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과 연두의 세상

글을 쓰다 노무현 그가 떠올랐다.

by 정안

코로나가 끝날 듯 끝날 듯 길어지면서,

가끔씩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볍게 한잔 하던 일도 멈추고, 내 삶의 가장 좋은 희망인 훌쩍 떠나는 일도 할 수가 없다. 영화관에 가 본 지도 오래다. 발바닥은 굼실거리고 신선한 공기와 초록의 부족으로 생기를 잃었다. 세상 재미가 없다.


그래도 견뎌내야 한다.

숨 쉴 구멍을 찾아야 한다.


바이러스와 싸우며 헌신하는 수많은 의료진과 정부와 아픈 분들을 생각하면 편안한 소리다. 그래서 초록과 연두가 가득한 사진을 보며 잠깐이나마 위로받고 편한 숨 한번 쉬기로 했다.



인간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연은 꽃 피우고 새싹을 낸다.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자라성한 터널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었을까. 모든 존재들은 나름의 고통과 아픔을 안고 이겨내고 현재가 되었을 것이다. 문득, 브레히트의 시 "나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봄을 좋아한다.

초록과 연두의 세상 속을 배낭을 멘 가벼운 차림으로 걸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우리가 살면서 바라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룰 수 없는 대단한 어떤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흐린 날의 초록은 더 진하다.

비라도 내린다면가에 서서 차를 한잔 마시며 이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



가끔은 아무도 안 만나고 카톡도 안 하고 세상 소식도 끊고 이런 초록의 세상에 갇혀 있고 싶다.



수국이 피었다. 고등학교 때 가끔 쪽지를 보내던 친구가 있었다. "수국과 천사아이"라고 쓴 엽서, 수국을 보면 그 사이 어딘가 작은 천사아이가 숨어 있을것 같다. 그 엽서 내 비밀상자를 뒤져보면 있을 듯도 하다.



산과의 조화를 생각한 집, 우리는 이렇게 자연 속에서 그 일부분으로 살고 있다.




여기까지 글을 쓰다,

이렇게 아름다운 초록의 세상 속을 홀로 떠나신 분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 11년 전 오늘


노무현 대통령.

그가 있어 나는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도도한 흐름처럼 내게 왔던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무수히 만난 그.


"(중략)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오랫동안 스마트폰에 간직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 사진. 얼마나 기뻤던 날이었던가...



바람이 불면 당신이 오신 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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