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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인위적인 발명품, 화폐

인류 역사상 가장 인위적인 발명품, 화폐가 유통에 미친 영향

by 김상엽

여러분이 열심히 농사지은 쌀이 있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열심히 키워서 내가 먹을 만큼을 빼두고, 시장에 팔러 나갑니다. 시장에 도착해 가판대를 펼쳐놓고 쌀을 열심히 팔아봅니다. 오! 드디어 살 사람이 등장했어요. 저는 쌀을 팔아 옷을 사입기로 했습니다. 아니, 근데 쌀을 사러 온사람이 제가 필요한 옷은 내놓지 않고, 웬 이상한 금속 덩어리를 주더니 쌀을 내놓으라는거 아니겠어요? 나 원 참 ㅋㅋㅋ 예쁘게 생기긴 했는데 고작 이 금속 덩어리 조금이랑 힘들게 농사지은 쌀을 바꾸려고 하다니. 이거 도둑놈 심보가 아니겠어요? 아니, 근데 옆에서 밀을 팔고 있는 사람도, 심지어 옷을 팔고 있는 사람도 자기가 기껏 구한 소중한 물건들을 조그만 금속 덩어리로 바꾸는 것 아니겠어요? 어어? 심지어 저 쓸모없어 보이는 종이쪼가리랑 바꾸기도 하네요?


아니, 녹여서 어디 쓸데도 없어 보이고, 종이 쪼가리는 심지어 쓸 데도 없고, 조금 예쁘게 봐줄만한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피땀흘려 농사지은 쌀을 줄 정도는 아닌데... 사람들은 왜 이 금속덩어리랑 종이쪼가리에 자기의 물건을 내어주고 있을까요?? 도대체 우리는 왜, 이 조그마한 금속덩어리와 예쁘게 생긴 종이 뭉치를 얻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걸까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기이한 발명품, 화폐

이전의 시리즈에서 계속 언급한바와 같이,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흘러오며 현재 형태의 결과물을 보고 있습니다. 화폐도 마찬가지인데요, 현대 화폐는 4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 지불 기능

② 가격의 척도

③ 저축 기능

④ 교환 수단


지금 지갑을 꺼내 천원 짜리를 하나 꺼내보시겠어요? 우리는 천 원을 활용해 세금을 낼 수 있고(지불 기능), 천 원의 가치가 천 원임을 인지할 수 있고(가격의 척도), 이 천 원을 은행에 예금하거나 집에 보관할 수 있으며(저축 기능), 이 천 원을 요 앞 편의점에 가서 껌으로 바꿔 먹을 수 있습니다. (교환 수단)

한국은행-화폐박물관-(12)_rev-full-size.jpg 한국 화폐박물관, 출처 : 지역N문화 사이

현대 화폐의 가치는 매우 추상적입니다. 똑같은 천 원이라도 2025년의 천원과 1980년대의 천 원은 다르고, 그렇다고 2025년의 천 원과 1980년이 천 원이 같은 것은 또 다른 의미로 재앙입니다(경제성장률 0%가 45년간 지속되었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니까요). 한국은행은 이 천 원이 적정한 수준의 범위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제 변수를 고려하여 통화량을 조절합니다. 한국은행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오늘도 우리 지갑 속의 천원은 화폐로써의 기능을 다하고 있습니다. 화폐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인위적인 다양한 노력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추상적인 화폐의 기능을 통해 상행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대의 상행위는 화폐의 기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교환의 절대적인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거래 행위는 화폐를 기본으로 이루어지며, 화폐를 이용하지 않은 상거래는 매우 이질적인 거래 형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화폐를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인위적인 행위입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한 금속, 종이 덩어리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해서 다양한 물건과 교환하는 행위 말입니다.



화폐가 유통을 혁명한 진짜 이유


화폐의 철학/구조적인 기능을 넘어, 이 글의 본질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화폐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화폐의 발명을 통해 무거운 물건을 직접 들고 오지 않고, 가벼운 화폐를 통해 대신 거래하게 됨으로써 다양한 상행위를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화폐의 물리적인 특성만 강조된 해석으로, 사실 화폐가 지닌 가치는 이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아까 화폐의 기능으로 다시 돌아와볼까요?


① 지불 기능

② 가격의 척도

③ 저축 기능

④ 교환 수단


우리는 유통에 있어서 화폐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교환수단으로써의 화폐만 주목해 왔습니다. 더 이상 무거운 물건들을 직접 들고올 필요 없이, 금속 몇덩이 가지고 많은 거래를 간단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것 말이죠. 하지만 화폐는 이러한 물리적 편의보다, 인간의 지각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유통의 복잡도를 더욱 더 올린 것에 더욱 더 큰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시리즈의 0장에서 유통사의 역할에 대해 설명드린 적이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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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X N의 거래 관계가 유통사를 통해 N + N의 거래 관계로 바뀌게 되는 것 말이죠. 유통사를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는 거래의 복잡도를 낮춰 물건을 사고 파는데 어마어마한 효율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직접 구매하는데 드는 비용(불편함)을 유통사의 마진과 비교하였을 때, 유통사에게 마진을 제공하는 것이 판매자와 소비자 입장에서 훨씬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유통업이라는 비즈니스가 발생하게 된 것이죠. 결국, 유통업은 이 불편함을 해소하면서 가치를 획득하는 비즈니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화폐는 이와 유사한 원리로, 물건의 가치를 인지하는 영역에서 유통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화폐가 없이 물물 교환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N개의 물건에는 각각 N개의 가치가 있을겁니다. 물물 교환을 위해서는 각 물건들의 교환비가 존재하게 되고, 이 교환비는 각 상품의 가치에 따라 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물물 교환에서는 가치가 항상 상대적인 것으로 아래와 같이 교환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쌀 1말 = 베 2필

베 1필 = 사과 3알

사과 1알 = 보리 2말


여기서 퀴즈~ 보리 1말은 쌀 몇 말과 바꿀 수 있을까요? 보리와 사과의 교환비에서 베의 교환비를 구하고, 베와 쌀의 교환비를 구하는 등 기존에 있던 거래 데이터를 찾아 몇번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상품이 4개(쌀, 베, 사과, 보리) 밖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보리 1말의 적정한 가치를 찾기 위해 우리는 계산을 몇번을 해야하는 지 모릅니다. 시장에 N개의 상품이 존재할 때, 이 N개의 상품은 N-1개 상품과 각각 교환 비를 가지게 됩니다. 경우의 수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시장에는 N(N-1)/2 갯수만큼의 교환의 경우의 수가 생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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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 100개만 되어도 4,950의 교환 경우의 수, 상품이 1,000개가 된다면 499,500개의 교환비가 생기게 되죠. 희소한 상품들은 거래 전적이 없어 교환비를 추측하기도 어렵고, 다른 상품과 이것저것 비교하느라 교환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비효율이 생기게 됩니다. 화폐를 통해 가격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면, 이 문제는 단번에 해결됩니다. 상품의 갯수가 몇개가 되든, 상품 갯수 만큼의 경우의 수만 있으면 됩니다. 상품이 100개라면 100개의 가격이, 상품이 1,000개라면 1,000개의 가격이 생기게 되는거죠. 지난 유통 케이스와 같이 곱셈이 아니라 덧셈의 관계로 연결되기 때문에 상품 갯수가 늘어나는 데에 과부화가 걸리지 않습니다.


화폐가 오늘과 같이 고도화되지 않은 과거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거래되는 상품을 화폐 대용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쌀, 면포와 같이 많이 거래되는 상품을 통해 각각의 교환비를 정했죠. 하지만 상품이 화폐로 활용되는 경우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급격하게 변할 경우, 나머지 교환비가 다 흔들리는 문제가 생깁니다. 또한 화폐만큼 저장 기간이 길지 않아 몇 년간 보관할 수도 없었죠. 품질이 균일하지 않아 상품 각각의 가치가 일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화폐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죠.


하지만 서론에도 언급했듯, 화폐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추상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수학시간에 배웠지만, n^2(제곱)의 복잡도와 n의 복잡도는 비교를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화폐는 수학적으로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를 줄여 유통을 단순화 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화폐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데이터를 간단하게 기록하고 평가, 저장할 수 있었으며 거래 과정에서의 비효율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인 만큼 실생활의 많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가치를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죠. 지금도 각국은 화폐의 가치를 관리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관리감독 하고 있으니까요.



화폐는 단순히 거래 과정에서 물리적인 운반 기능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유통의 핵심적인 비즈니스인 복잡도를 줄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의 뷰가 신선했다면 좋아요 한 번 부탁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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