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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쵸 Dec 16. 2023

문득 건조기에서 꺼내지 않은 빨래가 생각났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김 할머니 막국수란 허름한 노포였다. 주변에 논과 감나무들이 몇 그루 보이는, 정말 너무도 조용해서 평온한 마음이 절로 드는 그런 분위기였다. 노포의 오른쪽 굴뚝에선 이 저녁시간과 잘 어울리는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분위기에 맞지 않지만, 좀 전까지 느끼지 못한 식욕이 느껴졌다.


- 감사합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네요.

- 그렇죠. 그럼 맛있게 식사하시고, 좋은 추억도 많이 남기고 가세요. 손님들께 제가 추천하는 곳은 원주민들의 찐 맛집입니다. 아. 원주민이란 말의 뜻을 아실랑가 모르겠네. 동네 사람들이란 뜻인데.


택시 기사님은 어느새 저 멀리 논을 가로질러 분홍빛 언덕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 또한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지금쯤 엔카와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거라 상상을 하니 나 역시 아까의 리듬이 떠올라 혼자 흥얼거렸다.


미닫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일본의 노포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이곳은 그들의 시간을 잘 간직한 모습이었다. 정면에 작은 주방이 보이고, 그 앞 바에는 하얀 접시와 몇 가지 반찬들이 커다란 스뎅볼에 담아져 있었다. 대략 네다섯 테이블이 의자 네 개씩 맞춰있었으며, 오른쪽 벽면에 벽시계와 액자에 넣어있는 메뉴가 보였다. 이런 오래된 느낌은 일부러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쌓여 저절로 구성된 그런 모습이었다. 아마도 할머니의 취향이 많이 묻어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 어서 와요. 이쪽으로 앉아요.

- 네


오래된 나무 테이블 위엔 겨자로 보이는 소스등 여러 양념통들과 냅킨이 테이블 오른쪽 벽에 모여있었고, 수저와 젓가락통이 그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냅킨 한 장을 꺼내 수저와 젓가락을 가지런히 내 몸 쪽으로 놓았다. 잠시 후 주인 할머니로 보이시는 분이 노란색 주전자와 막국수로 보이는 것을 커다란 스뎅 그릇에 담아 내 앞에 놓았다. 노란 주전자를 들어 면에 부어 먹으라는 시늉을 해 보이셨다.


따뜻한 육수가 들어 있는 것 같은 주전자를 면그릇에 조금씩 부었다. 이내 곧 할머니가 두 손바닥을 보이며 그만 넣으라는 표정을 지었다. 난 순간 손에 힘을 전달해 붓던 육수를 멈추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자,  할머니도 주름진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했다는 칭찬과 같은 미소였다.


여러 양념과 채소 그리고 육수가 잘 어우러져 보이는 국수였다. 젓가락으로 조금씩 조금씩 섞을수록 메밀면이 윤기가 나며 반짝반짝거렸다. 그 반짝거림에 반해 몇 번이고 섞으며 계속 넋을 놓고 바라만 보곤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잠시 젖기만 했다.


키라키라데스. 이다다끼마스.

--


호텔에 돌아와 침대에 잠시 걸터앉았다. 셔츠를 벗을 때 막국수의 양념이 튄 걸 발견했다. 내 입맛에는 약간 심심한 맛이었지만 아마도 다시 춘천을 찾게 된다면 또 방문할 것 같았다. 심심하지만 결코 심심해서 맛이 없는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심심함에 좀 더 손이 가는 맛이었다.


창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불빛들만이 낯선 이곳에 내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주었다. 문득 건조기에서 꺼내지 않은 빨래가 생각났다.


난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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