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못 간 버킹검 궁전과 런던아이, 웨스트민스터 성당, 테이트 모던의 겉모습만이라도 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우리가 여행을 간 7월 초 영국은 해가 지는 시간이 밤 10시 정도였다. 그래서 하루가 길었고 저녁에 돌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시간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인데 대낮처럼 환하다.
메트로 피카딜리 라인 "그린파크역"에 내리니 그린파크 맞다.
초록의 넓은 공원에서 오래된 나무 사이로 한가롭게 앉아 있거나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늘을 향해 목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올려다보아야 다 볼 수 있는 나무들이 공원에 가득하다.
공원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복지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공원을 산책하며 운동을 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이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으며 부모는 잠시의 휴식이 가능하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인 공원은 커다란 위안이다.
버킹검 궁전의 화려한 정문
근위병 교대식은 오전 11시 30분에 있다고 한다. 저녁에 간 우리는 아름다운 궁전과 문을 지키는 붉은 복장의 근위병 몇몇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웨스트 민스터 성당을 가고자 했으나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가고만 우리들... 그래도 아름다웠다.
서서히 지기 시작한 해의 그림자가 웨스트 민스터 사원의 벽면에 비치며 고즈넉해진 시간이었다.
어제 본 빅벤에도 해가 지고 있었다.
도시는 조금씩 어두움이 내리고 해 질 녘 여행지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템즈 강가 런던아이
런던아이를 타고 느긋하게 런던 시내를 보고 싶었는데 입장시간이 오후 5시까지라 타지 못했다.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웨스트 민스터 다리에서 어둠이 서서히 내려오는 런던아이를 바라보는 이 순간
삶은 저물녘 강물처럼 아름답고 가슴 설레게 흘러간다.
10시가 넘은 시간 야간 이층 버스를 타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전날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 고생했던 기억으로 우리는 이층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해머스미스 역으로 가기로 했다. 희망고문을 하며 다음 정류장이겠지... 아니네... 그럼 다음... 이러면서 버스 정류장 간판을 하나하나 해석하며 1시간 가까이 걸어서 정류장을 찾았다. 다름 아닌 트라팔가 광장 앞 정류장에서 타면 됐던 거였다.
물론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도 여행자 거나 잘 몰랐고 알려준 사람도 있었는데 우리가 제대로 못 알아 들었다.
얼마간 기다리니 빨간 이층 버스가 왔다.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날뻔했다. 야밤의 이층 버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가장 좋은 자리인 이층 앞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런던의 야경과 밤거리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달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영혼을 탈출시켰다. 고난뒤에 찾아오는 편안함은 더욱 달콤하다. 행복감이 사정없이 밀려왔다.
구글 지도만 믿고 다녔던 런던 시내 여행은 헤매임의 연속이었지만,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잊지 않았던 것은 이 모든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자는 다짐과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