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가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공존하는 곳
숙소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밖으로 나왔다. 마라케시의 아침 거리는 조용했다. 어제저녁의 활기는 가라앉고 거리 곳곳은 물청소가 되어 있었다.
쿠투비아 모스크에 가기 위해 걸어가는데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소녀가 우리를 보더니 연예인을 본 듯 달려와서 코리안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사진을 같이 찍어도 되냐고 해서 우리는 당연히 된다고 하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소녀는 벤치에 앉아 있던 가족에게로 달려가서 환호성을 지른다. 모로코 어린 소녀들에게 한국은 특별한 의미인 것 같다. 비슷한 경험을 두 번 정도 했다.
쿠투비아 모스크는 아침 햇살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미나렛이 아름다운 곳이다. 모스크 내부는 무슬림만 입장할 수 있어서 외관만 보았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모스크는 밝고 성스러운 느낌이었다. 광장 쪽으로 나오는데 거대한 모스크탑 하단부를 복원하는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십 분 정도 걸어서 사아드 왕릉에 도착했다. 사아드 왕릉은 16세기 마라케시를 통치했던 사아드 왕조의 화려한 영광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이곳은 수백 년간 잊혔다가 1917년 항공사진을 통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사아드 왕조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아흐마드 알 만수르 왕과 그의 가족, 신하들이 잠들어 있다. 사아드 왕조를 무너뜨린 알라위 왕조의 물라이 이스마일 왕이 사아드 왕조의 흔적을 지우려 했으나, 성스러운 묘지를 파괴하는 것이 두려워 주위를 높은 담을 둘러쳐 봉인했다. 덕분에 역설적으로 현대까지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서 아침시간이었지만 줄이 길었다. 특히 열두 기둥의 방 앞에는 더 긴 줄이 있었다. 열두 기둥의 방은 사아드 왕릉의 가장 중심이다. 이탈리아산 대리석 기둥과 정교하게 깎인 삼나무 천장, 기하학적인 타일 장식이 아랍-안달루시아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슬람문화 특유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타일 장식이 은은하면서도 조용히 화려해서 인상적이었다.
정원 묘지에는 왕족뿐만 아니라 군인과 하인들의 무덤도 함께 있다. 무덤마다 화려한 모자이크 타일로 만든 납작한 돌로 덮여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무덤을 보는데 묘하게 고요해서 서늘했다. 마라케시는 온갖 소음과 자동차 소리, 향신료 냄새로 가득한 활기차고 혼란 가득한 도시이다. 그런데 이곳은 모든 소음이 차단된 듯 너무도 고요했다. 엘 바디 궁전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니 다시 소음과 활기가 가득 찬 마라케시가 나타났다.
엘 바디 궁전은 사아드 왕릉을 만든 아흐마드 알 만수르 왕이 16세기말에 세운 건축물로, 당대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이라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현재는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 대신 거대한 붉은 흙벽과 황량한 잔해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더 신비롭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엘 바디(El Badi)'는 아랍어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당시 왕은 이탈리아의 대리석을 설탕과 맞바꾸어 들여왔고, 금, 상아, 터키석 등으로 궁전을 도배했다. 그러나 사아드 왕조가 멸망한 후, 알라위 왕조의 물라이 이스마일 왕이 새로운 수도를 짓기 위해 이곳의 모든 보석과 대리석을 뜯어갔다. 12년 동안이나 해체 작업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둘러보고 나서 바히아 궁전으로 향했다.
바히아 궁전은 인기가 많은 장소였다. 입구 바깥까지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줄을 서 있는데 오토바이, 자동차,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내는 소리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바히아 궁전 안으로 들어가서 신기하게도 이 모든 소리가 멈췄다. 마라케시는 전통과 현대가 명확한 경계를 가지고 공존하는 곳이었다.
바히아 궁전은 19세기말 마라케시에 세워진 궁전으로, 모로코 전통 건축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마라케시의 보석' 같은 곳이다.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나 당시 상류층의 화려한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바히아'는 아랍어로 '아름다움'을 뜻한다. 당시 대재상이었던 바 아흐메드(Ba Ahmed)가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부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고의 장인들이 14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궁전 전체가 단층으로 되어 있다. 이는 당시 비만이었던 재상 바 아흐메드가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바닥 전체가 이탈리아산 대리석으로 덮인 거대한 광장인 명예의 뜰은 화려한 노란색과 파란색 조각 타일이 어우러진 회랑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어 아름다웠다. 또한, 아틀라스 산맥의 삼나무를 깎아 만든 천장에는 천연 안료로 그린 세밀한 꽃무늬와 기하학 문양이 가득했다. 방마다 천장 디자인이 다 달랐다. 방에는 관광객들이 가득 차 있어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재상의 4명의 부인과 24명의 후궁들이 머물던 공간인 하렘의 각 방은 정교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조각된 치장벽토로 꾸며져 있어 당시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궁전 곳곳에 위치한 안뜰에는 오렌지 나무, 바나나 나무, 재스민이 심어져 있어 은은한 향기와 함께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궁전 내부에서는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전시도 있었다. 바히아 궁전은 엘 바디 궁전의 웅장함과는 다른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