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우도 올레

초록의 보리가 가득한 우도

by 정안

올레 1-1코스, 우도를 걷는 날이다.

함께 걷기를 신청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평소보다 일찍 숙소를 나섰다. 숙소 조식은 그림의 떡이다. 아침 8시 50분이라는 기이한 조식 시간 덕분에 혼자 걸었던 날 한번 먹었다. 조금 일찍 줄 수 없냐고 했더니 일일이 맞춰줄 수 없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성산항에 도착했다. 승선 신고서와 신분증을 확인받고 우도 왕복표를 받았다. 함께 걷기 깃발아래 모두 모였다.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올레여행자센터에 있을 때 같이 9코스를 걸었던 사람이었다. 오늘도 누군가를 길에서 다시 만났다.


배를 타고 잠깐 있었는데 도착했다고 했다. 10분도 안 걸렸다. 우도 천진항에서 내렸다. 토요일이라 관광객이 많았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았고 중국어가 많이 들렸다. 나를 아는 체했던 사람이 말했다. 우도는 중국인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고 싫다고. 나는 다 같은 사람인데요. 라고 대답했다. 중국인이든 누구든 우리나라를 보려고 찾아온 손님이다. 나는 그들이 고맙고 소중하다. 내가 남의 나라에 갔을 때 받았던 환대를 기억한다. 그들도 그렇게 환대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화창한 날씨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을길로 들어섰는데 돌담아래 보리가 훌쩍 자라서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보리밭에 부는 바람을 보면서 켄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그 후 발발한 내전의 시기에 영국군에 맞서 함께 싸우던 형제가 독립방식에 대한 노선의 차이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다.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아름다운 아일랜드의 풍경 속, 그 평화로운 보리밭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독립은 깃발을 바꾸는 행위가 아니라, 지배의 문법 자체를 파괴하는 과정이다."


우도의 3월 말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계절이었다. 초록의 보리밭에 함께 피어있는 노란 유채꽃도 인상적이었고 돌담을 사이에 두고 초록의 보리밭과 노란 유채가 한가득 피어있는 풍경은 그림 같았다. 바다 너머로 어제 걸었던 지미봉이 보였다. 한라산도 완만한 실루엣을 길게 늘이며 머나먼 안갯속에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산호해수욕장을 지나가는데 흰색모래와 쪽빛바다에 반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도를 도는 길에는 다양한 탈것들이 지나갔다. 사람들은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영화의 한 장면같이 멋있게 지나갔다.


하고수동 해수욕장 근처에서 해물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싱싱한 해산물이 냄비 가득 나와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웠다. 중간 스탬프를 찍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니 햇살이 더 뜨거워졌다. 더우니까 걷는 게 힘들었다. 4월은 아무리 꽃이 예뻐도 더워서 못 걸을 것 같다. 걷기에는 2월~3월 중순이 적당하다.


우도는 평지만 걷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우도봉을 올라가는 것이 남아 있었다. 오름 올라가는 것이 없으면 올레가 아니지... 하면서 비장의 무기! 스틱을 꺼냈다. 우도봉 정상에 올라가니 우도 등대와 성산일출봉, 한라산, 지미봉이 한눈에 보였다. 절벽과 바위와 바다가 잘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상에서 쉬고 있는데 말 한마디 없이 걷기만 하던 청년이 초코바를 나눠줬다. 올레길은 그런 곳이었다. 말없이 뭔가를 나누고 홀연히 헤어지는 사람들이 함께 걷는 곳.


우도봉을 내려오는데 넓은 들판에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천진항에서 다 같이 마무리 사진을 찍고 각자 배를 탔다. 내 기억 속 우도는 덥고 힘들었던 곳이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왔다가 너무 더워서 고생만 했던 일과 지인들과 왔을 때도 더워서 슬슬 걸어다니가 밥만 먹고 갔던 기억. 하지만 우도를 속속들이 볼 수 있는 올레길을 걸으면서 우도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알았다.


올레길은 이제 나에게 언제든 훌쩍 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번 한 달 걷기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도 어느 날 문득 생각나면 올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곳이 생겼다. 삶의 위안이 되는 걸을 수 있는 길, 올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엄마가 절에 가게 되면 좋은 기운이 있는 제주에서 염주 하나 사 오라고 한 말이 생각나 며칠 전 빨래방에 가다 본 '금정사'라는 절에 갔다. 행사가 있는지 물품들이 절 마당에 나와 있고 사람들도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스님 네 분이 바깥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희한하게 네 분이 다 형제처럼 비슷했다. 한 덩치 하는 인상 좋은 젊은 스님들이었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고 있던 스님이 내가 법당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몸짓으로 묻자 참배 가능하다고 하셨다.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며 절을 하는데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법당에서 나와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염주를 살 수 있는지 묻자 백팔 염주는 없다고 하시면서 팔찌 모양의 염주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감사를 드리고 소중히 들고 왔다. 느낌이 좋은 절이었다.


한번 가봐야지 했던 해녀 박물관에 들어갔다. 제주를 지탱해 온 해녀들의 강인한 삶과 어려움이 절절이 느껴지는 박물관이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많았다. 외국인 관람객도 많았는데 젊은 여성들은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제주 해녀 문화는 그 공동체적 가치와 독특한 문화를 인정받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인정받은 내용은 여성이 가계의 주역으로서 경제적 주도권을 가졌던 독특한 사회적 지위와 '불턱(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불을 쬐며 쉬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과 배려의 문화. 특히 '할머니 바당'처럼 노약자를 배려하는 구역 설정 등의 공동체 문화, 산소마스크 등 기계 장치 없이 자신의 숨에만 의존하는 자연 친화적인 채취 방식이 지속가능한 어업이라는 것이었다. 해녀들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으며 박물관을 나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맛집이라는 조림집을 찾아갔는데 조림이 2명 이상만 가능했다. 다른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편의점에 가려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피자+파스타집을 보았다. 숙소에 드나들면서 보았지만 관심이 없었다. 밥종류를 먹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어 들어갔다. 리조또가 있는지 물었더니 밥과 야채, 치즈를 넣고 오븐에 조리한 음식을 추천해 줬다.


앉아서 보니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야트막한 언덕 쪽 전체에 원목문 전체창을 배치해서 작은 숲이 식당을 감싸도록 했다. 그래서 식당에 앉아 있으면 숲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밖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깔끔한 맛의 수제 피클과 따끈한 치즈 야채 밥이 너무 맛있었다.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분위기를 즐겼다. 누가 제주까지 와서 피자와 파스타를 먹을까 생각했는데 포장 손님을 비롯해 손님이 좀 있었다. 잘 먹었다고 음식이 아주 맛있다고 인사를 했더니 식당처럼 분위기 있는 주인장이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제주에 머물 시간이 3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에 도착한 첫날이라고 생각하자. 그랬더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