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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Jun 27. 2024

에덴 프로젝트 3

영국 깡시골에서 BTS 팬을 만났다.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바로 옆 '지중해 온실'로 갔다.


지중해 온실(Mediterranean Biome)은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 지역에 살고 있는 식물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유럽 사람들의 생활필수품인 포도, 올리브, 허브 등의 경작 과정도 볼 수 있다.


지중해성 기후는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온난다습한 것이 특징으로 지중해 해안 지역과 캘리포니아, 호주 남서부, 남아프리카 등이 포함된다.

 


적당한 기온이라 걷기 좋았다. 그냥 가까운 식물원 산책 나온 기분으로 걸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면 훨씬 풍부한 내용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웠다.

영어를 하나하나 해석하기도 힘들어서 그냥 짐작으로 보면서 다녔다. 하다못해 오디오 서비스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라는 다양한 꽃과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 신화를 묘사한 작품도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짙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정원의 풍경이 바로 에덴이었다.


아직 피지 않은 라벤더의 작은 꽃망울들을 보니 옥스퍼드 '워 메모리얼 파크'에 활짝 피었던 라벤더가 생각났다.


꽃 피지 않아도 이렇게 모여 있으니 독특한 패턴을 이루며 아름다웠다.



저절로 자라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노고가 있음을 알게 해 준 안내문이다.


'변화하는 기후를 위한 식물들

 가장자리의 정원 가꾸기

 불가능할 정도로 가파른 경사를 오른다. 햇볕에 구워졌다. 목마르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다. 흙도 없다.

 그리고 역경을 당신에게 유리하게 바꾸세요

 항상 성장할 수 있는 멋진 것을 만들어내는 어떤 사람이 있어요.'


어설픈 번역이지만 그림과 함께 보니 어떤 의미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가파르고 비탈진 경사를 줄에 매달려 많은 모종을 들고 하나하나 심으면서 내려온다. 목이 마르거나 배고프다고 중간에 내려올 수도 없다.


알고 나니 나무하나 풀하나 무심한 언덕조차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에덴 프로젝트를 다 둘러보고 나가는 길에 만난 숲 속의 사람.


길을 걷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무심히 돌아보니 나무숲에 그녀가 있었다.


우리를 고즈넉하게 바라본다. 무엇이 그리 바빠서 서두르냐는 듯이. 쉬었다 가라는 듯이...


그녀의 머리며 몸에는 초록의 풀이 자라고 있다. 태초 에덴에 살던 인간의 습이라는 의미일까?

이 설치 미술의 의미를 알고 싶었는데 안내문에는 '올라가지 말라'고만되어 있다.




에덴 프로젝트는 자연의 원래 모습을 보여 주며 어떻게 파괴되었고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에덴, 도대체 왜 에덴인가.


인간에게 주어졌던 에덴을 인간의 탐욕으로 스스로 버렸지만 에덴의 옛 모습을 되살려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에덴 프로젝트인 것이다. 


에덴 프로젝트라는 공간을 보며 미래를 위한 누군가의 수고와 노력이 이렇게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들이 있어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것 같지만 우리는 수많은 타인들의 선의와 배려에 힘입어 살고 있다.


에덴 프로젝트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뉴퀘이 공항 맞은편 목초지와 마을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다음날 새벽에 공항 가는 길을 헤매지 않으려고 뉴퀘이 공항까지 미리 걸어가 봤다. 사전답사라고나 할까.


목초지 사이로 갔다가 길이 없어서 당황하면서 겨우 빠져나왔다.


영국의 목초지는 우리나라처럼 논길이나 밭길이 없어서 그 사이를 걸어 다닐 수가 없다. 정겨운 사잇길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름다운 목초지 사이를 걸어보고 싶기도 했는데.


농사의 기계화로 사람이 걸어 다닐 필요가 없어서 길을 만들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숙소에서 공항까지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는지 인도처럼 생긴 곳은 온통 풀밭이었다. 차가 다니는 큰길옆 좁은 풀밭을 걸어 공항까지 갔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할 때 최대한 공항 가까운 곳에 예약을 했다. 숙소에서 공항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다.



콘월 뉴퀘이 공항은 아주 작은 공항이다. 


공항을 둘러보고 매점에서 간단한 간식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1층이 펍이라서 저녁을 먹기 위해 내려갔더니 맥주를 마시던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관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영국에서는 아주 시골에 속하는 이곳에 동양인 여행자들이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영국 여행을 다니면서 런던과 에든버러 빼고는 동양인을 거의 보지 못했다.


주인장이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서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자 탄성을 지르며 BTS 이야기를 한다


그때는 주인장이 BTS 팬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BTS 영국 콘서트가 대성황을 이룬 얼마 후 우리가 여행을 간 것이었다. 어쩐지 영국여행을 하면서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호의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다 BTS덕분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노래도 잘 알지 못하는 BTS 덕을 보다니 갑자기 일곱 소년들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펍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한잔 하며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는데 영어가 짧은 우리는 용기가 없어 거기에 응해주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짧은 영어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오니 마을의 드넓은 목초지 위로 해가 진다.


영국의 깡시골에서 보는 일몰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서서히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낯선 땅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슬픔 같은 것이 밀려왔다.


나에게는 지금 여기가 에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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