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했던 남프랑스 도시 중에서 다시 가서 며칠 머물고 싶은 곳이며,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을 주었던 도시이다. 우리 삶에는 아름답고 고귀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삶은 거칠고 찬바람 불고 크고 작은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낸다. 마르세유는 그런 도시였다.
마르세유는 항구도시이고 여러 대륙을 잇는 물자 유통의 교두보이다. 마르세유 주민은 다양한 곳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이슬람인과 이스라엘인·그리스인· 아르메니아, 최근에는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젊은 기술자들이 이주해 오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 명소들이 옛 항구(Le Vieux Port) 근처에 모여 있어걸어서 이동이 가능하고 이 일대가 마르세유의 부촌으로 꼽힌다.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혁명기간 파리로 올라온 마르세유 의용병들이 부르던 군가였다고 한다. 프랑스 축구 영웅 지단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르세유는 니스에서 TGV를 타고 2시간 30분 걸린다. 3박을 머물렀던 니스에서 떠나 다음 숙소 아비뇽으로 가는 중간에마르세유가 있어서 짐을 맡기고 마르세유를 여행하기로 했다. 마르세유 생샤를역 스타벅스에서 아침을 먹은 후 옆에 있는 짐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마르세유 대성당으로 향했다.
역에서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25분은 마르세유의 속살을 본 시간이기도 했다. 걸어서 가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을 모습이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마르세유 대성당부터 지중해박물관과 옛 항구,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대성당 인근은마르세유의 부촌이다. 그래서 그곳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생샤를역 스타벅스 입구 양쪽에는 그곳에 오랫동안 터전을 잡은 듯한 노숙자 2명이 있다. 마르세유라서 가능한 걸까? 스타벅스 앞이면 매장 이미지를 위해 뭔가 조치를 취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괜스레 마르세유가 인간적인 도시라는 느낌이 드는 건 왜였을까...
역에서 멀지 않은 번화한 광장에 왔는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광장 의자의 대부분은 집을 잃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고, 술에 취한 한 남자가 술병을 깨서 자신의 목에 대고 광장 가운데 서서 절규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는데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찍으려던 사진을 멈추고 조용히 그곳을 지나쳐 왔다.
조금 더 가니 사람들이 인도를 가득 메우고 줄을 서있었다.뭔가를 기다리는 듯한데 줄이 길어 알 수가 없었다. 기차역에서 마르세유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길은 치열하고 고단하게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꾸밈없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남프랑스에 온 며칠 동안 아름답고 멋진 것만 봤다. 여행의 의미를 다시 물었다. 스스로에게. 우리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관광지 이면에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벽에 걸린 액자처럼 관광지만 보는 여행을 한건 아닌지...
마르세유 대성당
마르세유 대성당이 있는 마조레 광장 근처에 도착하자이제까지 걸어오는 25분 동안 보았던 마르세유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되었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사람도 거의 없다. 다른 세상 같다...
마르세유 대성당은 1852년에서 1893년까지 41년간 지은 신 비잔틴 양식과 신 로마네스크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축물로 줄무늬 장식처럼 보이는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정면은 아치형 문으로 그 위에는 여러 개의 작은 아케이드에 성인 조각상이 하나씩 놓여 있다. 입구 양쪽의 사각 탑 꼭대기와 제단을 장식하고 있는 크고 작은 돔 지붕들도 인상적이다.
마르세유 주교들의 묘가 안치된 지하 묘와 돔 안쪽의 아름다운 천장 문양도 있다. 오래된 성당과 새로운 성당이 같이 있고, 디자인은 로마와 동양 스타일이 결합되어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1906년 대성당은 그 웅장하고 뛰어난 건축미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내부 벽 중 일부는 신자들이 기증한 그림, 타로, 모형선, 전쟁 메달 등이 전시되어 있고, 마르세유의 항해 특성을 강조하는 선박 모형도 걸려 있다. 성당 입구 왼쪽 광장에는 18세기 전염병이 퍼졌을 당시신도들과 함께 헌신한 주교의 청동 동상이 있다.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뮤셈)
마르세유 대성당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유럽지중해 문명 박물관(뮤셈)'이 나온다.
*유럽지중해 문명 박물관(Musée des Civilisations de l'Europe et de la Méditerranée)= 뮤셈(MuCEM)
2013년 개관한 뮤셈은 유럽의 관문이자 세계로 가는 통로였던 마르세유 항구 입구에 설치된 국립박물관으로 유럽·지중해 문명을 소개하는 고문헌, 민속품, 공예품, 사진, 엽서, 음향자료 등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곳이다.
건축가 루디 리치오티와 롤랑 카르타가 “돌, 물, 바람”을 주제로 설계한 뮤셈은 J4로 불렸던 옛 항구와 1660년 세워진 생 장 요새(Fort Saint-Jean)와 나란히 있다. 뮤셈 박물관이 있는 J4 빌딩과 생 장 요새 사이를 가르는 수로는 공중에 다리로 연결하여 마르세유 대성당, 파로궁전, 생장요새, 지중해 바다까지의 아름다운 전망을 보며 걸어서 갈 수 있게 만들었다.
박물관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곳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뭔가를 모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지중해와 인접한 주요 도시들의 오래된 역사, 문화를 생활 밀착형 유물로 볼 수 있어, 마치 그 지역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이 내 가까이 있는 듯 느낄 수가 있었다.
오래전 그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복식을 재현해 놓은 곳인데 유명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지역마다의 특성을 담은 정성스러운 옷들은 영혼을 담은 집처럼 느껴졌다.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나는 소재로 일하기 편하게 만들었을 옷, 그저 소비되는 옷 이상의 의미가 전해져 온다.
시공간에 대한 모형과 그 당시 세계지도
이 오래된 세계지도에서 Corée라고 표시된 우리나라를 보았을 때의 감동! 우리나라 사람이 쓴 편지도 있었는데 한자가 많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많은 자료들이 있었고 마치 보물창고 같아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옥상에 있는 휴게공간과 이동 통로
지중해의 햇살이 그물형 틈새를 통해 안으로 들어오는 매력적인 구조이다.
마르세유 대성당
생장요새
파로궁전
다리를 건너오다 보면 마르세유 대성당, 생장요새와 항구, 파로궁전이 보인다. 다리가 공중에 있어 360도 전망을 다 볼 수가 있다. 파로궁전은 나폴레옹 3세를 위해 1858년에 지은 궁전으로 현재는 회의장으로 사용된다. 정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생 장 요새 Fort Saint Jean
생 장 요새는 1660년 루이 14세가 반란을 우려해 육지의 시민을 경계하기 위한 용도로 세운 요새이다. 이 건물은 프랑스 혁명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 정치 때에는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학살된 장소였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점령되었다가 다시 프랑스에 반환되었지만 방치되고 폐기된 상태로
있다가 1964년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 후 1971년까지 재건되어 2013년 유럽지중해 문명 박물관의 일부가 되었다.
생장 요새 전시장에서는 르네 페로라는 작가의 "삶과 일"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1912년~1979년까지의 기간 동안 일어난 커다란 변화인 산업혁명과 두 번의 세계대전이 삶과 일에 끼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생로랑 교회
생 장 요새를 두르고 있는 지중해 정원길을 걸으면 지중해에서 자라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이 이름표를 달고 햇살에 빛나고 있고,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이 쉬어가라는 듯 반짝인다. 생장요새에서 공중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생로랑 교회가 있다.
옛 항구 Le Vieux Port
생로랑 교회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면 옛 항구가 펼쳐진다. 수백 척의 배가 네모난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옛 항구는 마르세유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파빌리온, 거울천장
마르세이유는 항구도시와 지중해 문명을 상징하는 역사도시로서의 명성을회복하기 위해서 1995년부터 대규모의 도시재생사업을 계획하여 현재까지 추진 중이다. 그 성과로 마르세유가 2013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되면서 더 적극적인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옛 항구에 파빌리온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파빌리온(pavilion) : 전시회 및 박람회 등에 이용되는 가설 건축물
공모에서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와 프랑스 도시계획가인 미셀 데빈 팀의파격적인 디자인이 당선되었다.
이들의 파빌리온은 거대한 거울과 같은 스테인리스 스틸 지붕을 설치하여 모든 각도에서 옛 항구와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면서 그 속에 있는자신의 모습도 같이 비추어 준다. 문득 이 거울천장이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괴물 자석처럼 느껴졌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서 괴물이 널 먹어버릴 거야. 뭐 이런...
나는 역시 좀 쉬어야 한다.
항구에서 올려다보니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대성당이 보인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 Notre-Dame(성모 마리아) de la Garde(수호자), "수호자 성모"라는 뜻
거울천장에서 바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있었는데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골목골목을 누비며 올라갔더니 성당 뒷문 쪽이었다. 그래서 내려올 때는 아름다운 앞문쪽 풍경을 보며 내려올 수 있었다.
"수호자 성모에게 바다에 빠진 자들과 그 가족을 맡기며"
성당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본 것이 바다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였다. 아름다운 바다는 무엇을 감추고 있나. 아름다운 것만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la Garde)
마르세유의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는 성당이다. 16세기부터 도시를 지키는 요새의 역할을 하다가
1853년부터 1864년까지 11년간의 공사를 통해 지금의 성당이 되었다. 성당은 19세기 신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은 웅장한 건축물로 내외부가 줄무늬처럼 보이는 채색 대리석과 금 도금상, 모자이크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성당 내부 천장은 금색 바탕에 화려한 색감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그 자체로도 하나의 작품이다.
성당 건축물은 바닥 높이에 따라 크게 상단과 하단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상단은 완전한 신 비잔틴 양식 건물로 거대한 돔과 줄무늬가 화려하고 하단 교회에는 성벽 일부와 지하 묘지, 계단, 장식 없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 있다. 측면에는 40m 높이의 사각 종루가 하늘 높이 솟아 있고종탑 꼭대기에는 머리에 관을 쓰고 아기 예수를 안은 황금색 성모 마리아상이 세워져 있다.
우리가 지나온 뮤셈과 생장요새, 옛 항구가 보인다. 한 발자국씩 대딛은 걸음이 돌아보았더니 지도가 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해가 지기 시작하는 마르세유를 둘러본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있는 이곳,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그림 속에 삶의 다양한 모습들은 건물과 햇살에 가려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존재하고 살아 움직이는 작은 삶들이 큰 그림에 가려 아무것도 아닌 것, 당연한 것이 되지 않기를...
내려오면서 돌아보니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머리 위로 초승달이 떠있다. 도시에 어둠이 찾아오고 내려가는 길 아래쪽에 석양이 드리운다. 걸어서 내려가고 있는데 식료품을 넣은 작은 수레를 끌고서 할머니 한분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젊은 사람도 올라가기 힘든 가파른 언덕길 오랜 세월 이곳을 오르내렸을 그분의 삶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마르세유 역시 크리스마스 주간(Noel)이라 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하고 다양한 종류의 마켓도 열리고 있다. 성당에서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퇴근시간 차가 막히는 모습을 보며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아름다운 여행지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어" 라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