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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Mar 21. 2024

싱가포르의 건축|마리나베이

건축가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나라

데런은 싱가포르 정부 내 도시 개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을 합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며 도시의 미래를 그리는 장기 비전, 건축학적 상상력, 그리고 계획을 실행하는 싱가포르의 저력에 감탄했습니다.


싱가포르는 다음 50년을 위한 장기 비전을 세우고 도시를 디자인합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도시 디자인과 건축은 외부 투자와 관광객을 유치하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래요. 싱가포르는 도시 자체를 거대한 마케팅 플레이그라운드로 잘 활용하는 것 같아요.


마리나 베이가 아주 좋은 예입니다.



마리나 베이 샌즈 (Marina Bay Sands)


마리나 베이는 원래 바다였습니다. 약 20년 전, 세계 경제의 흐름 변화와 관광 매출의 감소로 고민하던 싱가포르는 대규모 비즈니스 컨벤션센터와 호텔, 카지노를 갖춘 도심형 복합 리조트 건설 계획을 승인합니다. 도박 금지라는 사회적 금기를 스스로 깨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반발하는 국민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총리가 나서서 싱가포르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프로젝트라며 설득을 했고, 결국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마리나 베이의 꽃, 마리나 베이 샌즈의 설계는 캐나다 건축가 모쉐 사프디(Moshe Safdie)가 맡았습니다. 카드 게임을 할 때 카드를 세로로 섞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건물을 디자인했다고 해요. 타워의 옆 면의 '人' 모양에서 카드가 보이시나요?



건축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설계가 되었지만, 사실 모쉐 사프디도 설계대로 지어질 거라고 상상하지는 못했대요. 몇 가지 난제들이 있었거든요.



첫 번째로, 마리나 베이 샌즈는 규모가 압도적입니다. 거대한 3개의 타워가 커다란 배를 떠받치고 있는 모양인데요. 타워의 높이는 206m이고, 배 모양의 스카이파크는 길이가 343m입니다. 에펠탑이 324m니까, 에펠탑을 눕혀놓은 것보다 긴 길이입니다.


두 번째로, 이 스카이파크에 세계에서 가장 큰 루프탑 수영장을 만들고 150만 리터의 물을 채워 넣었습니다. 무게를 다 합치면 6만 톤이라고 해요. 보통 높은 건축물의 상단부는 가볍게 만드는 것이 정석입니다. 롯데월드 타워를 봐도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구조로 되어있잖아요. 그렇지만 싱가포르는 면적이 축구장 3개를 합친 크기의 거대하고 무거운 구조물을 건물의 최상층에 올려두었습니다. 대단한 건축학적 도전이고 용기 있는 혁신입니다.


세 번째로, 최대 52도로 기울어진 타워가 어려움을 더합니다. 카드를 붙여놓은 모양으로 두 건물이 만나기까지 무너지지 않게 쌓아 올려야 하는데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사의 사탑도 기울기가 5.5도 거든요.


전 세계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14개의 건설사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대부분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공사를 맡은 곳이 어디였을까요?


바로 대한민국의 쌍용건설입니다. 쌍용건설은 교량 시공에 쓰이는 특수 공법을 이용하여 건축가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전례 없는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개발 비용이 무려 6조 원이나 들었어요. 하지만 투자비 회수까지 단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요. 싱가포르는 단숨에 MICE 산업 분야 (기업 회의, 인센티브 관광, 국제회의, 전시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Meeting, Incentive tour, Convention, Exhibition의 첫머리를 딴 용어) 세계 1위에 올라섰고,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Gardens by the Bay)


싱가포르의 국가 브랜딩과 새로운 비즈니스 유치를 고민하던 중, 식물학자인 Tan Wee Kiat 박사가 중심 업무 지구 남쪽, 현재 마리나 베이 샌즈 바로 뒤쪽에 정원을 건설하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원래 그 지역은 바다였기 때문에 처음에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엉뚱하다고 생각했대요.


그러나 상상력과 비전을 믿었던 싱가포르는 개발에 착수했고, 도로, 배수로 및 전기가 없던 황량한 공간을 5년 만에 1백만 그루 이상의 식물이 서식하는 정원으로 변신시킵니다. 적도 1도에 위치해 일 년 내내 열대 기후인 싱가포르이지만,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가면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의 식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식물원 덕분입니다. 또한, 정원으로 둘러싸인 고층 건물의 풍광은 싱가포르의 현대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도시로의 브랜딩에 큰 공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정원의 하이라이트는 슈퍼트리라고 생각해요.



아바타를 연상시키는 슈퍼트리는 호주 남서부의 카리 나무와 일본의 애니메이션 마법의 숲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슈퍼트리는 수직 정원으로, 난초와 고사리 등 159,000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내의 실내 식물원의 환기구 역할과 연료 탱크 역할도 담당한대요. 식물 폐기물을 연소시켜 연료로 변환하고, 태양열 전지로 에너지를 만들고, 빗물을 저장해 실내 식물원을 시원하게 하는 쿨링 워터로 사용합니다.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 (Art Science Museum)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은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곳에서 혁신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한다는 생각에서 건설되었습니다. 예술, 과학, 문화, 기술을 탐구하는 미션을 가지고 있어요.


이 건물도 마리나 베이 샌즈의 디자인을 맡은 모쉐 사프디가 설계했습니다. 연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두 개의 손바닥을 모으고 있는 모양이에요. 10개의 손가락은 서로 다른 전시공간을 드러내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으며, 풍수지리상 좋은 에너지와 행운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개관 후 레오나르도 다빈치, 살바도르 달리, 앤디워홀, 빈센트 반고흐 M.C. 에셔를 포함한 세계 유명 예술가들의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올해는 프리다 칼로 전시가 계획되어 있다고 해요. 빅데이터, 입자물리학, 고생물학, 우주론 및 우주 탐사 등 다양한 과학 분야를 탐사하는 중요한 전시들이 끊임없이 개최되는 곳입니다.



에스플러네이드: Theatres on the bay


싱가포르는 독특하고 풍부한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1970년대에 이미 복합예술센터 개발 계획 초안을 작성합니다. 당시의 문화부 장관은 싱가포르를 예술적으로 활기찬 도시국가로 변모시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 년 내내 다양한 문화 행사가 개최되는 공연장을 꿈꿨습니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에스플러네이드가 건축되었어요.


초기 구상 당시 디자인은 도심을 밝히는 전등이라는 단순한 컨셉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초기 디자인이 공개되었을 때 콘크리트 전구라며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 후 수정을 거쳐 탄생한 디자인이 현재의 형태입니다. 싱가포르 로컬들은 마이크라고도 부르고, 두리안이라고도 부릅니다. 2013년 싱가포르의 5센트 동전에 에스플러네이드가 들어가면서 명실상부 아이코닉한 건물이 되었습니다.



에스플러네이드의 돔은 뾰족뾰족한 스파이크로 덮여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삼각형의 패턴이 반복되는 구조입니다. 이 삼각형은 최첨단 금속으로 만든 햇빛 가리개로, 무려 7천 여개가 타원형 돔을 가득 덮고 있습니다. 이 조각들은 햇빛의 반사를 고려해서 모두 다른 각도로 세워져 있대요. 낮에는 실내에 그림자와 질감의 변화를 가져고, 밤에는 건물 내부의 하얀 광채를 표출해서 아름다운 야경을 만듭니다.


에스플러네이드는 오케스트라, 연극 공연 등이 열리는 싱가포르의 국립 종합예술 공연장으로, 1년 내내 약 4,000회의 공연이 열립니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계층이 예술을 향유하고, 사회적인 결속을 장려하며,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싱가포르는 다인종 다문화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문화를 포용한 독특한 예술들이 많아요. 이 문화적 조화가 싱가포르의 정체성이자 매력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멀라이언 (Merlion)


멀라이언은 반은 사자, 반은 물고기 형상을 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아이콘입니다.


사자의 머리는 사자의 도시 싱가포르를 상징합니다. 스리비자야 왕자가 싱가포르에 상륙했고, 사자의 형상을 한 신기한 동물을 발견하고 이곳을 싱가푸라, 즉 사자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거든요. 물고기의 꼬리는 예로부터 싱가포르의 주요 산업이었던 해운업을 상징한대요. 멀라이언이 물을 뿜는 이유는 풍수지리 상 물이 풍요와 부를 가져다준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전과 상상력, 실행 능력은 바다였던 마리나 베이를 메우고, 매력적인 건축물들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도 싱가포르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창의적이지 않은 건물은 승인하지 않는다고 해요. 새로 만나게 될 매력적인 건축물들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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