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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탄생, 유통 혁명의 초석이 되다

문자의 탄생부터 기록된 수많은 거래 데이터

by 김상엽
인류 역사의 인문학적 가치에서 커머스 전략의 미래를 찾는 책을 씁니다.
거래의 본질적인 행위를 고찰하고, 미래 전략에 대해 고민해 보자구요!



이집트 농경 사진.jpg 1200년 전, 이집트 벽화

구석기 시대를 지나며, 인류의 거래 활동을 만들어내게 된 근본적인 변화는 다른 곳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오랜 세월 수렵과 채집으로 연명해온 인류의 생활 양식 변화는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며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농경 사회로 전환입니다. 수렵/채집 방식은 산출물이 불규칙적이고 금방 휘발되며,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부족 단위로 먹을 것이 풍부한 곳을 계속 이동해 다니고, 동굴에서 임시 거처를 마련해 생활해왔죠. 하지만 농경은 달랐습니다. 한 장소에서 몇 달을 머물며 작물을 관리하고, 해가 지나도 그 장소에서 다시 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인류는 정착 생활을 시작했으며, 물길을 내고, 밭을 개간하고, 수확하는 등 농업의 다양한 요소들을 발전시켜 농업 생산량을 키우는데 매진했습니다. 이렇게 늘어난 농업 생산량은 이들에게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주게 되었는데, 잉여 생산물은 인류가 드디어 농업 외 다른 요소에 노동력을 투입할 수 있는 여분의 노동력을 제공하였습니다. 곡식을 저장할 수 있는 토기를 생산하고, 자연 환경을 버텨낼 수 있는 집을 더욱 더 튼튼히 짓고, 농업 연장을 더욱 더 튼튼하고 정교하게 만들었죠. 부족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 갔으며, 이들이 관리하는 영토는 더욱 더 넓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부족과의 충돌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충돌 과정에서 힘이 센 부족은 다른 부족들을 흡수했습니다. 흡수된 쪽은 자연스럽게 노예가 되었으며, 평등 사회였던 원시 사회에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계급 구조가 등장했습니다.


각 부족들은 세월이 지나며 그 세력을 더욱 더 성장시켜 갔으며, 비대해진 부족 내에서 계급이라는 개념은 더욱 더 공고해져 갔습니다. 또한 잉여 생산물을 바탕으로 여분의 노동력을 확보한 고대 인류는 이 여분의 노동력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를 위한 제단을 짓고,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을 생산하고, 정복 활동을 위한 무기들을 더 생산하기 시작했죠. 정착민의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져 갔으며, 다양한 생활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곳곳에 도시가 생겼고,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수메르는 현재까지 밝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입니다. 기원전 5,500여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 수메르 문명은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알려진, 현재 이라크 남부지역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건설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중동 지형은 사막화와 염화로 인해 농사가 매우 어려운 척박한 지형이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비옥한 토양이 넘쳐나 다양한 곡식들이 자라던 풍요의 땅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출물, 잉여 생산물을 바탕으로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수메르의 수도 우르크로 몰려들었고, 우르크는 당시 인구 5만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도시로 거듭났습니다.


인구가 많아지니, 기존의 작은 부족을 운영했던 시스템에 한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명 단위의 부족들이 사냥이나 채집을 하고 다닐 때는, 하루하루 잡은 사냥감이나 과일을 배부르게 나누어 먹고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나섰으면 됐습니다. (부러운데?) 하지만 문명 사회의 인류는 굉장히 복잡한 일들을 다양하게 처리하고, 그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올 한 해 수확물이 얼마나 거두어 졌는지, 세금은 얼마나 걷혔는지, 교역하던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의 돈을 지불했는지 등 다양한 정보들이 수집되고 관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구석기시대 감성으로 내 주관에 의해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한 주관적 기억과, 순식간에 휘발되는 구두 언어로는 이런 수준의 복잡한 정보를 관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많은 사람이 봤을 때 누구나 납득할 만 하고, 휘발되지 않고, 나중에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처리 도구가 필요하게 되었죠.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에 그들이 기록해야 할 정보를 서로가 약속한 방법으로 새긴 다음, 구워서 영구적으로 기록이 소멸되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쐐기문자와, 쐐기문자를 점토판에 담은 기록이 탄생했습니다. 문자와,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 생김에 따라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혁신을 바탕으로 유통에도 새로운 혁신이 생겨났습니다. 바로 장부를 쓰기 시작 하면서요.

httpswww.worldhistory.orgimage5037neo-assyrian-cuneiform-lexical-list.jpg 쐐기문자 점토판

도시로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거래를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기록을 문자를 통해 남겼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거래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세금이 얼마나 걷혔는지, 작년 수확물은 어느정도 되었는지, 흉작이 있던 해는 얼마 만큼의 수확물이 나왔는지 등등. 이러한 과거 행위에 대한 정교한 기록들은 향후 거래에 있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주었습니다.


쌀 1kg이 저번에 고기 몇g과 교환 되었는가의 기록은,(물론 kg이란 단위는 그 당시 없었지만^^) 다음 거래의 교환 비율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장부를 작성하며 시세라는 것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 시세의 출현을 통해 상행위는 보다 정교해졌습니다. 장부를 작성하며 계산하게 된 교환 비율을 통해 사람들은 이제 보다 더 합리적으로 교환하기 시작 했을겁니다. 당장 광물이 필요해서 곡식을 무진장 가져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광물을 구하기 위해 적정한 수준의 곡식의 양을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거래 데이터가 장부에 쌓이며, 이 시세는 정교해져 갔습니다. 이렇게 한 지역에서 형성된 시세는 또 다른 지역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곡물이 풍부한 곳에 가면 조금의 광물로 많은 곡물을 구할 수 있었고, 반대로 광물이 풍부한 곳에 가면 조금의 광물로 많은 곡식을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장부에 기록된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은 다양한 품목의 교환비율을 정의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교환 비율을 누군가는 합리적으로 계산하여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을 활용하여 물자를 풍부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옮겨가며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얼만큼을 샀는지를 기록함으로써,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문자는 시세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 뿐 아니라, 공증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만들어 냈습니다. 거래의 기록을 영수증이라는 형태로 제공함에 따라 세금을 공정하게 걷을 수 있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물건을 미리 제공하는 외상 거래의 형태도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기억은 왜곡할 수 있고 주관적이지만 점토판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점토판 자체가 없어진다면… 슬프겠지만) 장부는 상행위에 있어 수많은 증명(영수증)약속(외상거래)을 만들어 내었고, 이러한 증빙 활동을 통해 신용 거래의 개념이 만들어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폐는 이렇게 문자가 만들어 낸 시세와 증명, 약속을 더욱 더 쉽게 행할 수 있도록 국가나 특정 기관이 보증을 하여 만들어낸 약속의 체계입니다. 화폐의 등장 이전, 문자의 등장에서 이미 거래에 필요한 상거래의 바탕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데이터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대에서도 데이터는 스마트한 거래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사람들의 소중한 자산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적정한 거래의 가치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점토판 데이터를 찾아 뛰어다녔을 지 모릅니다.



유통회사는 굉장히 많은 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유통기업들이 데이터를 중요시하며, 업무의 상당 부분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 우리 회사는 아니라고요? 그럴리가요, 엑셀 쓰고 계시잖아요!


이번 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데이터가 중요하니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을 하자!라는 뻔한 결론이 아닙니다. 문자와 기록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는 파괴적인 변화의 수단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기록은 휘발되지 않는 보존성공증의 기능을 통해 3자거래, 외상거래 등 다양한 거래 방식을 통해 거래 행위의 가치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기록이 없었다면 이 기능은 친분이 있는 당사자간의 제한적인 거래수단으로 남아 보편적인 거래 방식으로 발전하지 못했을겁니다. 또한 다양한 상품의 재고를 관리할 수 있게 해주며 재고 관리까지 가능하게 했습니다. 기록문자라는 수단을 활용하여 현실 세계에서 응용하여 활용함으로써 다양한 부가가치와 혁신을 만들어 낸거죠.


해가 가면 갈수록 파괴적인 혁신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AI추천 커머스가 메인 키워드로 떠올랐는데요, AI는 아마 기록과 문자 만큼이나 유통에 있어서 강력한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단순히 AI라는 기록/문자 수단이 아니라, 이 AI를 어떻게 활용하여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에 혁신을 가져올지, 응용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미래에 꼭 필요한 인재와 전략은 AI 그 자체가 아니라, AI를 현실 세계를 개선하는데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무한한 가치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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