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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이런 세상도 존재하는구나

겨울에 떠난 남프랑스

by 정안

12월은 한겨울이다.

겨울에는 따뜻함이 그리워지니 생각나는 곳은 남프랑스였다.


여행계획을 세우고 숙소를 예약하고 남프랑스 도시 간 이동 기차와 파리의 미술관과 성당, 에펠탑을 예약했다. 퇴근하고 집에서 새벽까지 일 아닌 일을 하며 피곤에 쩔은 상태지만 기분은 신나서 한 달을 보냈다. 떠나기 바로 전날 계획을 완성했다. 긴 비행시간이 고마웠다.


역마살이 뻗친 나는 포로 자세의 스무 시간 비행도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자고, 주면 먹고, 영화 보고, 또 자고... 인생에 이렇게 수동적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이게 웬 횡재냐 하는 심정이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서 환승을 했다.


스키폴 공항의 명물 시계, 사람이 시계 안에 들어가서 '1분"마다 시곗바늘을 지우고 다시 그린다. 그의 옷은 몇 년 전 왔을 때처럼 파란색, 네덜란드 항공기의 기본 색조도 파란색. 차를 마시며 비행시간을 기다린다.


공항의 이 번잡함이 좋다. 어딘가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설레임과 이곳에서 만나는 누구라도 친구가 될 것 같은 호의 가득한 공간의 따뜻함.


니스에 도착했다. 갑자기 낯선 세계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어리둥절하다. 공항역에서 거의 1시간 가까이 헤매게 했던 메트로 발권기, 공항 2 터미널에서 니스빌역까지 가려고 하는데 1회권이나 구간권이 없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대부분인지 서로서로 물어봐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항 2 터미널과 1 터미널은 무료이고 그다음역에서 구간권을 끊을 수 있었던 거였다.


겨울 오후의 니스 거리, 낮은 건물들 꼭대기로 햇살이 비치고 있다.

숙소에 짐을 두고 샤갈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치고는 작고 허름해서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자세히 보면 벽 위 청동으로 된 부분에 'MUSEE NATIONAL MARC CHAGL'이라고 쓰여있었다. 극한의 미니멀리즘인 건가...


짐 검사를 하고 들어가서 보관소에 짐을 맡겨야 한다. 프랑스 여행 때 들른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 유적지에서는 입장할 때 짐 검사를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무슨 행사가 있는지 입장료는 무료였다. 매표소와 기념품점이 있는 작은 건물을 통과하면 정원이 나온다. 여름에 왔더라면 라벤더와 올리브 나무가 가득 피어있었을 것이다.


겨울이었지만 정원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단층의 미술관 건물과 잘 어울리는 정원이다.


니스에 있는 샤갈박물관은 샤갈의 작품 중에서 성서에 관한 그림이나 종교색이 짙은 그림을 모아 1973년 개관하였는데, 그 시작은 1966년 샤갈 부부가 프랑스 정부에 작품 17점을 기증하면서부터이다.


현재는 약 45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 인간의 창조,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등 구약 성서를 주제로 그린 17점의 연작 유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샤갈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로 작품의 주제는 주로 인간의 감정과 정신세계, 유대인 전통과 신화이다.


샤갈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작은 공연장.

스테인드글라스로 구현된 그의 몽환적인 그림이 피아노 공연과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샤갈은 그림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주제, 섬세한 디테일과 아름다운 색채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많이 남겼다.


한 인간의 열정은 시간 속에 재가 되어도 저 열정들은 천지에 가득하다.

- 황현산 '우물에서 하늘보기'


성서를 주제로 한 연작유화가 있는 전시관.

크기가 큰 그림을 직접 보니 샤갈이 표현하려고 하는 어떤 느낌이 온라인으로 볼 때와는 확연하게 다르게 다가왔다. 내 손에도 붉은 물감이 아니 붉은 피가 묻을 것 같은 느낌... 내가 꾸고 있는 꿈같은 묘한 착각.


한참 빠져들어 보고 있는데 키가 크고 멋있는 보완요원이 우리에게 와서 퇴실 시간이라고 말한다. 오후 5시까지인데... 거의 40분 전에 나와야 했다. 이유를 친절하고 길게 설명해 줬는데 영어가 짧아 못 알아 들었다.


샤갈박물관에서 나와 니스 중심가인 마세나 광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빽빽하게 세워진 차가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역사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개발을 거의 하지 않는 도시들의 특징은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자동차들이 대부분 소형이라는 것이다.


겨울이라 오후 5시만 되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해가 지면 어두울 것이라는 것은 착각. 밤의 해가 하나둘 켜지고 거리는 활기를 띤다. 버스커들은 몸을 풀며 준비를 하고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기다린다. 니스의 중심이 되는 세로 거리는 트램과 사람들이 공존하고 가로로 가는 작은 길들은 자동차들이 일방통행으로 다닌다. 이런 시스템이 복잡한 도시를 단순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한다. 트램이 오면 피하고 안 올 때는 사람들의 거리로 금방 변신한다. 이 넓은 도로를 교통수단이 독점하는 일은 없다.


마세나 광장

대부분이 여행자인 이곳은 새로운 세상이다. 축제 그 자체인 거리와 사람들, 그곳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세상도 존재하는구나.


해가 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기다린다.


매일 해가 뜨고 해가 지지만 그 매일의 해에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있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모습은 실루엣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실루엣만으로 살아간다면, 아들이 초등학생 때 수업시간에 그려 상자 한가득 채워 두었던 졸라맨처럼 사람이 단순화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전쟁도 없고 분쟁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까.


드넓은 지중해 바다 위로 서서히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뭉클한 것이었다. 해가 지는 쪽에 니스 공항이 있어서 붉게 지는 해와 함께 비행기가 날고 새가 난다. 초승달도 풍경 안으로 들어온다.


이윽고 니스 해변에 밤이 찾아온다.


밤은 도시에 또 다른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니스성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본다. 밤은 동서남북에 골고루 찾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밤길에 만난 생트레파라트 대성당, 12월의 니스 곳곳은 NOEL(크리스마스 주간)로 성탄절 분위기가 가득하다.


성당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둥근 성당 천장을 울리는 성가대의 합창 소리, 동네 주민들로 이루어진 성가대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되지 않은 그 소리가 나직하고 깊게 스며들었다.


그렇게 남프랑스 니스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매주 목요일 연재하는 글입니다.

다음글 "니체의 산책로 에즈"는 1.18(목)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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