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단편소설] 2화
마대리, 이사 잘했어?
점심시간, 회사 근처 일본 가정식 식당에서 박과장님과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박과장님 질문에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엘리베이터 고장 난 것 빼고는 별일 없었어요. ‘이사’하면 제가 배테랑 급 부장인데요, 뭘.
어제 낸 연차를 두고 박과장님과 나눈 대화였다. 사유는 이사였다. 결재를 승인하던 박과장님은 놀라면서 타일렀다.
이사를 당장 내일 한다고?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해. 미리 얘기했어야지.
내일 뭐 급한 일 있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냥, 조용히 하려고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사적인 이야기를 회사에 굳이 떠벌릴 필요가 있을까. 회사는 그저 일하러 오는 곳인데.
아무튼 축하해. 이제 정시에 출근하겠네.
정시요? 하하, 네.
속으로 ‘그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엄밀히 따지면 정시에 출근하는 건 나였다.
나는 회사에서 두 시간 거리의 남양주로 2년 전 이사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한 지 10년이 넘었고, 전세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이사하느라 진이 빠져 있었다. 내 집 마련이 간절한 때에 우연히 공고를 보고 신청한 남양주시 행복 주택에 당첨됐다. 출퇴근 거리가 문제였지만,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호기롭게 계약하고 짐을 옮겼다.
그러나 현실은 짐작과 달랐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늦잠 자기 일쑤였고, 매번 차가 밀린다는 핑곗거리를 대며 지각했다. 운전면허가 없어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출퇴근 시간만 왕복 4시간이 걸렸다. 다른 직원들은 30분 일찍 출근할 때 나만 9시에 출근했다. 다른 회사였다면 정상적으로 출근한 것일 테지만 여기에서는 30분이나 지각한 셈이 되었다. 매일 아침, 눈치 보며 사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오래 일한 직원의 특권일까. 내게 주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일찍 일어나거나 서둘러 준비하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게 되었다. 내 일상은 매일 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하는 오토바이처럼 흘러갔다.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숙고한 끝에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간다고 거짓말하는 것. 공식적으로 선언한다면 스스로 각성이 될 것 같았다. 이사했다고 해서 집에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회사에서 주민등록등본을 확인할 일도, 집들이하자고 나설 일도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실제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행복주택의 입주 계약 조건이 최소 2년 거주였고, 그때까지 기다리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다.
전입신고랑 확정일자 잘 받았지?
박과장님 질문에 뜨끔했지만 곧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럼요.
나보다 일 년 먼저 경력직으로 입사한 박과장님은 예의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과도할 정도로 상대방을 염려해 주는 사람이었다.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가식적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잘해주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아마도 회사를 그만둔 팀원들을 내보내고 인력을 새로 뽑는 데 학을 떼어 나만큼은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 나도 박과장님과 합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덕분에 우리 둘은 그동안 수많은 직원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동안 끄떡없이 점심시간을 함께했다.
이사하느라 고생했겠네. 빌라로 간 거야?
네. 집값 맞추려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아파트는 어쩌고?
친구한테 잠시 빌려주기로 했어요.
다행이네. 어렵게 구한 아파트잖아. 그나저나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아휴.
고생은요, 무슨.
나는 얼른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이사에 대한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했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예상을 빗나가는 질문이 나올 것만 같아 불안했다.
박과장님, 여름휴가 아직 안 다녀오셨죠?
이제 슬슬 계획 세워 봐야지. 마대리는 언제 가려고?
추석 연휴 때 붙여서 갈까 생각 중이에요.
그렇구나. 참, 마대리. 내가 재미있는 거 하나 봤는데, 이것 좀 봐.
박과장님이 카카오톡으로 링크를 보냈다. 게시 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주봄 씨를 찾습니다.’*
이게 뭐예요?
계속 읽어 봐. 잘하면 마대리 대만 여행 공짜로 갈 수도 있겠어.
게시 글을 자세히 읽어 내려갔다. 대만 여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놓았는데 사정상 못 가게 되어 양도한다는 이야기였다. 조건이 있었다. 성별이 여자일 것, 이름이 ‘마주봄’일 것. 영문 철자가 일치할 것.
‘마주봄’이라는 이름을 맞닥뜨린 나는 뜨끔했다. 잠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훈의 시대』, 김민섭, 와이즈베리, 2018,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창비교육, 2021.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내용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