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모래성과 같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다. 난 그 모래성을 튼튼히 하기 위해 아주 넓게 밑바닥을 쌓았다. 그 밑동을 만드는데 오래 걸렸고, 그래서 튼튼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넓은 밑동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모래로 만들어진것라 조그마한 파도에도 쉽게 허물어지고 만다. 그러면 결국 허둥지둥 다시 무너진 성들을 보수하고 또다시 단단하게 하려고만 열중했다.
언젠가 운이 좋은 날도 있었다. 만들어진 모래성 주변까지 파도가 치지 않아서 다시 보수하는 그런 일이 없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살아있는 것을 느끼며 잠시 긴장을 내려놓곤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파도가 치지 않더라도 언젠가 파도가 칠지 몰라 바다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으며, 그 시간만큼의 긴장감이 내 몸을 망쳐가고 있었다.
주변의 어떤 이들은 모래성을 그냥 방치하고 그 바다에 몸을 맡기고 그냥 수영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고, 모래성을 아예 만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릴 땐 그런 이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데 무언가 남기고 가는 것이 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큰 모래성을 짓고 싶어 했다. 그들이 그냥 바다와 파도에 몸을 실어 시간을 보낼 때 나는 모래성에만 열중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난 항상 모래성이 무너질 거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변인들은 내려놓으라 이야기해 주었다. 그냥 모래성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네가 진정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떠나라 말했다. 하지만 살아온 날의 길이만큼 나의 불안도 단단해져 한번에 무너뜨리기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라 자책했다.
시간이 더 많이 흘렀다. 모래성을 신경 쓰지 않는 시간이 조금은 늘었다. 그렇다고 완전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나면 조금씩 모래성을 단단히 만져주었고, 뒤돌아 보지 않는 척하면서 남몰래 그 모래성을 바라보았다. 잘되지 않았지만 주변인들이 말해주곤 한 내려놓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조금씩 파괴되어 가는 모래성을 보니 또 다른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건 모래성 이후의 나의 삶에 대한 고민이었다. 모래성이 모두 사라지면 난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어느 날 이런 나의 모습을 안타까워한 한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 노인은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넌 여기서 왜 이렇듯 전생과 다른 모습을 하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건가 하며 질문을 했다. 제가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절 가두었던 모래성을 조금씩 허물어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삶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후의 삶에 대한 새로운 불안감이 조금씩 커지는 느낌입니다.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 전 항상 욕심을 없애려 모든 걸 내려놓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인은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선 말해주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다 보면, 또 그곳에서 새로운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또한 행복을 찾아가는 목표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내려놓는 것이다. 네가 비록 모래성을 만들던 행동들이 덧없어 보일지라도 네가 그것을 만드는 것이 너에게 삶의 원동력이었다면, 그냥 넌 그런 모래성을 만드는 사람으로 사는 게 꼭 세속적이고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것을 바꾸어 다른 삶을 사는 것이 꼭 너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은 더욱더 아닌 것이다. 그냥 모래성을 지금처럼 만드는 것이 너의 행복이 될 수 있다.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 또한 순리다. 그것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는 게 네가 지금의 현실을 사는 행복이 될 수 있다.'
그 말을 듣던 나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모래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