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은 연달아 일어났다.
경험상 나는 이런 날을 조심해야 한다.
첫 번째 일이 일어났을 때
조심이라는 단어를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째 일이 일어났다.
아침에 출근하면 커피를 마시고 시작한다.
혼자 마시지는 않고 사무실에서 그날그날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마시며 가벼운 수다를 한다.
그중 옆자리 직원과 가장 많이 마신다.
아나운서처럼 발음이 똘망하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그녀, 이런저런 고충을 누에고치에서 실 나오듯 이야기하고 나에게는 거의 공감의 고갯짓과 가벼운 추임새만 허락했던 그녀가
어느 날
"차 한잔 마실까?"
하는 나에게 말했다.
"음... 내가 너무 내 이야기를 많이 해서 좀 그래.
언니는 자기 얘기 거의 안 하고 듣기만 하는데 나만 너무 속을 많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
뭐 이런 요지의 이야기였다.
나랑 차 마시며 길게 자신의 신세한탄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단다. 아닌가???
가급적 나랑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지 않겠다는 이야기인가...
여하튼 좋다.
그러도록 하자!
근데 시간이 좀 지나니 부아가 났다.
좋아라 차 마시며 내가 말할 틈도 안 주고 따발총 쏘듯 자신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하는 것을 공감이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하는 상황 속에서
(지금 생각해보니 안 가는 이야기가 훨씬 많았네!)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떡이고 나름 노력을 했는데
이 무슨 어이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정신이 약간 후덜덜해졌다.
이제 기분 좋게 차 한잔 하자는 말도 못 하게 생겼다.
나는 이제 출근해서 마시는 차 한잔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것인가...
이 문제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했다.
다음일은 점심을 먹고 난 후 일어났다.
친한 후배와 점심을 먹고
너무 오래 수다를 떨어 커피 마실 시간이 없어서
커피를 사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침에도 커피를 한잔 마셔서 나눠 먹을 누군가를 찾고 있는데 동갑내기인 직원이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그와는 동갑이라 편해서 평소 농담도 많이 주고 받던 사이이고 점심시간이 끝나가서 깨어있겠거니 하고 의자 뒷부분을 살짝 젖히며
"커피 마시자" 했다.
근데(ㅋ) 의자가 생각보다 성능이 좋았다.
살짝 젖혔는데 뒤로 출렁 넘어왔다.
갑자기
"아 씨!" 이러며 울그락 불그락 화를 내는데
까딱하면 욕이라도 퍼부을 기세였다.
커피를 들고 서서 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아... 난 커피 나눠 마시려고..."
그는 여전히 폭발 직전의 표정을 짓고 '아 씨'를
반복하며 말했다.
"남자였으면 한대 팼다. 가!"
그래도 물러서면 안 될 것 같았다.
"미안.. 커피 마셔"
(내가 미쳤나 왜 이렇게 참을성이 갑이야!)
컵에 커피를 따라서 주려고 했더니
진짜로 안 먹는다고 해서 옆에 다른 직원을 주니
감사하다며 받는다.
(내가 감사하다 내가 감사해...)
커피를 주고 내 자리로 오는데
오만가지 기분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고 갔다.
이 당혹스러움을 어찌 수습하지...
'더럽고 치사한 인간 너랑 다시는 장난, 농담 없다
아주 공적인 관계로만 대할 거야. 후회해도 소용없어!’ 이랬다가
'진짜 자고 있어서 엄청 놀래서 그랬겠지. 쫌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저렇게밖에 못하나...
커피 나눠주려고 한 좋은 의도인데' 이러다가
계속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오후에 몇 명이서 회의가 있었다
제정신을 차렸는지 그는 내게 계속 눈을 맞추며 내가 삐지지 않았는지 살피며 평소보다 더 친절하게 굴었다.
심지어는 상사에게 나 때문에 갈뻔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사건(?)의 끝부분을 지켜봤던 상사는
"아주 보내버렸어야 하는데!" 하며 내게 찡끗했다.
그래서
그냥 용서했다.
잊어요.
우리 그냥 잊기로 해요.
술 취한 밤 고백했던 모든 일들을 잊어요...
갑자기 출처가 뒤엉킨 이 노래가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