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올 걸 그랬어
요가강사가 힘든 이유를 알기에 더 좋았던 치앙마이 Wild Rose Yoga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로웠던 치앙마이도 한 달 살기를 하며 무뎌지기 시작하는 걸까. 새로운 도전 대신 익숙한 갔던 식당과 카페만 가듯, 요가원도 가던 곳만 가고 있던 중, 그래도 치앙마이를 떠나기 전에 한 번은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은 와일드로즈 요가(Wild Rose Yoga) 스튜디오. ‘야생 장미 요가’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이름의 장미는 없지만 목조건물에 치앙마이스럽게 아기자기한 요가원이다. 수업 시작 30분 전에 칼같이 문을 열어준다는 후기에 반신반의하며 35분 전에 갔더니 진짜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참으로 소신 있는 요가원일세, 약간은 새초롬해졌지만 이 곳에서는 왠지 내공 있는 선생님을 만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좋은 느낌은 맞았다. 세계여행을 하며 다녀본 수많은 요가원 중에 손꼽히게 좋았던 수업과 선생님의 요가원이었다.
퇴사하기 전에 보험 삼아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따고 기세 좋게 주말마다 요가를 가르쳤다. 여행을 다녀와서 회사에 가기 싫은데 다른 길도 보이지 않으면 요가를 가르치려 했다. 큰돈을 벌 수는 없지만 생계를 유지할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 요가를 가르쳐볼까 할 때마다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몸을 사린 것도 있지만 부담에 비해 버는 돈이 너무 적었다. 요가를 가르치는 건 한 시간을 물 흐르듯 이어지게 동작을 구성하는 것부터 자연스럽게 멘트를 외우고, 다치지 않게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것까지 에너지를 엄청나게 요하는 일이다. 요가 수업을 받고 좋았던 많은 경우는 아마도 선생님의 에너지를 내가 가져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나의 에너지를 주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많은 선생님 중 단연 손꼽히는 한 분은 자신의 에너지를 듬뿍 나누어주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치앙마이에서 만난 Anny선생님을 떠올리면 그녀의 에너지가 떠올라 미소 짓게 된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면서 3주 차가 되어서야 이곳에 처음 왔다. 올드시티에 있어 좁지만 예쁜 골목에 위치한 와일드 로즈 요가(Wild Rose Yoga) 스튜디오. 목조 건물과 동남아 하면 떠오르는 오렌지 색의 꽃이 예쁘게 장식된, 가장 치앙마이스러운 공간이었다. 밟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나무 바닥과 외부의 작은 테라스가 특히 좋았다. 요가하면서 이 공간을 보는 것 자체로도 힐링이 됐다. 이곳을 처음 왔더라면 다른 곳에서 5회권을 끊지 않았을 텐데. 진즉에 올 걸 그랬다.
이날의 테마는 Sunday Funday, 일요일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수업이었는데 쉴 틈 없이 빈야사가 이어진다. 난이도가 있어 초보자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선생님이 수업 시작 전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일일이 다가가서 어느 정도 수련했는지 물어보고, 각자에 맞는 빈야사 방법을 알려주었다. 개인에게 맞춘 진도와 핸즈온. 초보와 숙련자 모두를 아우르는 수업이었다. 이렇게 일일이 핸즈온 해주고 옵션을 주기가 정말 쉽지 않아 더욱 감동한 나. Anny선생님의 빈야사는 1시간 30분이지만 실제로는 한두 시간 정도 지나서야 수업이 끝났다. 지금까지 들어본 수업 중 손꼽히게 좋았고, 무엇보다 애니 선생님의 긍정적이고 힘찬 에너지가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이 날 수업 듣고 좋아서 다음 주에 또 갔을 정도. 치앙마이에서 한 달이나 머물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챌린징한 아사나도 포기하지 않고 짝지어 연습시켰다. 기가 움직인다는 ‘기운’의 뜻대로 선생님의 좋은 기운은 수강생들에게 금방 전달된다. 덕분에 처음 해보는 동작도 신기하게 척척 됐던 날이다. 암 발란스(Arm balance, 팔로 몸을 들어 올리는 동작)를 잘 못하는데 처음 시도해본 ‘에카 파다 코운딘야사나’가 몇 번의 시도만에 됐다. 감동이었다. 경지에 오른 고수가 아닌 이상 수련하는 환경이 주는 영향은 굉장히 크다. 그래서 발리나 태국의 따뜻한 날씨에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요가를 하면 더욱 힐링되는 기분이 드는 거겠지. 그런데 환경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이 어떤 에너지를 주느냐는 공간의 효용을 배가 시킨다. 내 안의 에너지를 다그 채워 남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하고 떠나온 여행에서 운동 그리고 요가를 하면서 ‘얼굴이 좋아졌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긍정 에너지’가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옆 매트에 앉은 사람의 에너지와 시너지를 일으켜 더 크고 더 밝고, 유쾌한 에너지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특히 한국에선 퇴사하고 2개월 동안 요가한 게 전부였던 남편이 이 여행을 함께 해주며 요가의 순기능을 많이 이야기했다. 퇴사하기 전 그의 직업은 주식 트레이더였다. 정확하고 빠른 일처리를 필요로 했다. 숨 가쁘게 한국과 홍콩에 있는 고객들과 거래가 이루어지기에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점심도 사무실에서 시켜먹었다. 거래는 대부분 메신저를 통해 이루어졌고 팀원들끼리도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퇴근하는 경우도 많았단다. 그래서인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긍정의 에너지를 공유하기보다는 내면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인내하고, 초연해지고, 무신경해지기.
이 날의 남편 일기를 잠시 베껴왔다.
작고 아담한 통나무로 된 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요가를 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공유했다. 특히 수업을 이끌어 준 선생님 Anny의 따뜻하고, 배려 깊으며, 긍정적인 에너지가 수업을 가득 채워서 더 좋았다. 한 사람의 에너지가 15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그 에너지가 15배 이상으로 증폭되는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긍정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 내가 내뿜는 긍정 에너지를 더 크게 키우는 것. 여행과 요가가 알려주는 또 하나의 가르침이었다.
요가강사를 해봐서 누군가에게 나의 기운을 나눠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만큼 좋았던 공간. 올 겨울에는 코로나19로 가지 못했지만 내년 겨울엔 예전처럼 전 세계가 건강해져 다시 치앙마이에 가 이 요가원으로 출석하고 싶다.
와일드로즈 요가(Wild Rose Yoga)
태국 치앙마이, 올드타운
원데이 250밧, 5회 쿠폰 1000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