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이야기

웃었는데 한켠이 쓰렸다.

by 정안

재작년쯤

친한 동기들과 함께 제주도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유쾌한 사람들이어서 무엇을 해도 어디를 가도 즐거웠고 아주 많이 웃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

속소로 돌아가는 봉고차 안에서 재미로 자기가 겪은 억울한 일 한 가지씩을 이야기하자고 누군가 제안을 했다. 한 사람이 시작하자 이야기의 봇물이 터졌다(어찌 참고 살았을까...) 포복절도하고 씁쓸하고 안타깝고 속상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웃다가 우리는 아니 나는 어느 순간 가슴 한켠이 쓰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나... 지나갔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어서 더욱 쓰라린 일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장되게 웃었고 진짜로 웃기기도 했다. 그때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몰려왔다. 내가 다르게 대처했다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하필 그때 내가 왜 거기에 있었을까....나는 운이 없어...평소에 나를 그렇게 봤으니까 그런 일이 생긴 거겠지... 나를 공격하는 생각들이 많았다.


이날 나는 본의 아니게 내 인생의 억울한 일들을 정리해 보게 됐다. 수많은 억울한 일들이 있었겠지만 기억나는 것만 쓴다. 더 이상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



#중학생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반 대항 배구시합에서 우리 반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때 나도 선수였는데 공이 거의 오지 않는 맨 뒷줄 구석자리가 나의 위치였다. 그날 결승전 바로 전 시간이 음악시간이었다. 수업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배구 연습하게 해 주세요.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까칠한 음악 선생님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아이들은 선생님 얼굴을 보고는 소리를

딱 멈췄다. 그때, 딴짓을 하고 있던 내가 “선~생~님 제~발~요~~~~"


허걱!

넓은 음악실에 내 목소리만 높이 높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선생님이 딱 걸렸다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앞으로 나갔다. 아이들 모두 보는 앞에서 시커멓고 두툼하고 딱딱한 출석부 모서리로 열대쯤 맞고 교탁 옆에 무릎 끓고 앉아 음악시간이 끝날 때까지 있었다. (아... 그때의 비참함이란...)

한 시간을 꽉 채워 수업을 마친 음악 선생이 나가고 아이들은 내 주위로 몰려와 대판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이마는 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발은 저려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우리 반은 아슬아슬하게 졌다.

우리 모두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자 담임선생님 오셔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내가 죽어도 이렇게 울지 않겠다 ㅎㅎ" 중학교 3년 동안 음악은 내 원수였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고3을 너무도 즐겁게 보낸 나는 재수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학원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그 음악 선생이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엄청 고민했다. 뒤통수를 한대 갈겨도 시원치 않은데 아는 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물쭈물하는데 정면으로 딱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꾸벅.....(제기랄) 새로운 뭔가를 해보려고 공부 중이라고 했다. (손톱만큼도 안 궁금하거든!)


나보고 공부 열심히 하라며 갔다. 뒷모습을 보며 돌이라도 던지고 도망갈까! 하다가 너무 멀리 가버려 포기했다. 다시 만나면 따지려고 했는데 그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ㅜㅜ


#고등학생 1

봄이었다

교실 뒤편 철쭉 화분에 꽃이 피었다. 자세히 보다 보니 시들어가는 꽃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따기 시작했다. 시들어 가는 꽃만 땄는데 이상하게 화분에는 꽃이 몇 개 남지 않았다. 몇 개 없는 꽃이 더 이상해서 나머지 꽃도 모두 땄다. 마침 새잎도 나고 꽃이 없어도 나쁘지 않았다.사이가 좋지 않던 담임선생 수업에 들어와서 소리쳤다.


"어떤 새끼가 철쭉꽃 다 땄어!!!"


교무실로 끌려가서 혼이 쏙 빠질 만큼 야단을 맞았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변명하지 말라며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만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그게 더 나를 비참하게 했다.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인데.... (엉엉)


다음날

내가 담임선생에게 불만을 품고 교실 화분의 꽃을 모두 다 따버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게 아니라고!!!


#고등학생 2

고3 전체 체력장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운동장으로 1개 반씩 나가서 연습을 했다. 왁자지껄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나와 친구를 부르시더니 연습을 먼저 끝낸 1반 아이들이 단체로 없어졌다며 찾아서 데려오라고 하셨다. 1반 교실에 갔더니 남아있던 아이가 반 아이들이 모두 염전을 보러 간다며 나갔다는 거였다.


세상에 이 무슨....


우리는 부랴부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급하게 나오느라 슬리퍼를 신고 나와 뛰기도 힘들었다.(착용감이라고는 1도 없던 그 퍼런 슬리퍼) 정류장에 1반 아이들이 모두 모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달려가서 선생님이 찾으시니 빨리 학교로 가야 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염전에 내려 신나게 놀고 돌아왔다. “자유!”를 외치는 1반 아이들에게 홀랑 넘어가서 데리러 간 우리도 함께 간 것이었다. 결과는 좀 억울했다. 1반 아이들은 단체로 잠시 잠깐의 훈계만 들었는데 나와 친구는 일주일간 도서관에서 반성문을 써서 검사를 받고 통과해야 집에를 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늘 만원이라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운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고 있는데 누군가 말했다.


"야 염전 사건으로 000과 000 정학당했다며"

"정말?"

어쩌구 저쩌구

(아 놔... 나 등교하고 있거든...)


#대학생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친구(참고로 남자)를 도서관에서 만나 학교 입구로 뭔가를 마시러 가고 있었다. 걸어가면서 추운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추운 장소가 어디냐면" 하면서 내가 뒤돌아 어딘가를 가리켰고 같이 가던 친구도 돌아보며 “맞아"하고 함께 웃었다.


그때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추워서 잔뜩 움츠리고 걷느라 옆을 지나가는 줄도 몰랐는데 살짝 풋풋한 감정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해오던 선배가 내 옆을 스쳐간 것이었다. 얼떨결에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걷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꼬였는걸..."


상처 받은 그의 얼굴이 어렴풋했다. 그날 이후 선배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졸업을 했다. 그때 구지어 만나서 설명하지 않았던 것은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이 된 건 인연이 아닐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오해를 풀지 않아 상처 받았을 그 선배에게 몹시 미안하다. 그는 다 잊고 잘 살고 있겠지만 나 홀로 반성한다.


"미안해 선배!"




쓰다 보니 좀 웃겨서 "억울한 이야기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당시는 정말 죽을 듯 억울한 일들이었다. 갑자기 그 시절 함께 했던 모두가 그리워진다.




오늘은 투표일

일찌감치 사전투표를 한 나는 시간대별 투표율을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오후 3시 현재 56.5%

위대한 대한민국에 박수를 보낸다. 함께 코로나를 이겨 내고 있고 연대하고 단결하며 서로를 토닥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충족감인가!


두근거리며 개표방송을 볼 저녁시간을 위해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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