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따뜻한 그녀, 우리엄마

by 정안

칠십구세 우리 엄마,
고단했던 시절을 지나고 지나 지금은 엄마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기를 보내고 계시다.


새벽부터 텃밭에 가서 물 주고 풀 뽑기, 산 중턱에 있는 절에 가서 자식들을 위해 절하기, 친구분이랑 봉지커피 3개 타서 두 분이 나눠 마시고 동네 산책, 막걸리 한잔 드시고 핸드폰 1번부터 눌러 자식들 모두에게 스토커 수준으로 전화하기. 뭐 이런 일들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신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엄마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거의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긴 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패기와 위트, 자식에 대한 강철 같은 믿음과 자부심을 뿜어내는 아우라 가득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너무 많이 들어서 외울 정도인 이야기도 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어 놀라곤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새로운 이야기가 양념처럼 섞여 있었다.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걸까


언제 기회가 되면 엄마의 인생을 글로 써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살아온 인생이 결코 평탄치 않았음에도 아니, 이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엄청나게 파란만장했음에도 여전히 자존감 높고 씩씩한 우리 엄마!


평생을 일하셨다.

어릴 적에는 가난한 외가에서 일했고 결혼해서는 부유한 친가에서 시집살이 호되게 하며 일했다.


지금도 집 앞 텃밭에서 욕심껏 가꾸고 수확한 야채, 콩, 마늘, 깨소금, 고춧가루를 가져가라고 성화시다. 그런 우리 엄마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분인지 몇 가지 에피소드로어 보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 학년이 올라가면서 어쩌다 반장이 되었다.

공부를 잘해서도 아니고 집안이 좋아서도 아니고 그냥 아이들이 반장투표에서 나를 뽑아줬다. 담임선생은 좀 강하고 독특한 성격이었지만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이없는 이유로 담임한테 얻어맞고 원수가 되었다. 담임이 내가 문제가 있어 부모님 상담이 필요하니 엄마를 모셔오라고 했다.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학교에 와야 한다고 했다. 위풍당당 우리 엄마 학교에 오셨다.


이제부터는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다.


상담실에 앉자마자 담임 왈
"따님은 문제학생입니다. 전학을 시켜주세요"

엄마는 사실 내 이야기를 듣고 점심이라도 사 드시라고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서 학교에 오셨던 모양이다. 근데 첫마디에 엄마는 꼭지가 휘리릭....


"우리 딸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공부 잘하고 성실하고 똑똑하다는 칭찬만 받아온 애입니다. 어디서도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런 우리 딸을 전학시키라고요!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보고 들어온 내 딸이 왜 전학을 가야 합니까. 선생님이 전근을 가세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 나는 쪼끔 눈물이 났더랬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 이야기는 전설이다.


내가 대학생 때 집 앞 지하에 있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돌아가는 컨베이어 시스템에 앉아 전자부품을 꽂는 작업을 했는데 나는 이 일이 적성에 맞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틀어주는 신나는 노래도 좋았다. 그래서 열심히 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하게 잘 지냈다. 사장님이 어느 날 명세서 같은 것을 주며 정리해서 계산을 좀 해달라고 해서 정리해 주고 학교에 갔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데 공장 앞이 엄청나게 소란스러웠다. 엄마 목소리도 들렸다.


큰소리가 나면 불안에 떠는 것이 우리들의 특징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까이 가보니 엄마였다. 공장 사장님과 큰소리로 싸우고 계셨다.


내용인즉,

사장님이 내가 계산한 게 좀 틀려서 따님 오면 다시 계산해달라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엄청 화를 내며 똑똑하고 정확한 우리 딸이 절대 계산이 틀릴 리가 없다고 그건 당신이 뭔가 잘못 안 거라고 소리소리 지르셨다고 한다. 엄마 몰래 내가 사장님께 사과하고 게산을 다시 해드렸지만 너무 미안하고 창피해서 그 공장에서 다시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절대적인 신뢰가 고맙고도 씁쓸했다. 꿀알바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디 갔다가 집에 들어가면 우리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랄 백이 왔네 지랄 백이 왔어"


화가 나면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어휴 저 말대가리 설 삶은 년!"


어느 더운 여름날 동생이 옷을 사 가지고 왔다.

엄마는 그 옷을 쓱 한번 보더니 "그걸 옷이라고 샀냐 눈만 흘겨도 찢어지겄다"


우리 집 옆에 약국이 생겨 굉장히 세련된 가족이 이사를 왔다.

약사 부부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약사 부인은 우리를 굉장히 예뻐했고 특히 내 여동생을 좋아해서 여동생은 우리 집에 있는 시간보다 그 집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약사 부인은 다이어트를 하는 바람에 그 집 아들은 제대로 얻어먹지를 못하고 군것질만 해서 이빨이 다 썩었는데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엉뚱하게도 내 동생한테 애정을 쏟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약사 부인이 집에 있던 돈이 없어졌다며 소란을 피웠고 내 동생이 그 집에 많이 드나들었으니 내 동생을 의심하는 듯한 말이 오갔던 모양이다. 그날도 학교를 마치고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는데 약국에서 떠나갈 듯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국으로 들어가 보니 엄마가 약사 아저씨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있었다. 약사 아저씨는 정신이 나간 듯 서있었고 약사 부인은 갑자기 약국으로 쳐들어간 엄마를 보고 줄행랑을 친 모양이었다.


착하고 똑똑한 내 딸한테 감히 어디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그냥 두지 않겠다고! 그런 주둥아리 놀린* 당장 나오라고! 마누라 교육 제대로 시키라고! 이 동네에서 약국 못할 줄 알라고!


사실 그때 나는 정말 속이 시원하고 엄마가 태권브이 보다 마징가 제트 보다 멋져 보였다. 그때 순간적으로 분을 못 이긴 엄마가 약국에 있던 수석(돌)을 들어서 약사를 향해 던졌다. 허걱.... 다행히 수석이 꽤 무거워서 멀리 가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서있던 약사의 표정은 몹시도 어두워졌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 약국이 없어졌다.

거의 매일 계속되는 엄마의 폭언을 견디다 못해 약국이 이사를 간 것이었다. 울 엄마 파이팅!!! (어이쿠 죄송)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 우리는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 지긋한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 제사를 지내는 날,

늘 그렇듯이 아들 딸 사위 손자 손녀 다 모였다. 제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는데 사위가 “장모님 조기가 참 맛있어요" 했다. 우리 모두 맛있다고 잘 사셨다고 했다. 진짜 그날 조기는 크기도 적당하고 모양도 이쁘고 먹음직스럽고 고급졌다


셋째 사위가 말했다

"장모님 조기가 아주 맛있어요"


엄마는 무심히 밥을 드시며 한마디 하셨다

"내가 집 사는 심정으로 산 거니까 많이들 먹어"


다들 빵 터졌다.


동생 아들이 내가 나온 지방대학에 들어갔다. 공부를 잘했는데 다들 아쉽다는 눈치였다.

엄마가 말했다

"우리 손자! 역시 엄마랑 이모 닮아서 똑똑해 똑똑해. 거기가 수원의 서울대쟎어!"


우리 모두 급 위로받고 행복해졌다.


젊어서부터 일을 많이 하신 엄마의 무릎이 드디어 고장이 났다.

참 오래도 버텼다. 연골이 다 닳아 수술을 했다. 거의 한 달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엄마는 입원 일주일째부터 너무 답답하고 소화도 안된다고 퇴원하고 싶다고 호소를 하셨지만 혼자 계시다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된 우리는 엄마를 퇴원시켜 드리지 않았다. 엄마는 집요하게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평소 활동적이던 엄마의 답답함이라고만 생각해서 우리는 계속 안된다고만 했다.


어느 토요일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간병인과 새벽에 병원을 탈출하셨단다. 회진 시간이 지났는데 전화도 안 받고 안 오신다고 간호사 속이 탔다. 씩씩대며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안 받다가 마지못해 겨우 받으셨다. 너무 꿉꿉해서 새벽에 간병인과 찜질방에 다녀오는 길이고 병원에 도착하셨단다. 너무도 어이가 없었지만 믿었다. 근데 내가 바보였다.


다음날 간병인의 양심 고백이 있었다.

절대 말하지 않기로 했는데 도저히 양심에 찔려서 안 되겠다고 하면서


어두컴컴한 새벽,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엄마 집 텃밭으로 가셨단다. 엄마는 밭 끄트머리에 앉아 감독을 하고 미리 연락을 받고 나온 동네 아주머니 두 분과 간병인이 열심히 고추를 땄단다. 고추를 다 따놓으니 어떤 아저씨가 차에 실어 엄마 집에 내려주고 가셨단다. 참으로 일사불란했다고


나는 엄마한테 한바탕 지랄(죄송~)을 떨고 다시는 병원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오려는데

"근데 급하게 널고 나오느라 고추 썩은 걸 못 골랐어. 네가 좀 가봐"


엄마 집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여름내 엄마의 정성을 듬뿍 받고 튼실하게 잘 자란 고추가 한가득이었다. 속이 타긴 하셨겠군... 이해가 가면서도 화가 났다.


"엄마! 고추 때문에 병원에서 한 번만 더 나오면 그 망할 놈의 고추 다 갖다 버릴 줄 알아!!!"

.

.

.

며칠 전 김장을 했다.

엄마가 보내준 파, 갓, 고춧가루, 마늘을 듬뿍 넣어 아주 맛있는 김장김치가 탄생했다. 엄마한테 김치를 가져다 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 고춧가루가 그 고추야"


헐...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

지금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시기를


"신은 모든 인간을 돌볼 수 없어서 엄마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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