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다는 것에 대하여
북유럽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때는 밤이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는 백야의 시기라고 한다. 이 문장을 깊이 성찰하면 찬란한 햇빛만이 인간심리를 치유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둡고 나쁜 감정, 부정적인 심리를 어두운 밤이라고 표현한다면 햇빛이 찬란한 낮만큼 밤도 중요하다고 사유할 수 있다. 그 어둠의 시기, 불이 꺼진 깜깜한 밤을 좋아하는 내담자가 있었다. 낮보다 밤을 좋아한다고 하면 고독을 좋아하거나, 활동성이 없는 사람으로 일축하기 쉽다.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2년 전, 1층 카페를 지나 구석진 계단을 올라가야 마주하는 은밀한 곳에서 마음의 비밀을 다 들어주는 상담실을 운영했을 때 벚꽃 원피스를 입고왔던 누가봐도 예뻐서 지나가다 다시한번 고개를 돌려 다시 보고싶은 그녀는 독특한 고민을 가지고 왔다.
선생님 저는 섹스는 할 수 있는데 키스는 할 수 없어요
이 상담 기록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jisu6677/60
이렇게 우리는 한 사람의 언어를 이해할 때 다층적 깊이감이 필요하다.
일을 하지 않았던 전남편은 그리 날씬하지도 않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새벽 두시에나 일이 끝나는 나를 기다렸다가 나의 살을 탐닉하고 그렇게 자고 싶어했다.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돈을 벌지 못하는 무능력이 육체의 동물성 한계에 투영되기도 해서 신비로운 성행위를 거부하기도 했고, 탐닉의 정도가 심해서 한 여자의 몸을 구석구석 달래고 뜨거운 용암을 잘도 분출하게 하는 기가 막힌 테크닉에 보지않고 듣기만 했던 '변강쇠'의 이미지도 떠올렸고, 새벽에 잠든 입시생 아들이 깰까 소리죽이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하는 행위에 숨막히기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불을 끄고 빛이 새어들어오지 않도록 장치를 하는 그 은밀함의 원인이 궁금했다. 전남편의 '살에 대한 예찬'은 아래 링크에 있다.
https://cafe.naver.com/healingspacesabina/1415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 낮시간에 겨우 학생들 차 운행 정도를 하고, 밀린 설거지를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무능력의 손가락질을 피해갔던 긴시간, 전남편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언어의 깊이가 밀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이 스무살이 될 때까지 부부의 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독서 클럽에서 만났다. 이미 세번의 연애를 실패하고 더이상 눈이 멀지 않겠다고,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선포했던 나는 가임기 여인처럼 봉우리가 예쁘게 서고, 볼이 발그스레했던 꽃다운 스물 네살, 하필이면 독서클럽 장소는 엘레베이터가 없는 4층에 자리 잡았고, 그 힘든 계단을 오르는 나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주는 그는 동굴에서 울리는 깊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추레하고 남루한 옷에 배어있는 담배 냄새는 긴 속눈썹의 깊이에 한번 더 설레게 했고, 나의 가방을 받아들고 내 뒤에서 서포트 해줄 때 내는 숨소리에 두번 더 설레서 이미 나는 그의 단점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그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발제해서 발표했다. 몇 번을 읽었는지도 셀 수 없는 나의 낡은 서랍 속 그 책을 발제하고 토론할 때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언어는 '아는 것도 많고 예쁘고 좋은 대학을 다닌다'는 나의 능력치를 넘어 내가 기대고 싶은 남자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렇게 그에게 매료당했고 그의 수많은 단점과 비하인드 스토리는 결혼 이후에 밝혀졌다.(나의 첫 책에 써있다)
이제는 그 남편을 명료화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그에 대해서 제대로 분석하고 글을 통해 다시 발산하는 치유의 과정을 다 치뤘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아프고 힘들게 살고 있다. 아마도 불을 다 끄고 잘 것이며, 외로우면 티브이 뉴스 앵커의 반복되는 비현실적 목소리에 취해 겨우 잠들것이다.
왜 그는 우리가 은밀하다고 말하는 닫힌 공간, 빛이 없는 어두운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남편과 헤어지기 전에 에니어그램을 배웠다면 그와 헤어졌을까? 그를 이해하고 다시 사랑했을까? 평소에 공부나 일상생활에서 자타가 똑똑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어떤 문제를 만나면 자신의 똑똑함이나 명석함으로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한다. 절대 아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작업은 똑똑한 사람이 할 수 없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은 심리학적 위안만으로 버틸 수 없다. 에니어그램이 답이다. 그는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이다.
4유형은 '개인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독특한 우울감으로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는 특별한 재능과 특별한 결함이 동시에 있다고 말한다. 다른 유형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양가 감정이 심해서 우리가 어렵다고 느끼는 유형이거나, 사귀기 힘들다고 고백하는 유형이다. 4유형이 건강해져서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그때는 예술가가 되었거나 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을 때인데, 이런 사람의 다양성을 이해하려고 심리학을 전공했던 내가 결혼에 실패하고 에니어그램을 배우고나서야 남편의 과거가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되니, 나에게 에니어그램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나의 과거를 밝혀서라도 나는 에니어그램이 얼마나 귀한 심리도구인지 알려주고 싶다.
그렇다면 남편은 왜 은밀한 공간에서 육체적 동물성이 일을 안하는 무능력을 상쇄할 만큼 터져나오고, 빛을 차단해야 과감해지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숨어지냈을까?
남편은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 밑에서 순종하지 않으면 밥을 굶기는 극단성 앞에서 개밥을 훔쳐 먹을 정도로 암울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 아버지 옆에는 한없이 나약하고 유약한 엄마가 매를 맞고 울고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런 과거로 옹호받을 가치가 없다고 일축할 수 있다. 누구나 힘든 과거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 또한 지금 옹호와 이해의 깊이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지 않고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남편을 포용할 큰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기를 늘 바란다. 이들은 환상 속의 자아(자신의 상상 안에서 만들어 낸 이상적인 자아이미지)를 개발함으로써 보상하려든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이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는 상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영화에 등장하는 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침대에서 방출하기도 하고, 알고 있는 지식을 나열하며 그 지식의 원천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뽐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무대의 중앙으로 올라가 피아노를 쳐달라고하거나, 은밀한 공간이 아닌 사람이 많은 공간에 힘을 과시하라고 조언하거나, 지식의 근원을 실천해달라고 하면 불행히도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가련하고 불쌍한 이미지로 바꿔 말한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능력이 안된다고 말하면서 나약함을 들추어낸다. ( 아, 그때도 알았으면 좋았을 걸. 남편 이후에도 나는 4번 유형과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긍휼해지고 속수무책으로 안아주고 이후 그들의 돌변에 울어버렸다)
남편은 아버지에게 맞고 숨은 공간이 장롱 속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찾을 수 없도록 책을 쌓아두고 이불로 가린 빈 창고 구석에서 술 취한 아버지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의 은밀함은 변태가 아니고, 의도적 고립이 아니었다. 그의 빛이 없는 공간은 암울한 과거를 대변하는 심리학적 위안이 필요한 단어였다. 그에게 은밀함은 그런 단어였다.
나는 에니어그램 전문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룹이 아니고 일대일이어야하는 이유는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똑바로 배워서 사람을 살리게 하고싶어서, 수많은 물음표를 스스로 느낌표로 바꾸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도 문밖의 일상을 제대로 누리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독과 고립의 공간에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고 울부짖고 있을까. 우리는 사람의 과거를 알아야 사람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고전문학이 읽히고 회자되는 이유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게 함이 아니던가.
상상을 통해 감정을 강화하고, 황홀한 로맨스를 꿈꾸며, 특별한 사람이 되고싶은 4유형들이여, 그리고 나의 과거 남자여, 이제는 문을 열고 나가기를. 문안에서 얻는 경험보다 문밖에서 얻는 경험이 크다오. 제발 문밖의 일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누리기를...
그대는 불을 꺼야만 안을 수 있고, 함께 잘 수 있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