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웨이벌리 역에서 런던 킹스 크로스역까지 기차로 4시간 20분, 킹스 크로스역에서 히드로 공항까지는 지하철로 1시간이다.
에든버러 웨이벌리 (Edinburgh Waverley) 기차역
토요일이라 역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기차 승강장을 확인하고 시간이 좀 남아서 기차에서 먹을 것을 샀다. 점심을 못 먹어서 충분히 샀다.
우리가 예매한 기차는 1등석이었다. 기차요금은 1명당 15만 원... 아무리 4시간이 걸린다 해도 기차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예약할 때는 안들다가 기차를 타면서 갑자기 들었다.
기차를 탔는데 각종 샌드위치, 과일, 차, 맥주가 계속 제공되고 돈도 받지 않았다. 이게 웬일이야 하며 횡재한 기분으로 열심히 먹었다. 알고 보니 1등석에는 식음료가 무제한 제공되는 시스템이었고 승무원들이 종류를 바꿔가며 간식차를 끌고 와서 친절하게도 먹기를 권했다.
비싼 기차요금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차에서 주는 간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우리가 샀던 음식은 거의 먹지를 못했다. 기차 예약 후 쓰여있던 안내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결과였다.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가는 기차에서의 4시간은 또 다른 여행이었다. 언제 다시 볼 지 모를 풍경들과 함께 9일 동안 경험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좌충우돌 헤매고 감동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속에 있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
킹스 크로스역에 도착했는데 시간계산을 잘못했는지 촉박해졌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킹스 크로스역을 여유 있게 보고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가기 위해 벽을 뚫고 들어가는 9와 3/4 승강장 앞에서 꼭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오이스터 카드 충전금액도 남아 있어서 지하철을 타려고 한 건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원통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기로 했다.
킹스 크로스역이 교통의 중심지 중 하나인지 사람이 무척 많았다. 택시를 기다리는 긴 줄 맨 끝에 서서 불안 불안했는데 다행히 택시가 많아 적당한 시간에 택시를 탈 수 있었다.
택시는 작아 보였지만 막상 타보니 지붕이 높고 넓어서 우리들의 캐리어를 충분히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말이라 그런지 도로가 많이 막혔다.
히드로 공항에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 겨우 도착했다. 택시요금은 15만 원... 그래도 비행기를 놓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도착했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 우리는 넓은 히드로 공항을 달렸다.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탑승구까지 갈 수 있었다.(이렇게 달리면서 내심으로는 비행기를 놓치면 더 놀다가도 되지않을까 하는 사악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런데...
비행기가 3시간 연착되었다. 털썩...
연착된 비행기와 다음 비행기의 승객들이 다 같이 모여 있으니 탑승구는 바닥 조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말할 수 없이 복잡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묘한 감동이 있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누구도 의도했을 리 없는 그런 풍경이.
다양한 피부색과 다양한 전통 옷차림, 아기부터 할머니까지 축제가 벌어진 듯 모두 모였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싸준 음식을 바닥에 앉아 낯선 이들과 나눠먹는 사람부터 배낭을 베고 누워있는 사람, 아이들은 신나서 뛰고 어른들은 옆사람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우리도 인도 사람이 건네준 집에서 구운 과자를 먹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코끝이 찡하게 아름다웠다.
히드로 공항이 순간 글로벌 해방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돌아왔다. 다시 떠나기 위해.
길면서도 짧고 충만하면서도 아쉬운 9일간의 영국여행을 이렇게 마무리하였다.
계획을 짜면서 한 번의 여행을 했고
그곳에 가서 또 한 번의 여행을 했으며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여행을 한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잠깐의 상태가 있다.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까운 책도 있다. 이런 느낌으로 영국 곳곳을 걸었다.
영국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친절함과 걸었던 길과 스쳤던 풍경과 하늘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것들은 앞으로 내 삶에 작고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리라. 나는 느낄 수 있다. 그 바람을.
세상이 더 따뜻해지고 우리들의 한걸음이 서로의 평안이 되는 좋은 나라를 희망하면서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