니 말이다. 그러하니, 마흔이여, 매일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굴려 올리고, 다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더라도 다시 굴리기 시작하자. 온 힘을 다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부조리한 마흔에 맞서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