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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y Aug 03. 2019

당신을 나타낼 수 있는 단 한 가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걔는 어떤 사람이야?”같은 질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든, 표현할 수 있는 그의 모습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름만이 그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단 하나라고 생각했다. “걔는 그냥 개야.” 이보다 더 그를 표현하기 좋은 수단이 있을까?


하지만 그 역시도 좋은 답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위치를 표현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주소? 그건 대한민국이라는, 언젠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한 나라의 표기 방식일 뿐이다. 1000년 후에는 우리가 위치한 도시의 이름이 서울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여기를 더 이상 동작구 83번지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이곳을 드러내려면 나를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


지금, 여기.


이 두 단어만이, 이 순간에 내 두 다리가 밟고 서있는 위치를 말할 수 있다.


사실은 두 개도 많다. 시공간을 포함해,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려면 딱 하나만 있으면 된다. 무엇이 필요할까?


그전에 나는 누구일까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흔히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정의한다. 아빠, 아들. 혹은 회사의 중역일 수도 있다. 재산이 얼마가 있고, 옷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며, 차는 어떤 걸 좋아하는. 도시적인 삶을 꿈꾸는. 그런 것 없이 자신을 정의할 수 있을까?


직위도 아니고, 돈도 아니다. 모든 연결고리는 내 일부분, 혹은 일시적인 상황을 설명할 뿐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내가 존재한다. 그것은 내가 내리는 선택으로 드러난다.

지금 여기서의 선택. 이것이 쌓이고 쌓여 나를 만든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선택에 따른 결과물이거나, 혹은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온전한 내가 아니다.




이번에 읽은 책 <원씽>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한 가지가 무엇인지를 깊이 파고든다.


가려 들어야 할 내용도 많았다. 성공을 정의하는 데 있어 환원주의의 오류, 이야기 짓기의 오류 등 복잡계적 사고가 결여되었다는 아쉬움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강렬한 인상을 느낀 이유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위에서 느낀 깨달음과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나를 온전히 대변하는 것은 내가 내리는 결정이다. 그렇다면 평생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더 좋은, 의미 있는,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뿐일 테다. 이렇게 목적의식을 설정하면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에서도 비중이 갈릴 것이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선택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만이 우리가 주체성을 찾는 길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기억하자.


1.   스스로 내리는 선택만이 나를 대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2.   그 수많은 선택 가운데서도 정말 중요한 선택만을 가려내야 한다.


3.   그렇지 않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잊게 하는 일상에서의 소모적인 선택들은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멀리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그 일을 함으로써

다른 모든 일을 쉽게 혹은 필요 없게 만들 바로 그 일은 무엇일까?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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