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베이와 센토사 말고도 싱가포르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브런치북에서는 싱가포르에서 살고 일하며 알게 된 싱가포르와 싱가포르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제가 가장 아끼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해요.
첫 번째 공간은 싱가포르 강입니다.
1819년에 싱가포르 강에 스탬퍼드 라플즈 경 (Sir. Thomas Stamford Raffles)으로 알려진 영국인이 싱가포르 강에 상륙합니다. 라플즈는 어떻게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싱가포르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 너머에 있는 형과 동생의 권력 싸움, 영국과 네덜란드의 경쟁에 얽힌 이야기는 무엇인지 알려드립니다.
라플즈가 싱가포르를 손에 넣게 된 이후 아주 중요한 정책을 펼칩니다. 바로 싱가포르를 자유무역항으로 만든 것인데요, 이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싱가포르로 불러 모읍니다. 어떤 사람들이 싱가포르로 이주해 왔는지, 싱가포르 강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아볼게요.
먼저, 이름부터 정리하고 갈게요. 싱가포르는 어떻게 싱가포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요?
싱가포리안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전설은 이렇습니다. 1299년, 현재 인도네시아 영토에 위치한 수마트라 왕국의 한 왕자가 싱가포르 지역에 도착했대요. 왕조가 몰락하자 어딘가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고 싶었던 것이죠. 어느 날 왕자가 사냥에 나섰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떤 신기한 동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수행원들에게 물었대요. “저 동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수행원이 대답했어요. "저것은 싱가입니다". 싱가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자라는 의미예요. 이를 좋은 징조로 여긴 왕자는 그 동물을 발견한 자리에 도시를 세우고 싱가푸라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싱가는 사자, 푸라는 도시라는 뜻이에요. 즉, 사자의 도시라는 의미지요. 그래서 여기는 싱가푸라, 현재의 싱가포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왕조가 99년 간 싱가푸라를 다스렸고, 이후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향권 안에 들어갑니다.
시간을 1819년으로 옮겨볼게요. 1819년은 200여 년의 싱가포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스탬퍼드 라플스라는 영국의 정치가가 싱가포르에 상륙한 해이기 때문이에요.
현재 라플스 동상이 있는 이곳이 라플스가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곳이라고 해요. 싱가포리안들이 역사 시간에 배우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라플스가 싱가포르에 왔고, 이곳에 있던 로컬 술탄(왕)과 조약을 맺었고,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지금부터는 싱가포르가 어떻게 실제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지 알려드릴게요.
1800년대 유럽의 무역회사들은 동남아시아를 두고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페낭과 벤쿨렌을 무역 거점으로 가지고 있었고, 네덜란드는 말라카와 자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이 가지고 있던 항구는 인도와 중국을 두고 교역하기에 그리 좋지 못했는데, 라플스는 벤쿨렌의 총독이었습니다.
이 당시 싱가포르를 지배하던 술탄은 압둘 하미드였습니다. 압둘 하미드에게는 첫 번째 부인으로부터 얻은 첫째 아들 후세인이 있었고, 두 번째 부인으로부터 얻은 둘째 아들 압둘 라만이 있었습니다. 1812년, 형은 말레이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북말레이로 떠나 있었습니다. 그동안 동생이 왕좌를 빼앗습니다. 허니문을 보내고 형이 돌아와서 동생이 술탄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동생은 형을 인도네시아로 보내버립니다.
자, 여기서 다시 라플스를 불러볼까요? 그는 영국 동인도회사 출신으로 벤쿨렌의 총독을 하고 있었고,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항구 사용권을 얻는데 활용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형을 찾아가 협상을 합니다.
“후세인, 내가 당신을 술탄으로 만들어줄 테니 항구 사용권을 나한테 줄래요?"
후세인의 대답은 "Yes!"
이렇게 형은 영국의 힘을 활용하여 술탄 지위를 얻고, 동생을 인도네시아로 보내버립니다. 이렇게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싱가포르 강을 손에 넣게 됩니다. 이때부터 싱가포르는 무역기지로 크게 성장합니다. 이로부터 5년 후, 라플스는 형과 우정의 조약을 맺습니다. 싱가포르와 63개 섬을 영국 동인도회사에게 넘기는 조약이었어요. 이를 통해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이제 싱가포르강을 건너볼 건데요, 여기 보이는 이 다리를 사용할 거예요.
카바나 브리지.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다리입니다. 다리는 스코틀랜드 글라스코에서 만들어졌고, 하나하나 다시 분리한 후에 다시 싱가포르에서 조립했다고 해요. 다리를 건널 때, 고양이를 찾아보세요.
싱가푸라 고양이 동상입니다. 싱가포르 고유종이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고양이 품종으로, 큰 눈과 갈색 계열의 털, 뭉툭한 꼬리가 특징이에요. 이 고양이는 멀라이언이 너무 유명해지기 전까지 싱가포르의 마스코트였답니다.
스탬퍼드 라플스가 싱가포르를 무역기지로 손에 넣게 된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그는 그것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바로 싱가포르를 자유무역항으로 만든 것이에요. 무역을 하러 와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획기적인 정책이었어요. 네덜란드 항구는 세금을 많이 부과했거든요. 이를 발판으로 싱가포르는 1819년 이후 5년 만에 동남아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 되었습니다. 활발한 무역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1819년의 싱가포르 인구는 1,000명, 1824년 1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어요. 현재는 600만 명입니다. 200년 동안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 동상이 힌트를 전해줍니다.
앉아 계신 분은 영국사람으로 보이네요. 그 앞에는 남중국 사람과 말레이 사람이 서있고, 오른쪽 사진 카트에 보이는 분들은 남인도에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현재 싱가포르 사람들의 인구 구성은 중국계 75%, 말레이계 13%, 인도계 9%, 유럽계 3%로 집계됩니다. 싱가포르의 원조 정착민은 말레이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국의 힘겨운 상황을 피해서 싱가포르로 와서 노동자가 되었고, 그중에는 돈을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인도계는 남인도에서 건너온 타밀 민족계의 후손이 대부분입니다. 섬유에서 보석까지 모든 상품의 무역에 종사합니다. 중국인 혹은 인도인과 현지 말레이인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페라나칸이라 부릅니다. 초기 페라나칸들 다수가 무역상 혹은 상인이었으며 언어의 강점이 있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요. 장미 오키드 혹은 나비를 모티브로 한 자수로 장식된 섬세한 전통 의상이 일품입니다. 싱가포르는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영어 4가지를 공용어로 활용하지만 영어를 교육, 관공서, 미디어에서 사용해요. 학교에서는 주로 영어로 수업하고 특정 과목은 본인의 언어로 듣는다고 합니다.
1970년까지 싱가포르 강의 모습은 왼쪽 사진 같았대요. 지금과 다른 점은 단연 보트들이죠. 큰 보트들은 밖에 정박하고, 작은 보트들이 들어와 물건을 창고에 보관하면서 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강가 쪽에 보이는 계단은 무역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보트가 정박하면 노동자들이 내려와서, 고무나 쌀 등을 지고 올라오고 창고에 보관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오른쪽 사진 뒤편에 보이는 낮은 빌딩들이 있는 지역을 보트키라고 불러요. 현재는 레스토랑이 즐비한 골목이지만 예전에는 이곳이 싱가포르의 항구의 중심지였습니다. 왜 싱가포르 강의 여러 부분 중에 이곳이 경제의 중심이 되었을까요?
싱가포르 강의 모양 때문이라는 썰이 있어요. 예전의 상인들은 싱가포르에 와서 강의 모양을 보고 물고기 모양이라고 생각했대요. 오른쪽 사진처럼요. 보트키는 물고기의 배 부분으로 번영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곳을 중심지로 삼았다고 해요.
이후에도 풍수지리는 싱가포르에 몇 번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1980년대에 싱가포르는 첫 경제공황을 겪습니다. 정부 관료들은 풍수지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전문가들은 번영을 상징하는 싱가포르 강의 배 부분이 뚫렸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무엇이 배를 뚫었을까요?
MRT 터널이었어요. MRT는 Mass Rapid Transit의 약자로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비슷해요. 1980년대에 싱가포르는 MRT를 만드는데, 위 사진 중앙에 실린더 모양의 건물은 시티홀역이고, 사진을 찍은 뒤쪽에는 라플스 플레이스역이 있습니다. 바로 붙어있는 초록색 호선의 이 두 역을 연결하기 위해 물고기의 배의 아래로 터널을 뚫게 된 거예요.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해결책은 좋은 기운을 상징하는 팔각형을 싱가포르 전체에 퍼뜨리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어떻게 팔각형을 싱가포르 전역에 퍼뜨렸을까요?
답은 모두가 들고 다니는 동전이었습니다. 싱가포르는 경제공황의 정점이던 1988년에 팔각형 모양을 담은 금색 1달러 동전을 발행했습니다. 이후 2013년에 디자인을 변경했고, 요새는 오른쪽 사진의 1달러 동전을 사용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