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죽은 반려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아랑아, 문밖으로 나가자!

by Sabina

새벽까지 수험생을 가르치는 직업과 아들이 군대에 가 있는 나이와 남편과 별거 중이라는 기가 막힌 조합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 자유 부인을 의미했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은 아침에 조금만 더 자고 싶다고 했고, 늘 똑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는 남편이 아침은 꼭 먹고 나가는 사람이라 새벽 알람이 익숙하다고 했다. 지금은 그런 말이 푸념이 아니라 질투심을 자극하는 말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늘어지게 자고 싶은데 아랑이 때문에 잘 수가 없네~

KakaoTalk_20210923_223834762.jpg 12살 아랑이

아랑이는 아주 깊은 사랑을 주겠노라고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조합해서 만든 나의 반려견이다. 털을 정리하지 않으면 사자머리처럼 밖으로 퍼지는 나의 반려견은 시추이다. 이 견종은 작은 몸이, 기차와 같은 형상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놀라운 동작으로 유명하다. 바람이 불면 사자머리처럼 털이 휘날리고 코 찡긋을 하지 않았는데도 코는 너무 납작하다. 먼지떨이 같은 꼬리는 털을 밀어주는 애견 미용사에 의해 맨살이 다 드러나야 했고, 무성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빠르고도 귀여운 몸짓은 도도하고 우아한 귀족의 자태와 같다.


외모를 나열했으니 이제 감정선을 공유해 보자. 비가 오기 전에 육감적으로 알아차린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는 그 순간에 아랑이는 화장실 변기 뒤에 숨어 버린다. 두려움이라고 하자. 비가 오는 날은 육포를 두개로 유혹해도 먹지 않는다. 외로움이라고 하자. 드라이브할 때마다 운전석 내 무릎 위에서 창문을 열어달라고 끙끙대면 나는 차 창문을 열고 아랑이에게 다양한 세상의 색을 보여준다 색맹인데도 말이다. 낭만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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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풍부한 편이어서 배를 자주 뒤집어 까고 목표하는 육포를 차지하고자 애절한 눈빛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에, 자존심이 매우 강한 편이라 주인이 난폭해지거나 화를 내면 이에 대한 반응이 매우 빠르다. 빠르다는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꾸중을 하면 다리 밑에서 자던 아랑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서열 2위 나의 엄마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자고 있더라. 더 나아가, 남편과 살았을 때 부부 싸움을 하게 되면 아랑이는 이미 안 보인다. 침대 밑이나 식탁 밑으로 들어가 싸우지 않을 테니 나오라고 해도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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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기 때문 아닐까 반문하겠지만, 자신의 영역을 침해받고 싶지 않다는 것을 3년쯤 키우고 알았다. 다른 견종을 보고 우쭈쭈 해주면 내 무릎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고, 육포를 주고 그루밍을 해주고 품 안에서 자식처럼 뽀뽀를 해주다가 시선을 돌리면 영락없이 품에서 탈출하고, 늦은 귀가로 아랑이 애간장을 다 태워 문 앞까지 한 걸음에 달려오게 했는데도, 단 한 번, 딱 단 한 번 뽀뽀에 응답하고는 다시 다른 공간으로 간다. 아랑이는 자신의 공간이 필요하고, 지나친 애정 표현보다 세 발짝 거리두기로 관리해주는 그만큼이 필요한 자존심이 강한 견종이었던 것이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새벽 두시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남편과 별거를 하면서 아들과 아픈 노모를 위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아들은 군대에 있고 식사는 알아서 드시는 엄마 그래서 늦은 오전까지 자도 되는 암묵적 자유부인이었는데도 '아랑이 때문에 늘어지게 잘 수가 없다'며 현관문을 열어두고 다시 침대에서 10분 정도 선잠을 자야 했다. 왜 그래야 했을까. 아랑이를 입양하고 3개월까지 여기저기 배변 실수를 하는 그럴 수 있는 반려견의 귀여운 반항 앞에 엄마는 신문지를 둘둘 말아서 실수하는 아랑이를 인정사정없이 때렸다. 똥 오줌 못 가리는 동물을 때리는 엄마를 보고 장애인으로 만들어진 어린 시절의 내가 목발을 거부하고 네발로 기어 다녔을 때 맞았던 그 몽둥이가 되살아났고, 내가 알아서 훈육한다는 거친 목소리를 냈을 때 아랑이는 싸운다고 인지했으리라. 그때부터 아랑이는 오줌을 참았다. 급기야 병원에서 받은 처방은 밖에다 풀어놓고 볼일을 보게 하라고, 3개월 아랑이는 12살이 될 때까지 그렇게 현관문을 열어놔야 볼일을 보고 10분 만에 다시 들어왔다. 그것도 장애인 엄마가 산책을 시켜줄 수 없는 걸 아는지 혼자 배회하고 혼자 볼일을 보고 당당하게 엉덩이를 닦아달라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럴 때마다 업어서 키우지 못하고 안아서 키워야 했던 아들처럼 목줄을 매고 산책을 못시키는 나를 이해하는 아랑이는 나에게는 아들처럼 귀한 반려견이었다. 그런데 그 아랑이가 죽었다.


볼일을 보다가 미처 해결하지 못한 진행 중이던 볼일이라서 후진하던 차를 피하지 못했던 아랑이는 후진하던 그 차에 치여 죽었다. 게다가 그 묵직한 개를 치고도 그냥 도망 가 버린 그 차는 묵직한 개를 한번 더 타이어로 으깨고 도망갔다. 아랑이는 창자가 쏟아진 채로 죽었다. 10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그날, 나는 예감했고 불길했다. 죽은 아랑이를 보고 오열하는 내게 누군가는 그랬다. '아이고 착하기도 하지, 장애인 주인 힘들까 한 번에 죽었네... 하반신 마비라도 됐어 봐...' 그날 나는 쏟아진 창자를 손으로 다 담아내며 길바닥에서 10분이 넘게 울었다. 12살 아랑이의 죽음이 너무 억울해서 울었고, 주인을 위해 한 번에 죽었다는 이웃의 말에 공감해서 울었고, 분신처럼 나를 투영했던 또 다른 내가 죽어서 울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할 말을 조용히 입술 안에 가두는 버릇이 생겼다. 비가 오고 앙상한 나뭇가지 관절마다 물방울이 반짝이면 누구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있는 오너먼트를 떠올린다지. 나는 아랑이가 떠올랐다. 가지 위에 반짝이는 물방울을 수십 개 정도 세야 내 눈에서 눈물이 차올라서 입술 안에 머물렀던 말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친구나 가족과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역에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를 배웅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가까운 사람의 어깨를 붙잡고서 그가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고, 머잖아 그로부터 소식을 듣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것은 인간 경험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작별을 고하는 법은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친구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극성스럽게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집착하게 된다.-모스크바의 신사/에이모 토올스 장편소설 중에서

아랑이 물건을 꽤 오래 간직했다. 표면의 먼지를 떨고 광을 내며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기며 그 근처에서 아이들이 너무 거칠게 놀면 나무라기도 했다.

얼마나 흘렀나. 이사를 세 번을 더 했고 창문 턱에 놓아둔 솔방울이 하루하루 비늘을 털어내며 그 사이 많은 날들이 나를 사람으로 벌레로 식물로 살게 한 그 시간이 흘러 날짜변경선이 덤불처럼 얽혀 감각조차 사라진 날, 나는 아랑이를 털어냈다. 이제 나의 창문 턱에는 말라야 할 하얀 운동화가 있고, 이제 나는 강아지 그림을 그려도 아랑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직도 아랑이가 머물다 간 나의 낡은 사진첩은 그대로다. 수천 장의 아랑이 사진을 외면하고 싶은데 다시 열어보고 하늘 한번 바라보고 멍을 때리면 자꾸 한숨이 날아와 내 이마에 앉는다. 직면해야 했다. 아랑이 사진을 봐도 눈물이 차오르지 않도록 강아지에게 내 모습을 투영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물건은 물건일 뿐이고 동물은 동물일 뿐이라고 명료화해야 했다.

마스크 넘어 숨은 우울을 읽어내고 위로하는 상담자가 내 우울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내 마스크를 단단히 매고 문밖으로 나갔다. 다짐하고 다짐했는데도 어김없이 산책하는 강아지를 만나고 어김없이 아랑이를 투영한 날, 어쩐다냐. 나에게 그림을 배우는 수강생이 강아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마음이 무거운 그날, 그녀에게 두터운 유화 물감으로 강아지 털을 하나하나 살려주면서 깊은 호흡을 내쉬며 다짐했다. '오늘은 무얼 할까, 세찬비는 어제의 일이고 거센 강물은 오늘의 일이 되는 것처럼 죽고 사는 건 순리야... 나는 순간을 살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돼... 오늘은 무얼 할까,' 또 다른 계획을 세워야 사는, 나의 그림이 살아나고 있다. 아랑이가 부활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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